이것은 꿈입니다
——칼레의 시민들
전라도의 오월 하늘입니다
마약처럼 우울합니다
어디선가 아스라이
울음소리 떼 지어 들려옵니다
한 사람의 눈물이 칼에 찔리고
두 사람의 눈물이 구둣발에 뭉개지고
열 사람, 백 사람의 눈물이
박살난 채 내던져지는
이것은 꿈입니다
벙어리들이 울고 있습니다
멍든 심장에 쇳덩이를 무겁게 매달고
수천수만의 벙어리들이 모여
한 덩어리로 울고 있습니다
벗기어진 알몸인 채
두 손이 묶여 있습니다
어디론가 아스라이
강철의 불길 속으로 끄을려가는
피투성이 울음소리, 울음소리
아닙니다
이것은 꿈입니다
밤이면 밤마다 꽁무니에 불을 단
총알이 날고
유리창 밖에 죽음이 서성이는
오월의 전라도 광주
아카시아 향기가 저주처럼 풍기는
철길엔 열차가 끊어지고
시외전화도 끊겼습니다 아아, 형님
보고 싶은 누님
여기는 지도에 없는 섬입니다
허공에 떠 있는 섬입니다
내려갈 길은 보이지 않고 올라오는 길도
지워져 버린
오월은 아직 이승의 계절입니까
말 못하는 벙어리들 피 묻은 울음소리를
당신들은 들을 수가 없습니다
별보다 먼 나라에
그리운 당신들의 안부가 있습니다
까마득한 하늘에서는 알 수 없는 삐라가
칼춤 추며 까물까물 내려오는데
쇠사슬에 묶인 칼레의 시민들은
오늘 다시 이 땅에 청동의 발걸음을 내어딛는데
햇볕만이 침묵으로 타는 학교 둘레
돌담에 기대어
장미는 핏방울로 툭툭 피어나도 좋습니까
아닙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이것은 꿈입니다 아득한
석기시대 야만의 꿈입니다.
시집『칼레의 시민들』문학세계사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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