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인의 새벽강인한의 시
카인의 새벽
새벽이었다.
헬리콥터의 프로펠러 소리 전차의 캐터필러 소리 소리에 소리가 섞이며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투항하라, 투항하라, 투ㅜ항하라, 눈이 시린 하늘 하느님보다 높이 뜬 군용 비행기에서 아카시아 꽃잎 같은 전단이 떨어져내려 피레네의 성을 빠져나간 이웃은 이 새벽 저 소리를 들었을까.
쥐새끼처럼 처참하게 옆구리에서 창자가 삐져나와 죽어버린 젊은이의 얼굴은 온통 페인트로 회칠돼 있었다고 말해 주던 친구도 그 새벽에 울고 있었던 것을.
라디오에선 ‘콰이강의 행진’도 경쾌한 오월의 새벽.
밤이면 밤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아흐레 동안을 우리가 기다린 것은 빈주먹이나 불끈 쥐어 보는 아 허망한 한 줌의 비겁, 소리 없는 눈물이었던가.
이윽고 문 밖 어디쯤에서 피보다 검붉은 총성이 빗발치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담벼락에 붉고도 붉게 장미꽃이 피어난 것을 며칠이 지난 뒤 살아남은 우리는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무심히 지나쳐 갔다.
시집『칼레의 시민들』문학세계사 19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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