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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인의 새벽 /강인한

법정 2013. 1. 16. 21:40

카인의 새벽|강인한의 시
강인한 | 조회 41 |추천 0 |2012.12.27. 16:03 http://cafe.daum.net/poemory/FwJa/541 

카인의 새벽

 

 

 

새벽이었다.

 

헬리콥터의 프로펠러 소리

전차의 캐터필러 소리

소리에 소리가 섞이며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투항하라, 투항하라, 투ㅜ항하라,

눈이 시린 하늘 하느님보다 높이 뜬

군용 비행기에서

아카시아 꽃잎 같은 전단이 떨어져내려

피레네의 성을 빠져나간 이웃은

이 새벽 저 소리를 들었을까.

 

쥐새끼처럼 처참하게

옆구리에서 창자가 삐져나와 죽어버린

젊은이의 얼굴은

온통 페인트로 회칠돼 있었다고

말해 주던 친구도

그 새벽에 울고 있었던 것을.

 

라디오에선 ‘콰이강의 행진’도 경쾌한

오월의 새벽.

 

밤이면 밤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아흐레 동안을

우리가 기다린 것은

빈주먹이나 불끈 쥐어 보는 아 허망한

한 줌의 비겁,

소리 없는 눈물이었던가.

 

이윽고 문 밖 어디쯤에서

피보다 검붉은 총성이 빗발치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담벼락에

붉고도 붉게 장미꽃이 피어난 것을

며칠이 지난 뒤

살아남은 우리는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무심히 지나쳐 갔다.

 

 

 

  시집『칼레의 시민들』문학세계사 19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