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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모녀가 남긴 유서

법정 2014. 3. 5. 08:56

도대체 뭐가 죄송하답니까

등록 : 2014.03.03 15:30 수정 : 2014.03.04 14:46    <한겨레>

 

생활고를 비관한 세 모녀가 2월26일 저녁 8시30분께 숨진 채 발견됐다. 이들은 70만원이 담긴 새하얀 봉투를 남겼다. 방세 50만원과 가스비 12만9000원, 전기료·수도료 등을 어림한 돈이었다. 봉투 겉면엔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이들이 숨을 거둔 비좁은 방(오른쪽 사진)은 작은 침대와 이불, 각종 세간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정환봉 기자, 서울지방경찰청 제공

 

 

곽병찬 대기자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 47

가난 탓에 세상을 떠나면서도 집세를 잊지 않은 선량한 사람들…
‘안현수 문제’에는 분노하다가, 입을 닫은 당신이 절망스럽습니다

2월20일쯤이었다니, 소치 겨울올림픽에서 김연아가 프리스케이팅 연기를 하던 날입니다. 내가 치킨과 맥주를 마시며 피겨 스타들의 몸짓 하나하나를 숨죽이며 지켜볼 때 세 모녀는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탱고 ‘아디오스 노니노’가 절정으로 치달으면서 탄성과 박수가 터져나올 때쯤엔 아마 그들의 시야는 흐려지고 있었고, 채점 결과가 나왔을 때는 세상을 떠난 뒤였겠지요. 제가 적당한 술기운에 탄식과 울분을 토한 것은 러시아식 피겨 채점 결과 때문이었지, 모진 세상을 뒤로한 채 쓸쓸히 떠난 그들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티브이 해설자는 울부짖고, 고양이는 안타깝게 문을 긁어대고….

 

 

생각을 말아야지 다짐하지만, 이 저주스런 장면은 지워지질 않습니다. 얼마나 외롭고 쓸쓸하고, 얼마나 원망스럽고 서러웠을까. 작은딸의 메모엔 이런 내용이 있었더군요. “비참하군…, 그런데 언제는 비참하지 않았나….” 도대체 한 하늘을 이고, 한 나라의 국민이 되어, 때론 형제자매라 이름하며, 소치에서 펄럭이는 태극기를 보며 함께 감동하고 함께 분노하는 사람들이었는데, 어떤 이들은 저렇게 죽어가고, 나는 치맥을 즐기며 환호작약하고…, 나는 그들에게 무엇이었던 것일까요. 법 없이도 살아온 저들에게 국가는 무엇이었던 걸까요.

 

 

죽어가면서 두 번씩이나 죄송하고, 정말 죄송하다고 했는데, 도대체 무엇이 죄송하답니까. 생사의 갈림길, 그 아득한 벼랑 위에서 고통스러워하고 있을 때, 누가 그들에게 단 한 번의 따듯한 눈짓이라도 보냈던가요. 차라리 20원짜리 흰 봉투에 담긴 돈 70만원으로, 먹고 싶은 것 실컷 먹고, 못 마시는 술 인사불성이 되도록 마실 일이지, 그도 아니라면 환상열차, 눈꽃열차를 타고 세 가족이 함께 손잡고 기차여행을 갔다가 먼저 떠난 아빠에게 갈 일이지, 그 돈은 왜 남겼답니까.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은 집 보증금에서 덜어내도 될 일 아닙니까. 권력을 쥐기 위해 온갖 거짓말하고 사기치고 반칙하고 생사람 잡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사람들, 더 벌고 더 출세하기 위해 이웃과 친구를 밟고도 히죽거리는 세상, 그런 세상 앞에 무엇이 죄송하다는 말입니까.

 

 

25일, 그러니까 세 모녀의 차가운 주검이 골방에 방치돼 있을 때 당신은 대국민 담화를 통해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3년 안에 1인당 국민소득을 2만5000달러에서 3만4162달러로 늘리고, 고용률을 64.4%에서 70%로 늘린다는 것이었습니다. 돌아가신 분들이 보고 들었다면 얼마나 황당했을까요. 고용률이 그렇다면 적어도 세 명 중에 두 명은 돈을 벌어들일 테고, 그러면 가족 중 한 사람이 실수로 빙판에서 넘어졌다고 가족 모두가 죽음으로 떠밀리지는 않았을 것이니까요. 당뇨와 고혈압, 장기 중증 질환을 앓고 있어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나라, 그 고통을 가족이 온전히 짊어지게 하는 나라, 가난 때문에 신용불량자가 되었는데 다시 딛고 일어날 기회가 봉쇄된 나라, 사고로 다치면 일을 할 수 없고 일을 못 하면 먹고 마시지도 못하는 그런 나라가 그들의 현실인데, 연간 국민소득 3만5000달러라니요.

 

 

게다가 조금이라도 지원받으려면, 얼마나 비굴해져야 하는지. 비굴하게 두 손을 벌려야 하고, 더 비굴하게 저의 비참을 꼬치꼬치 드러내고 또 입증해야 하고, 더 비굴하게 권력이든 돈이든 그 앞에서 설설 기어야 합니다. 설사 1인당 국민소득이 3만5000달러가 아니라 5만달러라도 저 세 모녀에겐 그림의 떡이었을 겁니다. 그보다 훨씬 더 잘사는 미국 국민들이 그렇듯이 말입니다. 잘사는 사람들은 더 잘살고, 못사는 사람들은 더 가난해질 테니 말이죠. 상위 1%의 미국인이 미국 총수입의 22%를 가져가고, 0.1% 미국인이 그중의 절반인 11%를 가져가는 나라에서, 그건 잠꼬대 같은 소리일 뿐입니다.

 

 

유가족은 이렇게 전했죠. 도움이라도 주려고 하면, 숨진 박씨에게 오히려 지청구를 들어야 했다고. 살아가면서 먹고 입는 것만큼 중요한 게 자존감입니다. 죽는 순간까지 이웃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고, 앞날이 깜깜한데도 이웃에게 아쉬운 손을 벌리고 싶지 않은 자존감. 세상에 대한 믿음을 잃었고, 그런 사회에서 아등바등 살아야 할 이유를 잃어버렸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만, 세 모녀에게 그만큼 중요한 것은 자존감이었습니다. 그들은 알량한 몇 푼 얻으려, 고약하게 털어대는 이 정부에 손을 벌리지 않았습니다.

 

 

잘난 이들은 혹시 이렇게 빈정대겠죠. 루저에 낙오자 주제에 무슨 자존감인가? 옛날 부자들은 가난한 이들에게 구휼미를 주더라도 그들의 자존심이 상하지 않도록 조심했습니다. 눈치 보지 않고 자유롭게 퍼갈 수 있도록 쌀독을 집안 사람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두었죠. 또 어떤 이는 그래도 자존심이 상할까 봐, ‘이 쌀은 나라에서 내린 것이니 부끄러워하지 말고, 미안해하지 말고 가져가시오’라고 선의의 거짓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국민의 자존감은 국가의 자존심입니다. 국민을 비굴하게 만들지 말고, 그런 자존심을 살리도록 하는 게 바로 국가의 품격을 지키는 일입니다.

 

 

무상급식을 놓고 당신들은 얼마나 가난한 가정의 아이들 속을 아프게 했습니까. ‘부자 급식’이니 뭐니 하는 이유를 들이대며 아이들을 거지 취급했죠. 그리고 선별급식이라 하여, 공짜로 밥 먹는 아이들이 다 드러나도록 하자고 주장했습니다. 중인환시리에 그렇게 공짜 밥 먹는 아이들의 심정을 한 번이라도 헤아려봤습니까. 밥이 아이들 목으로 제대로 넘어가기나 할까요?

 

 

유신시대에는 ‘나의 조국’이란 노래가 있었고, 5공 정권 때는 ‘아, 대한민국’이란 노래가 있었습니다. 당시 모든 음반에 한 곡씩 싣도록 한 건전가요의 대명사죠. 그런데 가사가 참으로 가관이었습니다. ‘아 대한민국’입니다.

 

“하늘엔 조각구름 떠 있고 강물엔 유람선이 떠 있고/ 저마다 누려야 할 행복이 언제나 자유로운 곳/ 뚜렷한 사계절이 있기에 볼수록 정이 드는 산과 들/ 우리의 마음속에 이상이 끝없이 펼쳐지는 곳/ 도시엔 우뚝 솟은 빌딩들, 농촌엔 기~름진 논과 밭/ 저마다 자유로움 속에서 조화를 이뤄가는 곳/ 도시는 농촌으로 향하고, 농촌은 도시로 이어져/ 우리의 모든 꿈은 끝없이 세계로 뻗어가는 곳// (후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 뜻하는 것은/ 무엇이건 될 수가 있어, 이렇게 우린 은혜로운 이 땅을 위해/ 이렇게 우린 이 강산을 노래 부르네/ 아아 우리 대한민국, 아아 우리 조국, 아아 영원토록, 사랑하리라”

 

 

광주 학살에 이은 삼청교육대, 녹화 사업, 장영자 이철희 독직 및 사기 사건, 아웅산 사건 등으로 세계에서 가장 위험하고, 천박한 나라로 지목받고, 심지어 우리 국민이 들쥐떼로 조롱당하던 시기에 정부가 부르도록 사실상 강제한 노래였습니다. ‘박정희 작사 작곡’의 ‘나의 조국’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런 노래 그런 가사로, 혹은 그런 국민소득, 고용률 따위의 숫자로 우리 현실을 현혹하려 했던 게 30~40년 전인데, 또다시 그런 일이 반복되는 것 같아 착잡합니다.

 

 

2012년 우리 국민의 자살 숫자는 1만4160명으로 인구 10만명당 33.3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가장 높은 자살률입니다. 자살 원인의 압도적 1위는 경제적 어려움입니다. 요즘엔 가족이 함께 떠나는 경우가 급증합니다. 빈곤 탓이겠지요. 한편에선 돈 쓸 곳이 없어 400조원 이상이 회사 금고에 처박혀 있고, 다른 곳에선 하루 먹기 힘들어 죽어가고 있는 곳이 대한민국입니다.

 

 

부탁입니다. 우리 국민이라면, 최소한의 거주 공간에서 몸 아프면 치료를 받을 수 있고, 배고프면 먹을 수 있는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기본소득, 장애인 연금, 중증환자 의료보험, 노동력 상실자 안전망 등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건 대부분 당신이 선거 때 약속한 것이고, 그러나 당선되자 외면하는 것들입니다. 죽어가면서도, 공과금과 집세를 잊지 않는 저 가난하지만 선량한 사람들, 살면서 자존감만은 지키고 싶어 하는 바르고 곧은 사람들의 삶의 의욕을 꺾지 마시기 바랍니다.

 

 

안현수 귀화 문제에는 그렇게 피를 토하다가, 가련한 이들의 죽음 앞에선 아예 입을 닫아버린 당신이, 절망스럽습니다. 그래도 당신에게 기댈 수밖에 없는 게 우리 처지이니 이렇게라도 부탁할 수밖에. 제발 저들을 돌아보십시오.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의 통합 때문에 정치권이 난리지만, 그건 단임 대통령인 당신이 간여할 바 아닙니다. 당신은 오로지 국민의 생명을 걱정하고 그들이 희망을 갖고 살아가게 그들을 지켜줘야 합니다. 제발.

 

 

곽병찬 대기자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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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설] 세 모녀 비극, 지금 제도로는 못 막는다

 

  〈중앙일보〉 2014.03.05

 

 

 

 

   서울 송파 세 모녀 사건의 충격이 사회 전반에 퍼지고 있다. 정부는 물론 학계·시민단체들이 잇따라 모임을 갖고 이번 사건의 원인과 대책을 논의한다. “주인 아주머니께 죄송합니다”라고 적힌 유서와 함께 마지막 집세까지 남긴 세 모녀의 선한 모습 앞에 사람들은 깊은 비애와 함께 다음과 같은 의문을 갖는다. 세 모녀는 왜 복지제도에 손을 내밀지 않았을까. 그렇게 했더라면 극단적 선택은 하지 않았을 텐데…. 이런 아쉬움의 밑바닥에는 우리 사회에 이미 다양하고 실질적인 복지망이 촘촘하게 짜져 있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과연 그럴까. 빈곤층이 제도를 몰라 복지서비스를 이용하지 않아서 벌어진 비극일까.

 

 

 현장의 복지 전문가들은 세 모녀가 기초생활보장제도에 따라 수급신청을 했더라도 십중팔구는 거절당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모녀 가정은 60대의 어머니와 30대의 두 딸로 구성돼 있었다. 딸들은 카드빚으로 신용불량 상태인 데다 큰딸은 심한 고혈압·당뇨를 앓고 있었다. 제도는 이런 사정을 감안하지 않는다. 가진 것이라고는 월세보증금 500만원밖에 없어서 재산기준은 총족한다. 하지만 근로 능력이 있는, 아니 있어 보이는 가구원이 있으면 일단 외면한다. 딸들은 실제 소득과 무관하게 한 달에 60만원 이상을 벌 것이라는 ‘추정소득’ 대상자였다.

 

 모녀가 질환자임을 호소할 수는 있다. 이를 입증하는 서류를 내면 심사대상은 될 것이다. 식당에 나가던 어머니는 팔을 다쳐 한 달 간 수입이 끊긴 상태였다. 하지만 제도는 병원 치료 내역과 함께 최소 한두 달간 소득이 없었다는 기록을 요구할 것이다. 큰딸을 만성질환자로 인정해 달라고 신청할 수도 있다. 이 경우 일년간 통원치료 기록이 있어야 하지만 큰딸은 꼬박꼬박 병원에 다닐 형편이 아니었다. 차상위 의료지원 대상으로 추천받는 길이 있지만 당분간 대기 상태로 있어야 한다.

 

 

 세 모녀는 38만원이던 월세가 50만원으로 오른 상황에서 어머니의 수입이 끊기자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갑작스럽게 어려운 처지가 된 사람들을 돕기 위한 긴급주거지원제도가 있다. 이 제도 역시 세 모녀의 위기탈출을 도와주기 어렵다. 어머니의 소득이 끊기기는 했지만 여전히 두 딸은 서류상 ‘근로능력자’이기 때문이다. 이 밖에 부상을 당해 실업상태에 빠진 근로자를 돕기 위한 고용·산재보험 급여제도가 있다. 어머니는 식당일을 마치고 귀가하다 길에 넘어져 다쳤다. 작업장이 아닌, 출퇴근 과정에서 재해를 당했기 때문에 급여대상이 되기 힘들다.

 

 

 

 정부는 세 모녀의 비극을 계기로 수급자 발굴 서비스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복지전달·홍보 체계를 보강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기초생활보장 수급기준과 긴급 의료·복지기준 등 제도 자체를 현실에 맞게 확 손질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세 모녀 같이 사회보험의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이 100만 명 이상이라고 추정한다. 어처구니없는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이번만은 정말 촘촘한 복지망을 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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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집세·공과금 70만원 남기고… 세 母女 '막다른 선택'

〈조선일보〉 2014.02.28

 

 

 

 

 

   30代 두 딸 고혈압·당뇨 앓아

   60代 엄마가 식당일로 생계… 팔 다쳐 일 못하자 동반자살

 

 

 

 

   생활고에 시달리던 세 모녀가 집주인 앞으로 '마지막' 월세와 공과금을 남긴 채 동반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27일 서울 송파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26일 오후 서울 송파구 석촌동의 한 단독주택 지하 1층에서 엄마 박모(60)씨와 큰딸 김모(35)씨, 작은 딸(32)이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세 모녀가 살던 집 창문은 청테이프로 밀봉된 상태였고, 완전히 탄 번개탄이 발견됐다. 이들은 현관문을 침대로 막아 외부인의 출입을 차단한 뒤 번개탄을 피워 자살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경찰은 전했다.

 

 

   경찰에 따르면 12년 전 아버지 김씨가 세상을 떠나면서 생계는 엄마 박씨가 식당 일을 하면서 홀로 책임졌다. 고혈압과 당뇨를 앓고 있던 두 딸은 직업을 갖지 못했고, 신용카드로 생활비를 충당하고 제때 결제하지 못해 신용 불량 상태였다. 사망한 아버지가 사업 실패로 남겨 놓은 빚도 상당액이었다고 한다.

 

 

   숨진 박씨 모녀가 남긴 봉투에는 현금 70만원이 들어 있었고, 겉면에는 집주인에게 남기는 메시지가 적혀 있었다. 집주인 임모씨는“박씨가 9년 동안 집세와 공과금을 한 번도 밀린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식당 일로 생계를 책임지던 어머니 박씨는 몸을 다쳐 돈을 벌 수 없게 되자 두 딸과 동반 자살을 결심한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지방경찰청 제공 9년 전부터 이 집에 살던 박씨는 월 50만원인 집세를 꼬박꼬박 내면서 주변의 도움을 받지 않기 위해 애썼다고 이웃들은 전했다. 그러나 박씨는 지난달 팔을 다치면서 식당 일을 그만두게 됐고, 이 때문에 생계를 이어가는 게 막막해지자 두 딸과 목숨을 끊기로 결심한 것으로 경찰은 추정하고 있다.

 

 

   세 모녀는 마지막으로 봉투에 현금 70만원을 넣고 겉면에 '주인아주머니께…죄송합니다.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집주인 임씨는 경찰 조사에서 "일주일쯤 전부터 집 안에서 텔레비전 소리만 나고 인기척이 없어 '뭔가 이상하다' 싶어 경찰에 신고했다"고 진술했다. 경찰 관계자는 "세 사람이 번개탄을 산 시기와 현장 상태 등을 종합해보면 20일 오후쯤 함께 목숨을 끊은 것으로 추정된다"며 "유족이 부검을 원치 않아 정확한 사인(死因)이나 건강 상태 등을 알 수는 없지만, 몸이 아파도 병원에 가기 어려울 정도로 경제 사정이 어려웠던 것으로 보였다"고 말했다.

 

 

  최연진 기자

 

저주 후의 문진

 

   권민경

 

 

 

엊그제 나는 당신이

죽어버리라고 빌었습니다

그때 당신은 조금이라도 죽을 맘이 생겼습니까?

조금이라도 이상한 낌새를 느껐나요?

진도 3과 7의 지진처럼

약하게 한 번 강하게 한 번

빌었는데 아무 기척 없었습니까?

기나긴 욕 속에 예언합니다 당신의 머리카락 없고 이빨 몽땅 빠진 미래

얻어맞은 당신이 끙끙 앓는 소리를 기원합니다

열병을 앓고 열병을 앓아 하나의 불덩어리로 화르륵 타버릴 당신 재로 날아갈 당신 훨훨 훨훨 나는 왜

춤을 못 출까요 방방 뛸 준비를 마쳤는데 날아오를 때가 되었는데

신명이 오르질 않네요

당신이 앓을 때 나는 멀쩡합니까?

정말 당신의 고통 속에서 나는

춤출 수 있습니까?

내가 그린 지옥도 속에서 당신은 튀겨지고 있고

당신이 사라졌다는 소식을 들은 내 표정 본 적 있습니까?

비는 대로 이루어지는 힘 저주 받을 나의 힘

스스로가 징그러워서

나는 구덩이 속으로 빨려갑니다

우리는 함께 삶아지고 구워지는 중인데

나는 자꾸 캐묻습니다

당신을 향한 원한은 효과가 있습니까? 매스껍지는 않나요?

어제와 오늘의 차이는요? 어지럽나요? 차도가 있나요? 차도가 있어요? 있어요? 있어요?

여기 없고 당신은

아니라고 아니라고 고갤 젓습니다.

 

 

 

                     —《시인동네》2013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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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민경 / 1982년 서울 출생.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졸업.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석사과정. 2011년 〈동아일보〉신춘문예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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