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창고

징소리 /문순태

법정 2011. 10. 12. 07:16

블루칩 | 조회 200 |추천 0 |2009.05.07. 16:40 http://cafe.daum.net/sangoji2/YCJ3/8 

징소리

 

  방울재 허칠복(許七福)이가 고향을 떠난 지 삼 년 만에 미쳐서 돌아와 징을 두들기며, 댐을 막은 뒤부터 밀려드는 낚시꾼들을 쫓아 댔다.

  덩실덩실 춤을 추며 징을 두들기는 칠복이의 모습은 나무탈을 쓴 도깨비 같다고들 했다.

  그리고 그가 그렇게 된 것은 고향을 잃은 서러움, 아내를 빼앗긴 원한 때문이라고들 했다.

  아무도 기다리는 사람이 없는 고향에 여섯 살 난 딸아이를 업고 불쑥 바람처럼 나타난 그는, 물에 잠겨 버린 지 삼 년째가 되는 방울재 뒷동산 각시바위에 댕돌같이 앉아서는, 목이 터져라고 마을 사람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 대는가 하면, 혼자서 고개를 끄덕거려 가며 오순도순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를 중얼거리다가도, 불컥 고개를 쳐들어 하늘을 찔러 보고, 창자가 등뼈에 달라붙도록 큰 소리로 웃어 대고, 느닷없이 징을 두들기며 겅중겅중 도깨비춤을 추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의 성질이 염병을 앓아 귀머거리가 된 사람처럼 물렁해지고, 바보처럼 느물느물해진 거였다. 황소같이 힘이 세고 성깔이 왁살스럽던 그는, 도깨비 춤추듯 징을 두들다가도 방울재 사람들이 쫓아와서 한마디만 질러 대도 슬그머니 징채를 감추고 목을 움츠리는 거였다. <중략>

  “자네 정신 말짱허니께 허는 소리네만 좋은 얼굴로 헤어지세. 지발 부탁이니 지금 떠나도록 히여.”

  강촌 영감이 볼멘소리로, 그러나 약간은 사정조로 말하고 나서 칠복의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일으키려고 했다.

  “낼 아침 떠나라 허고 싶네만, 정은 단칼에 자르는 거이 좋은겨.”

  칠복이는 아이를 업고 천천히 일어서서 희끄무레한 램프 불빛에 비춰 보이는 침울하게 가라앉은 마을 사람들의 얼굴들을 하나하나 가슴 속 깊이깊이 새기며 찬찬히 뜯어보았다. 그의 눈에서는 금방 눈물이 소나기처럼 주르륵 쏟아질 것만 같았다.

  “핑 서둘러 나가면 대처 나가는 버스를 탈 꺼여!”

  강촌 영감이 앞서 술청을 나가며 하는 말이다. 강촌 영감을 따라 칠복이가 고개를 떨구고 나갔고, 뒤이어 봉구와 덕칠이, 팔만이가 차례로 몸을 움직였다.

  봉구네 주막에서 나온 그들은 칠복이를 앞세우고 미루나무가 두 줄로 가지런히 비를 맞고 늘어서 있는 자갈길 구신작로를 향해 어둠 속을 걸었다. 그들은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칠복이의 등에 업힌 그의 딸아이가 캘록캘록 기침을 하자, 바짝 뒤를 따르던 봉구가 잠바를 벗어 덮어씌워 주었다.

  빗방울은 점점 굵어졌고 호수를 훑고 온 물에 젖은 가을 바람에 으스스 몸이 떨렸다.

  이따금씩 고속도로에서 자동차들이 헤드라이트로 눅눅한 어둠의 이 구석 저 구석을 쿡쿡 쑤셔 대며 바람처럼 내달았다. 자동차의 불빛이 길게 어둠을 가를 때마다 칠복이를 앞세우고 걷는 방울재 사람들의 가슴이 마치 총을 맞는 것만큼이나 섬찟섬찟했다.

  신작로에 당도해서 조금 기다리자 읍으로 들어가는 헌털뱅이 버스가 왔으며, 그들은 서둘러 차를 세우고 칠복이를 밀어넣었다.

  “징헌 고향 다시는 오지 말어.”

  봉구가 천 원짜리 두 장을 칠복이의 호주머니에 푹 쑤셔넣어 주며 울먹울먹한 목소리로 말했다.

  칠복이가 무슨 말인가 하는 것 같았으나 부르릉 버스가 굴러가는 바람에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들은 버스가 어둠 속에 묻히고 자동차 불빛이 보이지 않게 되어서야 말없이 돌아섰다. <중략>

  한사코 가기 싫다는 칠복이 부녀를 억지로 버스에 태워 쫓아 보낸 그날 밤, 방울재 사람들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후두둑후두둑 빗방울이 굵어지고 땅껍질 벗겨가는 소리가 드세어질 무렵, 봉구는 잠결에 아슴푸레하게 들려 오는 징소리에 퍼뜩 놀라 일어나 앉았다.

  “아니, 이 밤중에 무신 징소리당가?”

  그는 마른 기침을 토해 내고 삐그덕 방문을 열어, 송곳 하나 박을 틈도 없이 꽉 들어찬 어둠의 여기저기를 쑤석여 보았다. 어둠 속 어디선가 딸을 업은 칠복이가 휘주근하게(몹시 지쳐 도무지 힘이 없이) 비에 젖은 채 바보처럼 벌쭉벌쭉 웃으면서 불쑥 나타날 것만 같았다.

   그는 문을 안으로 걸어 잠그고 자리에 들어 아내의 툽상스러운(튼튼하기만 하고 멋이 없는) 허리를 꼭 껴안고 잠을 청하려고 했으나, 땅껍질을 두드리는 빗방울 소리 사이사이로, 징 소리가 쉬지 않고 큰 황소 울음처럼 사납고도 구슬프게 들려 왔기 때문에 잠시도 눈을 붙일 수가 없었다. 어쩌면 바람 소리와도 같은 그 징 소리는 바로 뒤란의 아카시아 숲께에서 가깝게 들린 것 같다가도 다시 댐 쪽으로 아슴푸레 멀어져 가곤 했다.

  “바람 소린지, 징 소린지.”

  봉구는 벌떡 일어나 더듬더듬 담배를 찾아 성냥불을 붙였다. 그는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하고 몇 번인가 누웠다 앉았다 하며 담배만 피웠다. 자꾸만 귓바퀴를 후벼 파고 들려 오는 징 소리가 오목가슴 깊숙이에 가시처럼 걸린 때문이었다.

  이날 밤, 팔만이도, 덕칠이도, 강촌 영감도 다 같이 방울재 안통 여기저기서 쉴새없이 들려 오는 징 소리 때문에 한숨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였다.

  징 소리는 점점 더 가깝게, 그리고 때로는 상여소리처럼 슬프게 들렸는데, 그 소리에 잠을 이루지 못한 방울재 사람들은, 그게 어쩌면 그들한테 쫓겨난 칠복이의 우는 소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들을 다 같이 했다. 그 생각과 함께 징 소리가 더욱 무서워졌으며 아침을 맞기조차 두려웠다. <하략>

 

 

 

<작품 정리>

 

갈래 : 단편소설, 연작소설

배경 : 시간 - 1970년대 / 공간 - 전남 장성호 수몰 마을

경향 : 사회 고발적

시점 :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

표현 : 주로 서술에 의지함. 인물 묘사는 간접적인 방법이 위주.

의의 : 1970년대부터 본격화된 농촌의 붕괴와 도시 빈민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사회 소설로서, 우리의 전통적 정서인 한(恨)이 현대 사회에서 어떤 모습으로 변용되어 나타나는가를 진지하게 모색한 작품.

주제 : 산업화 과정에서 소외된 농촌과 농촌 출신 도시 빈민들의 고달픈 삶.

         산업화로 인한 실향민들의 한

         산업화 과정에서 소외된 농민들의 고달픈 삶

출전: <창작과 비평> 1978년

 

 

 

<작품 해설>

 

  <징 소리>는 <창작과 비평> 1978년 겨울호에 게재된 단편 소설인데, 이후 <저녁 징 소리>, <말하는 징 소리> 등 5편의 연작을 내놓아 장편의 형태를 갖추었다. 이런 형식의 소설들은 1970년대에 특히 유행했는데, 농촌의 붕괴 문제를 다룬 이문구의 <우리 동네>, 도시 빈민 문제를 다룬 윤흥길의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한국 사회의 산업화에 따른 빈부 격차와 계층간의 갈등 문제를 다룬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등 주목할 만한 작품들이 이 시기에 나타났다.

  연작 소설은 부분적으로 독립된 단편이면서도 전체적으로 하나의 유기적 구조를 갖는 장편의 형태를 지닌 새로운 형식의 소설이다. 이는 우리 사회가 다양화되고 사회 계층의 반목이 뚜렷해지면서 하나의 시점으로 작가의 시각을 고정하지 않고 여러 각도에서 당대의 문제들에 대해 조명하고자 하는 작가 의식의 소산으로 이해되나, 문제를 천착하지 못하고 단순한 문체상의 기교로 흘러버린 문제점도 노출되었다.

  1970년대의 우리 사회는 한편으로 눈부신 경제 성장이 나타나고 다른 한편으로는 성장의 그늘 아래 속절없이 경쟁력을 잃어가는 부문이 두드러지는, 사회의 양극화가 본격적으로 나타나는 시기에 자리잡는다. 따라서, 경제 성장에 방해되는 일체의 요소 ― 농촌 진흥과 노동자 복지, 환경 보존 등은 아예 제기조차 될 수 없도록 경제의 불균형 상태가 심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심각한 분배의 불공정성과 부정 부패, 인권 유린, 황금 만능주의와 극단적인 이기주의 현상이 불거졌다. 한 마디로 말해 1970년대는 전통 사회의 붕괴 현상이 눈에 띄게 나타난 시기라 하겠다.

  작가 문순태 역시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는 주로 자신의 성장지인 전남 일대의 농촌을 주목하며, 전통적 공동체가 무너지고 선량하나 무지한 민중들이 어떻게 희생되는가 하는 점을 끈질기게 추적한다. 그는 이 소설에서 '칠복'으로 대표되는 농촌 빈민(또, 그대로 도시의 빈민이기도 하다.)의 삶을 통해 고난의 길을 걸어야 했던 우리 농민의 전통적 정서인 한(恨)을 구체화하고 있다. 장성 방울재라는 수몰 지구를 배경으로, 거대한 댐 건설로 인해 실향민들이 겪는 고향 상실의 아픔과 다시 고향을 찾으려는 몸부림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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