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
신달자
꾹꾹 누른다고 터지지는 않는다
나는 여러 번 눌러본 사람
밖으로는 고요히 숨이 머문 듯하지만
청력이 좋은 사람은 듣는다
이렇게 작은 살점의 깊은 곳에
저 먼 사막의 가쁜 호흡이
재빠르게 달려오고 있다는 것을.
그를 부르듯
다시 꾹꾹 눌러 그 깊은 안을 불러보면
절대의 사랑과 영원이 천둥 치듯
내 한 손을 허공 위로 쳐들게 한다는 것
사막이 아니라 숲이었다는 걸
생명이 뛰논다는 것
한 번의 죽음으로 영영 안 보이는 사람보다
이 긴 긴 생명으로 남은 씨앗
꾹꾹 눌러도 소리 한번 지르지 않는
이 작은 것의 이름은 우주
한 번의 죽음으로 깨워도 불러도 소리 없는
손톱 길이만한 인간의 생보다야
아슴한 골목길을 휘돌아 가고 있는 씨앗
그것이 누군가의 속울음이었다는 것을
이어가고 다시 이어갈 것이라 해도……
저 생명의 캄캄한 땅속에서
나 언제 씨앗처럼 몸 줄여 움터
이파리 하나 뻗어
땅속에 그 목소리 스칠 수 있겠나.
—《시인수첩》2017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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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달자 / 1943년 경남 거창 출생. 1964년《女像》여류신인문학상 당선, 1972년《現代文學》에 박목월 시인 추천으로 등단. 시집『봉헌문자』『雅歌』『아버지의 빛』『오래 말하는 사이』『열애』『종이』『살 흐르다』『북촌』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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