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밭 위의 점심 식사
여러분의 자랑스런 후일담이 되어드리려고
벌거벗고 앉아 있어요,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의 고양이가 되어
땅 속으로 땅 속으로 두더지가 한사코 땅을 파듯
저 멀리 흐르는 강물 소리엔
꿈의 운하를 파는 삽질 소리가 암암리에 섞여 있지요
내 곁에 한쪽 다리를 뻗고 느긋한 파트너는
토요일까지 죄를 짓고
주일날이면 교회에 가서 사함을 받지요, 그리고
풀잎에 맺힌 아침 이슬처럼 깨끗해지지요
나는 무릎 위에 손을 올리고
물려받을 주식에 대한 생각들을 인화하기 위해서
내 얼굴의 턱을 괴고 있어요
거리에서 떼쓰다가 불타 죽은
못된 불량배들에 대한 헛소문은 믿지 마세요
감춰진 샅 사이로 향긋한 바람이 들락거리는 숲속
이 그늘이 참 좋아요
굴참나무 속에 섞인 한 그루 자작나무처럼
알몸으로 앉아 있어요, 강가에서 뒷물을 마친 친구가
건너편 남자의 짝이 되기 위해 돌아오고 있네요
방부제가 섞인 이 식빵과
농약이 스며 색깔 고운 과일들, 주기도문과 함께
벌거벗은 내 몸을 함께 들어보셔요
죽어도 우리들은 썩지 않을 거예요
썩지 않는 우리들의 사랑 먹고 마시어요
이 신선한 공기는 십 년만이지요 안 그런가요
그런데, 우리들의 풍경 밖에서
우리를 엿보는 당신은 누구인가요
내 허벅지 사이로 기어 들어와
배꼽 아래까지 깊숙이 치밀어 올리는 뜨거운 시선
도대체 도대체 보이지 않는 당신은 누구지요?
이윤훈의 「옹이가 있던 자리」해설/ 권순진
옹이가 있던 자리
이윤훈
울타리 한켠 낡은 잿빛 나무판자에서
옹이 하나 아무도 모르게 빠져나가고
아이가 물끄러미 밖을 내다본다
그 구멍에서 파꽃이 피었다 지고
분꽃이 열렸다 닫힌다
쪼그리고 앉아 늙은 땜쟁이가
때워도 새는 양은냄비 솥단지를 손질하고
겨울의 궤도에 든 뻥티기가
등이 시린 이들 사이로 행성처럼 돈다
꿈이 부풀기를 기다리며
코로 쭉 숨을 들이키는 이들
홀쭉한 자신의 위장을 닮은 자루를 들고 서 있다
이승의 끝모서리에 이를 때마다 나는
아이의 그 크고 슬픈 눈과 마주친다
나는 아픈 기억이 빠져나간 그 구멍으로
저켠 길이 굽어드는 곳까지 내다본다
누가 잠자리에 들 듯 목관에 들어가 눕는다
뚜껑이 닫히고 어둠이 쿵 쿵 못질하는 소리
문득 옹이 하나 내 가슴에서 빠져나가고
세상 한 곳이 환히 보인다
—시집『나를 사랑한다, 하지 마라』(천년의 시작, 2008)
...............................................................................................................................................................................
이 시는 200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으로, 울타리 나무판자에서 옹이가 빠져나간 구멍으로 ‘물끄러미 밖을 내다보는’ 아이를 통해 '코로 쭉 숨을 들이켰'던 가난했던 골목을 거쳐 ‘저켠 길이 굽어드는 곳까지 내다보는’ 중년 여성 시인의 매력적인 상상력과 서정적 자아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오랜만에 이 시를 다시 읽으며 치밀한 구도 위에 사소하고 범상한 것들을 통찰하여 배치하는 시인의 솜씨에 새삼 감탄한다.
옹이는 나무 가지끼리 서로 치대며 자라는 동안 햇빛을 충분히 받지 못한 가지가 제 몸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영양분을 만들지 못해 결국 쇠약해져 죽은 그루터기를 말한다. 나무 전체의 균형을 위해 스스로 도태한 결과일 수도 있겠는데, 그렇게 죽은 옹이가 나무 몸속으로 들어가 박혀 나무를 자를 때 단면으로 흔적이 나타난다. 하지만 옹이부분은 나무향이 가장 깊은 곳이고, 나무의 가장 단단한 부분이기도 하다.
고난 뒤에 생긴 상처의 아문 흔적이 옹이인 셈이니, 돌이켜보면 우리 인생에서도 가장 힘들었던 시간들을 통과하면서 단단해졌을 것이고, 그 시간 속에 생의 가장 깊은 향이 배어든 것은 아닐까. 우리의 삶이 절망 쪽으로 기우뚱할 때 얼른 희망의 방향으로 균형을 잡아주는 옹이 같은 사랑도 있었을 것이다. 시간과 자아의 극렬한 싸움 끝에, 한때는 눈부시게 꽃물을 밀어 올렸을 그 참담의 자리가 ‘내 가슴에서 빠져나가고’서야 무욕의 맑은 눈으로 ‘세상 한 곳이 환히 보인’ 것이다.
권순진 (시인)
(2009. 4. 5) 〈미네르바〉2009년 여름호
숭례문 오감도(烏瞰圖)
이 나라에는 숭례문을 무서워하는 사람들과
숭례문을 무서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어울려 살고 있소
집을 한 채만 가지고 있거나 집이 한 채도 없는 사람들은
숭례문을 무서워하고
집을 두 채 이상 가지고 있으며 땅이 많은 사람들은
숭례문을 조금도 무서워하지 않소
숭례문을 무서워하지 않는 사람들은 숭례문을 무서워하는 사람들이 무섭지만
숭례문을 무서워하는 사람들은 숭례문을 무서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무섭지 않소
제1의 사내가 촛불을 들고 숭례문으로 걸어가고 있소
제2의 사내가 촛불을 들고 숭례문으로 걸어가고 있소
제3의 사내가 촛불을 들고 숭례문으로 걸어가고 있소
제4의 사내가 촛불을 들고 숭례문으로 걸어가고 있소
제5의 사내가 촛불을 들고 숭례문으로 걸어가고 있소
제6의 사내도 촛불을 들고 숭례문에서 걸어오고 있소
제7의 사내도 촛불을 들고 숭례문에서 걸어오고 있소
제8의 사내도 촛불을 들고 숭례문에서 걸어오고 있소
제9의 사내도 촛불을 들고 숭례문에서 걸어오고 있소
제10의 사내도 촛불을 들고 숭례문에서 걸어오고 있소
제11의 사내가 촛불이 되어 숭례문에서 걸어나오고 있소
제12의 사내가 촛불이 되어 숭례문에서 걸어나오고 있소
제13의 사내가 촛불이 되어 숭례문에서 걸어나오고 있소
길은 지금 숭례문으로 뚫려 있고 숭례문은 분신자살을 하고 거기 이제 없소
촛불을 들고 걸어가거나 촛불이 되어 걸어오는 사람들 가슴 속엔
불타서 주저앉은 숭례문 한 채씩이 꺼멓게 들어앉아 있소
( 2008. 8. 20 ) <시와상상>2008년 가을호
좋은 시와 시인을 섬기는 시지 《시인세계》를 접으며
모든 시작은 끝을 향한다. 시작이 없다면 당연히 끝도 없다. 생명이 시작이라면 죽음은 그 끝이다. 애초에 태어나지 않은 자는 죽지도 않는다. 당연한 말이지만 태어났기에 죽음을 맞는 것이다. 만물은 시작과 끝을 반복하면서 이 세상을 채우고 만든다. 일과 사물, 국가와 문명 같은 모든 시작이 있는 것은 결국은 끝을 향하여 내달리다가 막을 내리는 게 숙명이다. 기원전 6세기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불멸’이 오히려 ‘유한’이고, 끝과 죽음을 머금은 ‘유한’이야말로 ‘불멸’을 머금는다는 역설을 펼쳤다. “불멸은 유한하며, 유한한 것은 불멸한다./살아 있는 사람은 타인의 죽음을 살며/죽은 사람은 타인의 삶을 산다.”(「단장」) 살아 있는 사람은 이미 죽은 사람의 시간을 살고 있다. 거꾸로 죽은 사람은 살아 있는 사람의 시간에 기대어 자신들의 죽음을 산다. 시작은 끝으로 이어지고, 끝은 다시 시작을 물고 도는 게 세상 만물에 작용하는 엄연한 법칙이다. 불멸은 유한한 모든 것들의 불가능한 꿈이기에, 우리는 끝을 애석해하지 않는다. 다만 체념하고 달관을 바랄 뿐이다. 한 알의 밀알이 떨어져야 비로소 더 많은 밀알을 맺듯, 끝은 언제나 또 다른 결실을 낳는 또 다른 시작이 되는 것이기에!
한 시인은 “문 열어라, 문 열어라 꽃아,/벼락과 해일海溢만이 길일지라도/문 열어라 꽃아, 문 열어라 꽃아.”(서정주, 「꽃밭의 독백」)라고 노래했다. 예나 지금이나 시대의 비천함을 견디며 시 잡지를 만드는 일은 꽃나무가 온갖 간난艱難을 극복하고 꽃을 피워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난한 일이다. 그 지난함을 벼락과 해일의 길을 꿋꿋하게 가는 일에 견줄 수도 있을 테다. 그렇다고 돈이나 명예가 크게 생겨나는 일도 아니다. 오로지 시를 사랑하고 좋은 시를 써내는 시인들을 섬기고자 하는 마음만이 실익도 없는 이 일의 숭고를 되새기는 가느다란 근거가 되었을 뿐이다. 좋은 시들은 여전히 모호하고 불확정적인 것들에 형태와 윤곽을 주며 세계를 빛 속으로 끌고 들어온다. 시를 사랑하는 이들은 그것을 모으고 펼치는 사업을 펼쳐냈다. 10여 년 전 우리는 그 사업을 씩씩하게 시작하는 자였으나, 앞에 선 많은 이들은 이미 끝낸 일이었다. 아마도 우리의 씩씩함은 다음과 같았을 것이다. “다리도 다시 놓고,/역도 새로 지어야 하리./비록 닳아서 누더기가 될지언정/소매를 걷어붙이고.”(비스와바 쉼보르스카, 「끝과 시작」) 우리는 앞선 이들의 순결한 뜻을 기리며 창간호를 내고, 계절마다 쉬지 않고 머리를 맞대고 분분한 의견을 나누며, 이 일에 소매를 걷어붙이고 매진하였다. 어느덧 봄과 가을을 열한 번씩이나 넘기고 《시인세계》는 열한 돌을 훌쩍 넘겼다.
열한 돌을 넘긴 《시인세계》가 이번 호로 휴간한다는 쓸쓸한 소식을 전한다. 그동안 《시인세계》는 한국시의 내연과 외연을 늘리고, 당대의 문학적 이슈들을 선도적으로 내놓으며 미디어의 주목을 크게 받아 왔기에 이 휴간 소식이 놀랍고 당혹스러운 독자도 있겠다. 휴간의 직접적인 이유는 시 잡지를 꾸리는 일의 지난함 때문이겠으나 그밖에도 《시인세계》를 창간할 때와는 많이 달라진 사회적 환경에서도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과거와 견줘 믿어지지 않을 만큼 많은 시 잡지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도처에 시인들이 차고 넘친다. 그럼에도 시집을 제 돈 내고 사서 읽는 독자는 눈에 띄게 줄고, 시 잡지 역시 거의 팔리지 않는다. 시와 시인들은 홀대를 받는데, 시인 인구는 늘고 시 잡지들이 난립하는 환경 속에서 《시인세계》를 펴내는 일의 보람과 기쁨도 크게 줄어들었다.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지난 11년 동안의 일들을 냉정하게 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이 일을 마냥 끌고 나가기보다는 이쯤에서 휴간을 하고 내실을 꾀하자는 차가운 결단에 이의없이 동의했다. 그런 사정으로 설렘과 기대를 갖고 시작한 《시인세계》를 그만 접는다. 그동안 《시인세계》를 아끼고 사랑해 주신 여러 시인들과 독자 여러분들께 따뜻한 인사를 드린다. 끝은 종말이 아니다. 새 시작을 준비하는 재충전의 시간일 수도 있다. 우리는 더욱 새로워진 《시인세계》로 다시 돌아와 만나기를 소망한다.
_김종해·장석주·권혁웅
시인세계 통권 제45호 2013년 가을
이어령의 권두 시론 | 끝없이 가벼워지는 생의 연습
시가 있는 이 한 컷 | 조태일 시인이 시지 《시인》을 간행할 무렵 | 홍기삼
시인이 남긴 이야기 <성찬경> | 아버지는 | 성기완
■기획 특집 | 웃음을 담은 시, 즐거움을 주는 시 짤막한 유머와 해학, 치유와 웃음을 선사하는 촌철살인의 시의 미학 유안진 |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 이정록 | 이황이면 총각감나무로
오탁번 | 좋은 시는 다 우스개다 박성우 | 뺨따귀를 때린 이유?
문정희 | “응” 고영민 | 내 밑을 지나갈 그분의 시를 읽다
안도현 | 운전사와 승객 모두 승리한 날 오 은 | 수제비 속에 빠진 수세미까지
반칠환 | 맛있는 생명나무 박순원 | 시가 웃긴가, 사는 게 웃긴가?
■ 기획 특집 총론 | 세계의 혼돈을 바라보는 눈 | 김춘식
신작시
이제하 | 인왕재색仁旺齋色
송재학 | 유채밭·난간하엽欄干荷葉
박 철 | 너의 화엄·두 사람
김은정 | 삼천포로 빠지세요 1·삼천포로 빠지세요 2
권혁웅 | 전생 이야기·짬뽕과 담배
진은영 | 월요일에 만나요·청춘 5
고 영 | 독서의 방법·출근길 주의사항
장인수 | 총각 선생님·혀
양해기 | 홍시·꼽추
이병일 | 불면과 불멸에 관한 명상·흡혈판의 먼 하루
황은주 | 분분芬芬·묘시를 호객하다
김시언 | 쿠쿠·인턴
제22회 《시인세계》 신인작품 공모 당선작 발표
■ 심사평 | 김종해·장석주
연재 | 조선 후기 시론의 행간 읽기·7| 나는 투식套式을 거부한다 | 정민
새 발굴 자료 | 새롭게 발견된 김기림의 시와 산문
<시> 날개를 펴렴으나(외 6편) | <산문> 나의 서울 설계도設計圖
■ 새로 발굴된 김기림의 작품들·김종욱
■Zoom-in | 시인의 세계―오 세 영
존재의 외로움― 시류에 흔들리지 마라 | 김광일
오세영 자선 대표시 5편
그릇·겨울 노래·자화상·
은산철벽銀山鐵壁·표절
■권혁웅이 추천하는 젊은 시인들
백상웅 | <신작시> 주차 관리인 외 1편
<자선시> 거울 <시론>
성동혁 | <신작시> 팔레트나이프 외 1편
<자선시> 촛농 <시론>
신두호 | <신작시> 나비와 전체 외 1편
<자선시> 고양이 관념론 <시론>
연재 | 시가 있는 술자리·4 | 내 앞의 술 | 이준규
내가 좋아하는 시와 시인 <이원> | 공기의 콜렉터 | 이신조
<시인세계가 선정한 시집> 서평
장옥관 시집 | 환幻의 춤사위 | 강경희
황병승·김상혁 시집 | 기도의 두 형식 | 함돈균
• 편집자의 말 | 좋은 시와 시인을 섬기는 시지 《시인세계》를 접으며
•정기 구독자분들께 드리는 말씀
열두 살의 구름
흰 염소를 보았나
담배도 먹고
내가 찢어낸 공책도 야금야금
씹어먹던 흰 염소
언덕배기 돌배나무 밑동을
휘휘 감고 돌다 짧아진 목줄이 아파서
매애매애 울던
구름, 흰 구름이었나
어디에도 흰 염소가 보이지 않는다
기차표 고무신을 신고
달리다 엎어진 언덕길 기다란 줄이 끊어져서……
눈보라 속의 십리 밤길
소금장수가 귀신에게 홀린 산길을 피해
철도 침목 또박또박 받아 읽으며
바람을 안고 가다 뒤돌아보았을 때,
이마에 하얗게 불 밝히고 덤벼드는 철마
소스라치던 열두 살의 '미카'도
외할아버지 수염 같은 턱수염의
그 흰 염소를 끌고 철둑 너머로 간
구름이었나
열두 살의 구름, 흰 구름.
( 2009. 4. 11 ) <문학과창작> 2009년 여름호
예술을 창작하는 이유 (부분 발췌)
심보선
P.34 : 우리가 예술을 창작하고 해석할 때 행복한 이유는 자신의 평범하고 궁색한 처지를 어떤 표정과 몸짓으로 표현하고, 나아가 그것을 친구-타인과 함께 지각하고 나누면서 인간적으로 갱신되고 고양되기 때문이다. 이 행복감은 단순히 심리적인 위로의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창작(해석)이 이루어지고 친구-타인과의 우정이 맺어지는 장소와 관계 속에서 현실화된다. 우정으로서의 예술이 실행되는 이 희박하고 희미한 장소, 관계야말로 속물화와 동물화를 강요하는 신자유주의의 지배적 현실에 대항하는 현실적 거점이다. 바로 이 거점에서 예술의 말과 행동은 삶의 평범함과 궁색함을 수용하면서 거부하는, 증언하면서 저항하는 실천으로 등장한다. 따라서 예술은 겉으로는 모순어법처럼 보이지만, 생생한 현실성을 가진 감각과 신체를 구현한다. 삶의 평범함과 궁색함을 창작과 해석, 친구-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지각하고 나눌 때, 인간은 비범해지고 위대해진다. 평범한 비범함, 궁색한 위대함이야말로 우정으로서의 예술이 밝히는 인간적 실존이다. 이 실존으로 인해 인간은 가까스로 타인과 함께 평등해지고, 가까스로 자신의 자유를 되찾고, 가까스로 세계의 비참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것이다.
P.193~194 : 나는 되묻고 싶다. 재능이 없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 모든 악조건을 무릅쓰고서라도 창작에 매달리게 하는 힘은 무엇인가? “사회학적으로, 경제학적으로 승자 독식의 논리가 문학장에서 확장되고 있습니다. 당신의 재능을 판단해 보건대 성공의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습니다. 이 말은 아프게 들리겠지만 사실 당신을 위해서 하는 말입니다.”라고 이야기를 해도 창작을 그만두지 않는, 혹은 창작을 그만두었다가도 언젠가는 창작으로 돌아오리라 결심하게 하는, 그리고 기어이 돌아오게 하는 힘은 무엇인가? 어리석음인가? 집착인가? 과욕인가?
창작을 하는 모든 이에게, 프로건 아마추어건, 누구에게나 드리우는 빛이 있다. 그것은 숭배의 빛도 선망의 빛도 아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문학적-예술적 제작, 즉 창작의 기쁨에서 오는 행복의 빛이다. 이 행복이야말로 창작자가 창작을 멈출 수 없는 첫 번째 이유이다. 니체는 예술이 창작자에게 “행복의 약속”을 제공한다면서 “사심 없음(disinterstedness)”이라는 관념에 기초한 칸트 미학을 비판한 바 있다. 그는 예술이 너무나 “사심 있는(interested)” 활동이라고 강조했다. 그런데 이때의 사심이란 위대한 단독자로 숭배를 받고 싶다거나, 대중적 인기를 끌고 싶은 사심이 아니다. 니체에 따르면 그것은 피그말리온이 자신이 만든 조각상이 아름다운 여인으로 살아나 자신과 영원히 살았으면 하고 바랄 때의 간절한 소망 같은 사심이다. 창작의 기쁨은 창작자가 자신에게 주어진 재료와 놀고, 싸우고, 씨름하고, 사랑을 나누면서 그것에 질서와 형태를 부여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작품과 마치 연인과도 같은 인격적 관계를 맺을 때 발생하는 것이다.
P.195~196 : 나는 여기서 “누구나 글을 쓴다면, 등단하지 않더라도 시인이요, 소설가다.”라는 나이브한 주장을 펼치는 것이 아니다. 창작이란 창작자 자신도 명확히 알지 못하는 최선의 결과를 낳으려는 간절한 소망에서 출발하며 그 소망을 이루려는 의지를 발휘함으로써 중단 없이 이어진다. 나에게 문학적 재능이란 선천적으로 주어진 능력이 아니라 그 소망과 의지를 끝내 행복에 다다르게 하는 집중력과 주의력을 뜻한다. 그토록 쉼 없는 집중력과 주의력을 요한다는 점에서 창작의 행복은 달성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 창작의 행복을 달성하기 어려운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창작의 행복은 지배적 사회질서를 따라 노동력과 자원을 분배하고 작동시키는 제도적 장치들이 강력하면 강력할수록 달성하기가 쉽지 않다. 자크 랑시에르를 따르자면 창작의 행복은 제도적인 장치들이 사회적 신체들에게 할당한 감각의 고정된 자리를 거스르고 가로지르며, 그것과 싸우며 성취되는 것이다. 요컨대 창작의 행복은 사회적으로 규정된 행복, 즉 ‘그저’ 성공과 안정에 안주하기를 거부하며 어렵사리 지켜내는 것이다.
나는 문학 창작의 행복이 창작자 자신이 혼자서 느끼고 마는 자족적인 행복이라고 말하려는 것도 아니다. 창작자는 언제나 타인의 인정을 필요로 한다. 창작자는 자신의 행복이 타인의 행복으로 ‘나누어지기’를 원한다. 이것이 바로 인정 욕망이다. 그런데 현대의 예술장, 혹은 문학장은 인정 욕망을 소수에게만 선망의 빛을 허락해 주는 승인(approval) 장치들을 통해 충족시키려 한다. 상승하는 세일즈 포인트와 문학상 수상, 메이저 신문과 잡지의 언급, 비평가의 심오한 해석 등이 불안한 창작자들을 임시적으로 안심시키고 위로해 주는 것이 그 예이다. 그러나 인정(recognition)이란 무엇보다 ‘다시-알아봄(re-cognition)’이다. 인정이란 창작자가 제작 과정에서 작품에 투여한 열정과 의미를 독자가 다시 알아봐 주는 것이다. 따라서 인정은 외적인 척도들에 의해서 작품의 가치가 평가되는 ‘승인’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심보선, 『그을린 예술』(2013 민음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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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보선 / 1970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과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사회학 박사과정을 졸업했다. 199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 「풍경」이 당선되면서 등단하였다. 현재 경희사이버대학교 문화예술경영학과 조교수로 재직 중이며, 《인문예술잡지 F》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시집으로 『눈앞에 없는 사람』(2011), 『슬픔이 없는 십오 초』(2008)가 있다.
강변북로_강인한
내 가슴의 동쪽에서 서쪽으로
달이 지나갔다.
강물을 일으켜 붓을 세운
저 달의 운필은 한 생을 적시고도 남으리.
이따금 새들이 떼 지어 강을 물고 날다가
힘에 부치고 꽃노을에 눈이 부셔
떨구고 갈 때가 많았다.
그리고 밤이면
검은 강은 입을 다물고 흘렀다.
강물이 달아나지 못하게
밤새껏 가로등이 금빛 못을 총총히 박았는데
부하의 총에 죽은 깡마른 군인이, 일찍이
이 강변에서 미소 지으며 쌍안경으로 쳐다보았느니
색색의 비행운이 얼크러지는 고공의 에어쇼,
강 하나를 정복하는 건 한 나라를 손에 쥐는 일.
그 더러운 허공을 아는지
슬몃슬몃 소름을 털며 나는 새떼들.
나는 그 강을 데려와 베란다 의자에 앉히고
술 한 잔 나누며
상한 비늘을 털어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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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북로’는 서울특별시의 도시고속화도로이다. 서울시민이라면 누구라도 이 길을 지나지 않은 자가 없으리라. 강변북로를 따라 푸른 한강이 유유히 흐르는 것을 보면 마음이 편안해지곤 하는데, 이 시에서의 강변북로는 비단, 길이라는 서정적 이미지보다는 지난 어둠의 역사가 내면화 되어 있다.
“강물을 일으켜 붓을 세운 저 달의 운필은 한 생을 적시고도 남으리.”
시인은 한 시대나 사회를 이끌어가는 인도자의 역할을 해야 마땅하리라. 불의를 보고도 눈감고 못 본 척하기에는 시인의 양심이 허락지 않기에 단호히 붓을 들고 써야 함을 이 한 구절로 대신하고 있다. 그러나 시대적으로 불온한 시기였기에 “검은 강”으로 은유된 ‘검은 역사’가 품고 있는 진실을 힘없는 새, 즉 시인을 비롯한 일반인들이 수면 밖으로 실어 나르기엔 힘에 부쳤고, 꽃노을의 아름다움에 현혹되어 그만 떨구고 갈 때가 많았다.
민주화 운동의 진전과 사람들의 의식이 높아지면서 군사정권 유신독재에 항거했으나 절대 권력자는 내밀한 검은 역사가 밖으로 드러나지 못하도록 밤이면 “금빛 못을 총총히 박았는데” 4연에서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박정희 정부는 이른바 경제개발 5개년에 빛나는 한강 백사장에서 고공의 에어쇼를 화려하게 펼치곤 하였고, 쇼를 보기 위해 많은 군중이 몰렸다고 한다.
또한 한 여인이 총격에 의해 피살된 ‘정ㅇㅇ씨 살해사건’이 강변북로 부근에서 발생하였으며, 이 사건은 세간에 권력층에 의한 암살이라는 의혹을 샀다. 진실에 반하고 정의에 어긋나는 비리를 아무리 감추려 해도 진실은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는 수면 위로 드러나는 법.
굽이굽이 질곡의 세월을 견디고 먼 시간을 건너온 새들이 “슬몃슬몃 소름을 털”듯 시인은 아파트 베란다에서 그 강과 대면하고 있다. 시대의 아픔을 간직한 “강을 데려와 술 한 잔 나누며”, 화해를 청하며 강의 상한 비늘을 이제는 위로해주고 싶다고 고백하며 붓을 들고 있다.
_ 조경희(시인)
—《시사사》2012년 11-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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