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에게 가장 행복한 사건은
시로 숨을 쉬고
시로 잠을 자고
시로 걸어다니고
시로 살다가
시로 죽는다는 것
시를 쓰는데 대단한 이유라도 있는 듯
왁자지걸 지껄이는 시인 보다는,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저 시가 좋아서 시를 쓰는 듯
말없이 돌아서가는 시인의 뒷모습이 훨씬 고귀하고
아름답게 느껴질 때가 많다
어차피 시인의 길은 혼자서 터벅터벅 걸어가야만 하는
멀고도 험하고 외로운 영혼의 길.
이를테면 자신의 그림자가 아니면 그 어떤 사람과도 함께
동행할 수 없는 안으로의 길고 긴 여행이리라.
사실은 어제도 그 포장이 안된 길을 이미 많은 시인들이 선험적으로 걸어갔고
내일이면 또 많은 시인들이 운명처럼 뒤를 따라서 오게 될
길이 없는 그 길
무엇을 가운데 두고 재미있게 놀려면 반드시 두 사람은 있어야 하는데
시인들은 혼자서도 잘 놀수가 있고 혼자 있어도 즐겁다고 이야기를 하는,
아무래도 좀 모자라는 구석이 많은 흔하지 않은 종족들
언제나 활짝 피어 있는 눈이 부신 꽃보다는 술에 취한 듯
비틀비틀 허공에서 떨어지는 낙엽에서 더 많은 사랑과 아름다움을
느끼는 바보 등신
누구의 말마따나 세상사는 것을 내려놓고 이제부터는 시를 쓰기만
하겠다는, 조금은 맛이간 머저리들.
시는 이제까지 배우고 익혀왔던 모든 개념적인 지식이나 그 알음알이들을
미련 없이 내다 버리는 아무것도 모르는 일자무식의 세계로 손수
찾아들어가는
행복한 공부라는 것이다
시인이라면
진정한 시인이라면
적어도 시를 쓰는 것 보다
시를 안 쓰는 것이 더욱 어렵다는
것을 깨달은 시인이라면
'스크랩 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3년 신춘문예 시당선작 (0) | 2013.01.05 |
---|---|
2013년 신춘문예 시 당선작 (0) | 2013.01.02 |
가을편지 /배미애 시 (0) | 2012.09.11 |
작중인물들의 관계와 역할 (0) | 2012.07.26 |
문학 작품속 '상징'의 힘 (0) | 2012.07.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