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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참모습

법정 2012. 12. 12. 21:19

시인에게 가장 행복한 사건은

시로 숨을 쉬고

시로 잠을 자고

시로 걸어다니고

시로 살다가

시로 죽는다는 것

 

시를  쓰는데 대단한 이유라도 있는 듯

왁자지걸 지껄이는 시인 보다는,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저 시가 좋아서 시를 쓰는 듯

말없이 돌아서가는 시인의 뒷모습이 훨씬 고귀하고

아름답게 느껴질 때가 많다

 

어차피 시인의 길은 혼자서 터벅터벅 걸어가야만 하는

멀고도 험하고 외로운 영혼의 길.

이를테면 자신의 그림자가 아니면 그 어떤 사람과도 함께

동행할 수 없는 안으로의 길고 긴 여행이리라.

 

사실은 어제도 그 포장이 안된 길을 이미 많은 시인들이 선험적으로 걸어갔고

내일이면 또 많은 시인들이 운명처럼 뒤를 따라서 오게 될

길이 없는 그 길

 

무엇을 가운데 두고 재미있게 놀려면 반드시 두 사람은 있어야 하는데

시인들은 혼자서도 잘 놀수가 있고 혼자 있어도 즐겁다고 이야기를 하는,

아무래도 좀 모자라는 구석이 많은 흔하지 않은 종족들

 

언제나 활짝 피어 있는 눈이 부신 꽃보다는 술에 취한 듯

비틀비틀 허공에서 떨어지는 낙엽에서 더 많은 사랑과 아름다움을

느끼는 바보 등신

 

누구의 말마따나 세상사는 것을 내려놓고 이제부터는 시를 쓰기만

하겠다는, 조금은 맛이간 머저리들.

 

시는 이제까지 배우고 익혀왔던 모든 개념적인 지식이나 그 알음알이들을

미련 없이 내다 버리는 아무것도 모르는 일자무식의 세계로 손수

찾아들어가는

행복한 공부라는 것이다

 

시인이라면

진정한 시인이라면

적어도 시를 쓰는 것 보다

시를 안 쓰는 것이 더욱 어렵다는

것을 깨달은 시인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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