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어울리지 않는 장식은 하지 않은 것만 못하다-좋은 문장의 조건 소설은 이야기이고, 그러나 이야기만은 아니고, 세계에 대한 작가의 입장, 즉 세계관이 들어가야 하고, 그러나 그것이 이야기 속에 적절하게 용해되어야 하고, 그래서 마치 추어탕 속의 미꾸라지가 그렇듯 이야기에 완전히 녹아들어 작가의 생각이나 의도가 보이지 않아야 하고, 독자는 다만 이야기를 통해 그것을 전달받아야 한다. 이야기는 관념을 품어야 하고, 관념은 이야기를 향해 열려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재미있는 이야기든 심오한 생각이든 작가는 그것을 어떻게 전달하고 독자는 그것을 어떻게 전달받는가? 여기에 ‘자유’라는 제목을 단 조각이 하나 있다고 하자. 학생모 차림의 젊은 청년들이 깃발을 들고 함성을 지르고 있다고 하자. 이 조각 작품 역시 작가의 어떤 생각과 형상을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된 재료는 돌이거나 청동이다. 조각가는 돌이나 청동을 잘 다루어야 한다. 표현하려고 하는 관념이 훌륭하고 형상이 근사하다고 해서 좋은 조각품이 탄생하는 것은 아니다. 그 훌륭한 관념, 그 근사한 형상이 돌이나 청동에 잘 표현되었을 때 좋은 작품이라고 한다. 돌이나 청동을 잘 다루어야 한다는 것은 그런 뜻이다. 소설의 재료는 언어이고 문장이다. 어떤 고상한 생각이나 어떤 근사한 이야기가 좋은 소설이 되기 위해 서는 그것들이 잘 표현되어야 한다. 조각가가 돌이나 청동을 잘 다루어야 하는 것처럼 소설을 쓰려는 사람은 문장을 잘 다루어야 한다. 문장은 소설의 처음이고 또 마지막이다. 소설의 기본을 이루는 것도 문장이고, 소설을 완성시키는 것도 문장이다. 소설이 되었느냐 되지 않았느냐를 가늠하는 첫 번째 기준 이 문장이고, 소설의 격과 차원을 운위할 때 빼 놓을 수 없는 마지막 기준도 문장이다. 소설을 쓸 때 우리가 이용하는 문장의 양식은 대체로 서사와 묘사이다. 더러 설명을 하기도 하고 드물 게는 논증을 써먹기도 하지만 그러나 소설 문장에서 중요한 것은 서사와 묘사이다. 서사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밝히는 글이다. 묘사는 ‘그것이 무엇인가’를 밝히는 글이다. 서사는 시간의 흐름을 기술하고, 묘사는 공간의 양상을 기술한다. 서사는 시간적인 글쓰기이고 묘사는 공간적인 글쓰기이다. 서사는 움직임이나 행동에 대해 말해 주고, 묘사는 모양이나 양상에 대해 그림을 그려 보여 준다. 서사는 동사를 필요로 하고 묘사는 형용사를 필요로 한다. 작가 개개인의 성향에 따라 묘사 위주의 소설을 쓰거나 서사 위주의 소설을 쓰기는 하지 만 묘사만으로 된 소설, 서사만으로 된 소설은 없다. 묘사만으로 일관된 글은 실감을 자아내지만 지루 해지기 쉽고, 묘사가 빠진 채 서사만으로 쓰인 글은 속도감을 주는 대신 스토리 위주라는 인상을 줄 가능성이 높다. 묘사와 서사, 대화와 설명이 서로 섞여서 소설의 문장을 이룬다. 심지어는 한 문장 안에 이 요소들이 한꺼번에 들어가기도 하다. 따라서 묘사냐 서사냐를 따지고 신경 쓰고 하는 일은 무의미하다. 따지고 신경 써야 할 일은 좋은 문장을 쓰는 일이다. 좋은 문장의 첫 번째 조건은 정확성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문법적으로 정확해야 하고 논리적으로 정확해야 한다. 올바른 어휘를 구사해야 하고 주술 관계를 올바르게 써야 하고 문장 성분들 을 적절하게 배치할 수 있어야 한다. 논리적으로 부정확하여 의미의 혼동을 야기해서도 안 된다. 흔히 문법학자는 문법을 만들고 문학가는 문법을 파괴한다고 하는데, 완전히 옳은 말은 아니다. 문학가라고 해서 문법에 맞지도 않는 얼토당토않은 문장을 함부로 쓰는 것은 아니다. 기존의 문법으로는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전하는 데 한계를 느낄 때 어쩔 수 없이 기존의 문법에 없는 문장을 사용한다는 뜻이지 문법을 무시한다는 뜻은 아니다. 문법은 글을 쓰는 이가 걸어가는 길이다. 문법을 파괴할 수 있는 사람은 문법으로 갈 수 있는 길을 다 걸어 보고 그 끝에 이른 사람일 것이다. 장식적인 문장, 표현의 효과를 의식한 문장은 정확한 문장 을 구사할 줄 아는 사람이 추구해야 할 다음 조건이다. 정확한 문장만을 구사하다 보면 자칫 글이 건조 해지기 쉽다. 소설 문장이 다른 문장과 다른 것은 단순한 의사소통 수단이 아니라는 데에 있다. 설명 하는 글이나 설득하는 글은 사실을 정확하게 전달하고 의사를 분명히 알리면 그만이다. 사실의 정확한 전달과 의사의 빠른 소통이 유일한 목적이므로 되도록 직접적이고 분명한 어휘와 문장을 사용해야 한다. 그러나 문학 작품은 정확한 전달과 빠른 소통만을 지향하지 않는다. 한 걸음에 갈 수 있는 길을 열 걸음에 가기도 하고, 한 마디면 될 말을 여러 마디 말로 나누어 전하기도 한다. 간접적인 어휘들, 우회하는 표현들, 상징적인 장치의 도입 등이 매우 중요하게 된다. 그러나 이것이 애매모호하거나 막연한 문장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애매모호한 문장이라는 것은 담고 있는 의미, 즉 내포가 흐리멍 덩해서 그 문장이 지시하는 바를 가늠하기가 어려운 문장을 말한다. 막연한 문장이라는 것은 담고 있는 의미, 즉 내포가 지나치게 넓어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 없는 문장을 말한다. 은유적인 문장은 의미의 전달을 지연시키긴 하지만 의미의 전달을 방해하는 문장은 아니다. 의미를 정확하게 전달하지 못 하는 장식으로서의 문장은 공허하고 무의미하다. 문맥이 잡히지 않는 문장, 무슨 말인지 종잡을 수 없는 문장, 문법적으로 틀리고 논리적으로도 오류인 문장, 아예 문장이 되지 않는 문장을 장식적인 표현으로 가리려고 한다면 그것은 크게 잘못 생각한 것이다. 어울리지 않는 장식은 하지 않은 것만 못 하다. 정확한 문장을 구사하고 표현의 효과를 높이는 문장을 쓸 줄 안다면 이제 필요한 일은 자기만의 문장을 갖는 것이다. 소설 문장에서 중요한 것은 창의적인 발상이고 남다른 시각이고 자기만의 문장을 구사하는 일이라는 사실은 소홀하게 다뤄질 수 없다. 소설은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는 행위이다. 창조 행위는 새로움과 변별성을 요구한다. 누구나 하는 말을 누구나 하는 방식으로 늘어놓는 문장에 이끌릴 리 없다. 평범하고 상투적인 표현을 무엇보다 경계해야 한다. 몇 줄만 읽어 보아도 누구 소설인지 금방 알아맞힐 수 있는 작가들이 있다. 그것은 그들이 독특 한 자기 목소리를 문장에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자기 문체를 획득하고 있는 것이다. 문체는 글을 쓰는 이의 개성과 체질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난다. 어떤 문체를 선택할 것인가. 문체 사이 에 옳음과 그름, 우월함과 열등함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자신에게 적합한 문체가 있을 뿐이다. 자신의 체질과 개성에 맞는 문장을 개발하는 일이 문장 훈련의 마지막 단계라고 할 수 있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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