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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어떻게 쓸 것인가 (4)

법정 2012. 7. 22. 23:23

 

박종헌/시를 어떻게 쓸 것인가 4||♧ 시/소설 이론 ♧
 

박종헌/시를 어떻게 쓸 것인가 4

 

시를 어떻게 쓸 것인가


3. 시 쓰기와 고치기

시 쓰기는 단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수없이 많은 퇴고의 과정 속에서 완성을 향해 나아갈 뿐이다. 어쩌면 이 과정이 몹시 지루하고 괴로운 일이다. 그러나 바로 이 과정이 창작의 과정이고 자신을 확인하는 아주 귀중한 시간이다. 고쳐 쓰는 시간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시가 태어날 확률이 높아간다고 할 수 있다. 하나의 촉발된 시상을 부여잡고 하얗게 밤을 새우는 날, 비로소 언어의 조탁(彫琢)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되고 자신을 사랑하게 된다.


다음은 필자 자신의 시 쓰기 과정을 보인 것이다.

지난 해 여름, 방학을 했지만 보충수업은 여전히 실시되고 있었다.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뭐든지 붙들어야만 하는 교사와 고3 입시생들은 한 덩어리가 되어 땀을 흘렸다. 창문이란 창문은 모두 열고도 흐르는 땀은 멈출 줄 몰랐다. 앞 뒷문을 열어 젖히고 언어영역 참고서 문제에 나온 김수영에 거품을 물다보니, 아이들은 어느 새 책상에 머리를 박고 잠들어버렸다. 반 이상의 잠들고 나머지 반은 비몽사몽이다. 칠판 한 쪽에는 'D-99'가 선명했다. 이른 바 수능고사 99일전이란 무언의 압력이었다. 정말 고3교실은 전쟁터였다. 그러나 아이들은 이미 지칠대로 지쳐있었다. 싸움 한 번 제대로 못해보고 공격 99일전에 이미 패잔병이 되어가고 있었다.

벽에 걸린 전자식 둥근 시계가 눈에 들어 왔다. 유리는 벌써 오래 전에 없어진 듯 자판이 누렇게 변색이 되었다. 이리저리 구부러진 빨간 초침은 전지가 다 닳았는지 9자를 건너뛰지 못하고 움찔거리고만 있었다. 시침도 ㄹ자로 구부러졌고, 시침도 반쯤 꺾어져 나간 채였다.

고3이란 정말 불가사의의 특수 그룹이다. 그들에게는 초능력이 요구되고 그들에게는 판단이나 청소년의 푸른 삶이 존재하지 않았다. 잠든 아이들과 벽에 걸린 초현실적 시계가 그대로 오버랩 되었다. 그리고 거의 단숨에 다음의 시를 썼다.


누군가의 손에서
시침이 부러졌을 거다.
또 누군가의 입에서
분침은 부러졌을 것이다.
남은 초침이
마흔 여섯 명의 손아귀에
이리저리 구부러졌을 거다.

지금은 폭염.
아이들은 모두 D-99를 보고 있었다.
훅훅거리는 교실
백일주로 무너진 녀석은
아직 한밤이다.

두 대의 선풍기로 맴도는 교실처럼
남은 전지가 다할 때까지
마지막으로 초침을 밀어 올리는
달리의 시계처럼
3학년 7반 교실은
초현실주의자의 식탁처럼
흐르고 있었다.

이 시를 두 번째 고쳐 썼을 때는 1연의 마지막 초침에 대한 묘사가 구체적이지 못해 '이리저리'를 고3학생들이 꿈꾸는 S대학의 이니셜로 바꾸어 대학과 아이들의 반항적인 행위를 상징할 수 있게 했다. 그리고 2연에서는 'D-99'의 상징적 숫자가 타의에 의해 빚어진 일종의 엄포요 압력수단임을 드러내기 위해 ' 눈 앞에 내걸린 D-99'로 바꾸어 썼다.
3연에서 '남은 전지가 다할 때까지 (마지막으로 초침을)밀어 올리는 달리의 시계처럼'의 뜻이 되어 이미지의 연결이 되지 않을뿐더러 초현실주의 미술가 달리가 지나치게 강조되는 면이 있어 '남은 전지가 초침을 밀어 올리다 지쳐버린'으로 바꾸었다.

이렇게 해서 다음의 시가 되었다. 조금 정리된 듯하지만 아직도 선명치 못한 구석이 있었다.


남은 초침이
마흔 여섯 명의 손아귀에
S자로 구부러졌을 거다.

아이들은 모두
눈앞에 내걸린 D-99를 보고 있었다.
백일주로 무너진 녀석은
아직 한밤이다.

두 대의 선풍기로 맴도는 교실처럼
남은 전지가 마지막으로 초침을 밀어 올리는
3학년 7반 교실은
초현실주의자의 식탁처럼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불만이다. 사실적이지만 구체성은 오히려 살리지 못하고 있다. 시는 이미지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아직 만족할 수가 없다. 분침을 익명성에, 아이들은 특수성을 강조했다. 2연에서는 교실분위기를 좀더 구체화시키고, 시계의 고통스러움과 교실의 풍경을 삽입하면서 자신들의 삶을 살지 못하는 아이들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리고 3연에서 현실을 떠난 교실의 모습으로 이미지화시켰다. 차라리 희극적이던 선풍기를 교실을 들어올리는 프로펠러로 비유하면서 초현실주의자 달리의 그림처럼 흘러내리는 시간성을 드러냈다.


누군가의 손에서
시침이 구부러졌을 것이다.
또 누군가의 손에서
익명의 분침은 떨어져 나갔을 것이다.
남은 초침이
마흔 여섯 명의 특수반 아이들의 손아귀에
S자로 구부러졌을 것이다.

눈앞에 내걸린
D-99를 보고 있는 고3반
백일주로 무너진 녀석은 아직 눈알이 새빨갛다
책들만 어지러이 쌓이고
분필가루 속에서 벽 속의 시계는 컥컥댄다.
교사의 다그침이 메아리지는
여기는 삶의 변방.

두 대의 선풍기는 프로펠러가 되어
교실을 들어올린다.
초침을 밀어 올리다 지쳐버린
3학년 교실은
초현실주의자의 식탁처럼
흐르고 있었다.


아직 시상의 흐름이 자연스럽지 못하고 3연 구성이 단조로움을 주고 있다. 강조할 부분과 시적 배경이 조화롭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1연과 2연을 바꾸어 '상황 제시- 상징적 묘사- 시상의 전환- 부정적 인식의 끝맺음'으로 4연 구성으로 정리했다. 먼저 1연에 교실 상황과 분위기를 속도감 있고 건조하게 묘사했다. 2연은 시상의 구체적 전개부다. 여기서는 상징의 방법을 썼다. 따라서 굳이 추정적 어미를 버리고 단정적인 어미로 바꾸었다. 3연에서는 지친 시계와 아이들을 초현실주의자들의 식탁으로 시적 전환을 꾀했다. 이어 4연을 1행으로 처리하면서 삶의 변방으로 끝맺음을 했다. 어느 정도 만족한 모습이다. 제목은 아무런 수식 없이 <고3 교실>로 했다. 비로소 주제가 살아난다. 군더더기도 많이 사라졌다.


눈앞에 내걸린
D-99를 보고 있는 고3 교실.
펼쳐진 책장 위에서
아이들은 고개를 꺾었다.
분필가루 속에서 벽 속의 시계는 컥컥댄다.

누군가의 손에서
시침이 ㄱ자로 구부러졌다.
또 누군가의 손에서
익명의 분침은 떨어져 나갔다.
남은 초침이
마흔 여섯 명의 손아귀에
S자로 구부러졌다.

초침을 밀어 올리다 지쳐버린
3학년 교실
초현실주의자의 식탁처럼
흐르고 있었다.
두 대의 선풍기는 프로펠러가 되어
교실을 들어올린다.

여기는 삶의 변방.

(박종헌 <고3 교실> 1999년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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