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 모으기 1

고향을문순태 (징소리)

법정 2010. 6. 21. 12:52

끝끝내 내 방의 벽에 걸린 징은 울리지 않았다. 얼마 전 시장에서

4만 원이나 주고 산, 전깃불 쓰고 만든, 고향도 역사도 모르는

한갓 상붐에 불과한 이 가증스런 징은 끝내 민중의 아픔을 모르는가.

1978년 (징소리)의 연작 첫번째 작품을 쓸 무렵, 나는 거리의 엿장수한테서

水沒地(수몰지)로부터 흘러나온, 푸르죽죽한 청태가 낀 가짜 징을 구했었다.

그 징이야말로 전깃불 켜고 (00)한 것이 아닌, 벌겋게 달은 시우쇠의 불빛에

쇠망치로 두들겨서 만든 농미든 정혼의 때가 묻은 것이었다.

 

방울재라는 수몰지에서 나온, 아직 민중의 숨결이 살아 있는 징은,

(저녁 징소리 한국문학79.5)를 쓸 무렵 내 고향에서 수년 동안

국민학교 아이들에게 농악을 가르치는 선생한테 넘겨줘 버렸다.

 

나는 났시꾼들이 몰려드는 수몰지 長城댐에 자주 찾아갔으며,

고향을 등지고 흔적도 없이 먼지처럼 都市(도시)의 밑바닦에 깔려 버린

실향민들을 찾아나섰다.

그리고 우연하게 `저축`을 소재로 쓴 국민학생들의 글짓기 심사를 하다가,

눈물겨운 글 한토막을 읽게 되었다.

수몰지에서 도회지로 나와 어렵게 살아가는 실향민의 아이가 고향에서

가지고 나온 징이며 꽹과리 등을 팔아 저금통장을 갖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곧 쉽게 중편 (말하는 징소리 신동아79.6)의 주인공 허칠복을 찾아낼 수 있었으며,

그의 이야기는 계속해서 (마지막 징소리 한국문학80.2)   (달빛아래 징소리 한국문학80.7)로 으을 수 있었다.

 

78년 가을부터 80년 봄에 이르는 1년 반 남짓 동안3편의 단편과 중편3편의 징소리連作 (連 연결할련)을

쓰면서, 나는 허칠복의 고향은 바로 내 고향이며 우리들 모두의 고향이라는 생각을 했다.

결국 우리들도 허칠복처럼 고향을 잃어버린 것이 아닌가.

불의가 정의를 눌러 답답하고, 캄캄하고, 만나면 쇳소리만 나고,

사람들이 톱니바퀴처럼 엇물려 정확하게 계산하며 돌아가는 이 메마르고 비정한 현대사회

어디에 우리들의 고향이 있단 말인가.

 

허칠복의 고향이 물에 잠겼다고 하면 우리들의 고향은 妄覺(망령망, 깨달을각) 이라는 무덤 속에 갇혀 버렸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제 우리들 민중의 정혼이 찐득거리는 고향은 컴퓨터의 작동에서도 만나볼 수가 없다.

어쩌면 영원히 찾을수 없는 곳, 천당에 가기보다 더 어렵게 된 우리들의 진정한 고향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태어나고 자란 곳이라고 해서 고향일 수 없다.

 

진실로 우리가 되 찾고 싶은 고향은 사랑과 믿음이 충마하고, 정이 넘치고, 자유와 정의가 바로 서 있고,

거짓이 없고,부(가멸부)와 權力에 매달림이 없고, 징소리가 다시 울리며, 콩 한조각도 둘이 나눠 먹을 정도로

 인심이 포실한, 가장 인간적인 고향인 것이다.

 

`李朝人間`이라고 비웃음을 사기 딱 알맞은 허칠복이가 간절하게 찾고 있는 그의 고향 방울재가 바로 어쩌면

우리들의 영원히 갈 수 없는 진솔한 뿌리가 박힌 인간의 고향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허칠복은 결코 바보가 아니며 우리보다 몇 세기 앞서가는 賢(어질현)明한 사람일지도 모르지 않는가.

 

우리는 그런 곳, 인간적인 고향을 현실 속에서 찾을수 없다고 이미 단념을 해 버렸지만, 허칠복이만은 포기하거나

지치지 않고 쓰레기통에서 보석을 찾듯 온통 헤매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그에게서 배울 것이 많다.

나는 그를 닮고 싶다.

 

그의 징소리가 목마르게 듣고 싶다.

 

 

 

                  고향의 역사와 恨

                       -연작 장편 (징소리)의 창작노트

 

 

 

 

          소설공간으로서의 古鄕

 

 

 소설에 있어서 무대가 되는 공간은 인물이나 주제, 플롯(0000)과 더불어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이다.

소설의 공간이란

인물과 사건이 되는 모든 환견적 영역을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공간이란

시간을 초월하며, 또 시간의 영향을 받지 않는 버편적인 장소를 의미한다.

물론 한정된 시대의 인물만이 등장하는 소설의 경우처럼 특수한 공간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백경)의 태평양 바다,

(폭풍의 언덕)의 요크셔 들녘,

토마스 하디 작 (귀향)의 황량한 에그돈처럼, 순수한 객관적 공간은

어떤 경우에도 시대의 변천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내 소설의 공간은 내 고향이다.

나의 고향은 광주 무등산 너머, 행정구역으로

 *  전남 담양군 남면 구산리이다.

나는 내 고향의 하늘, 골짜기, 들,  작은 동산, 하천, 마을 풍경을 객관적으로

소설 속의 무대로 그리는가 하면,

때에 따라서는 작가로서의 감정을 개입시켜,

주관 적이고도 관념적인 공간으로 미화시키기도 한다.

내 소설의 중요한 공간적 미학으로 수용된 지역은 내가 태어나서 6.25가 터질 때까지

12년 동안을 살아온 마을이다.

나는 이곳에서 무등산을 보며 자랐으며, 8.15와 6.25 때 겪었던 우리 가족과

내가 잘 알고 있는 고향 사람들이 살아온 이야기인 것이다.

 

내가 소설가가 되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내 고향이 겪어야만 했던 비극적인

고향의 역사에 대한 인식이 뚜렷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소설을 쓰기 시작 하면서부터 내 고향의 역사가 바로 우리시대의

역사의 한가운데 있음을 차츰 뼈저리게 인식하기 시작했으며,

그것이 내 소설의 주제가 된 것이었다.

 

나는 첫 창작집 (고향으로 가는 바람 1977.11.창작과비평사 간)의

후기에서 "잃어버렸던 고향을 다시 찾은 이제,

나는 오랫동안 묵혀두었던 묵정밭을 열심히 일구어 씨를 뿌릴 따름이다." 라고 썼다.

여기서 고향을 다시 찾았다고 하는 것은 묵정밭을 열심히 일구어 씨를 뿌리겠다는 것은,

고향의 역사에 대한 인식을 보다 철저하게 확대해 가겠다는 결의를 나타낸 뜻이다.

그리고 여기서 밝힌 고향의 역사인식은 바로 우리나라의 역사에 대해 새로운 인식의

폭을 넓히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첫 창작집의 표제 소설 (고향으로 가는 바람 1977.3. 월간중앙 발표)에 나타난

소설 공간은 70년대 산업사회의 여파로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수몰지이다.

작은 수몰지 마을이 없어진다고 하는 것은 그곳에 살아왔던 수몰민들이 역사와 문화 까지도

물에 잠겨 버리고 마는, 고향 상실의 아픈 현실이다.

___텅 빈 마을에 우줄우줄 어둠이 밀려왔다.

마치 새끼내 강물이 덮쳐 오는 듯싶었다.

어둠이 깔린 노루목 고샅도, 집도 텅텅 비어 있었다.

새끼내 큰 댐이 세워지자 팔십 호 가구가 뿔뿔이 이주해 흩어져 버리고 말았다.

해마다 여름이면 물난리를 격어야 했던 노루목이

아예 깡그리 물 속에 잠겨 버리게 된 거였다.

_________(고향으로 가는 바람)의 한 부분

이 단편의 서두에 그려진 상황은 수몰미들이 떠나 버린 황량한 고향의 모습이다.

이것은 바로 산업사회의 바람이 농촌에까지 불어와서, 수몰지 사람들이 수대에 걸쳐

 가꾸어 왔던 문화와, 그들이 겪어 왔던 역사까지도 침수시켜 버리고 만 안타까운

현실을 보여준 것이다.

 

내가 이 무렵에 무척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다만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살아 있는 현실을 어떻게 하면 보다 생생하게 소설 속에

수용 하느냐는 문제였다.

적어도 현실을 관념적으로 파악하고 싶지가 않은 것이다.

그 때문에 (고향으로 가는 바람)의 후기에서

 "이제 나는 내 망막에 신비니 환상이니

하는 관념의 안개 따윈 말끔히 걷히고, 짓밟고 짓밟히는 사람들의 처절한 목소리와 깊은

상처를 속속들이 핥아낼 수가 있다.....

내가 일군 땅의 곡식들이 감미로운 예술이 되기보다는 눈물이 질퍽한 진실의 열매이기를 더 바란다."

라고 썼다.

이 무렵 나는 광주에 있는 지방 신문사의 정치부장 자리에 있으면서 (청소부 창작과비평76년여름호)

(백제의 미소 한국문학74년6) (여름공원 창작과비평76년여름12) 등의 작품을 통해서

사회와 역사가 안고 있는 모순에 대해 목소리 돋우기 연습을 한 셈이었다.

그러나 그때 까지도 나는 우리 역사가 안고 있는 모순의 구체적인 실체에 대해서

깊은 인식이 부족하였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대해서도 속속들이 알고 있지 못하였다.

다만 내가 알고  있는 것은 가시적으로 나타난 형상적인 문제가 고작이었다.

그것은 역사 인식이 부족했던 나로서의 한계였다.

다만 신문기자의 안목에 잡힌 피상적이고도 현상적인 사회와 역사의 굴절에 머물러 있었으며,

작가로서의 깊은 인식과 통찰력은 갖고 있지 못하였다.

그런 약점 때문에 맴목적으로 관념의 세계에 대해 거부감을 나타내었는지도 몰랐다.

인간 존재양식을 밝히려고 한다든가, 인간의 내면을 탐구하려는 입장에 있는

문학을 관념의 유희라고 매도하는 잘못을 법한 것도,

기실 내가 아직 신문기자적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이었다.

 

1979년에 내놓은 두번째 창작집 (흑산도 갈매기)의 후기에서 "재작년 첫 소설집을

세상에 내놓으면서 나는 내가 소설을 쓴 것은 신문 기사를 쓸 것이다." 라고 썼던 것도

(고향으로 가는 바람)에서 인식했던 고향의 역사는 기자적 관점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할 수가 있다.

그것은 관념을거부한다고 말한 나 자신이 고향을 관념적으로 파악한 잘못을 범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파악한 고향은 내가 어렸을 적에 간직했던 기억이 관념적으로 딱딱하게

굳어져 버린 관념의 덩어리 바로 그것이었다.

나는 우리 시대의 고향이 안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 즉 역사와 현실 속에서 고향 사람들이

겪어왔던 총체적인 아픔을 직접 느껴 보고, 또 그 역사의 실체와 부딪혀 봐야만 했다.

그리고 나서 그 아픔의 내용들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해야만 했다.

단순히 고향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아닌, 그들 삶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그 본질까지도

꿰뚫으면서, 구성을 하고 주제를 생각하고 인물을 만들어 성격과 삶의 가치관을 부여하고,

저절한 언어를 사용하여 감동적인 이야기로 꾸려 가야만 했다.

그것은 내가 그때까지 생각하고 있었던 관념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필요로 하였으며

'문학은 무조건 진실한 소리' 여야 한다거나, 문학은 추상의 무지개나 관념의 덩어리가 되어서는

안 되며, 때로는 역사의 칼이어야 한다'는 종래의 입장에 대해 수정이 불가피 하게 되었다.

다시, 소설의 공간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한다.

 * 내게 있어서 소설적 공간은 마치 내 작품의 존재 이유가 될 수 있을 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 결국 내 소설의 주제와 인물, 스토리 등은 모두 고향이라고 하는 공강 안에 존재하기

   때문인 것이다.

일반적으로 소설적 공간이라고 하는 개념은 여러 가지로 변화를 겪어 왔다.

가령 17세기의 소설에서 공간은 그저 작품 속의 간단한 배경으로만 여겨왔던 것이

리얼리즘 소설 시대에 와서는인물이 존재하는 환경으로서 중요한 위치를 지하게 되고,

현대소설에서는 환경(공간)과 인물의 동일화를 보여주고 있다.

주위 환경을 통해서 인물의 여러 가지 모습을 드러낸다는 소설미학은 19세기 소설 속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내는 기법의 하나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발자크는 소설 (인간희극)의 서문에서 '사회는 인간의 행동이 전개되는 환경에 따라, 동물학에서 볼 수

              있는 만큼의 다양하고 서로 다른 인간들을 만들어내고 있지 않는가'라고 말하였으며,

              그는 이같은 생각을 (인간희극)의 주된 원칙으로 삼았다.

 

또한 졸라는 (실험소설론)에서 다윈의 이론을 원용하면서 물리적이고 인간적인 의미로 해석한

                 '환경에 중차대한 중요성'을 부여했다.

그의 이와 같은 생각은 그의 소설 (파리의 뱃속) (파리의 노트르담)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따라서 현대 소설은 흔히 주위의 공간을 인물글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프루스트, 까뮈, 말로, 아라공, 로브 그리예는 서로 작품세계가 다른 작가이기는 하지만

이 점에 있어서는 공통점을 갖는다.

 

내 소설의 있어서의 공간은 인물의 성격, 사상, 정서와 절대적인 관계를 갖는다.

뿐만 아니라 그 인물들이 그 공간에서 체험한 역사를 통해서 삶의 변질된 과겅이나 결과까지도 절대적인 영향을 주고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러기 때문에 내 소설의 공간은 바로 스토리이며 주제이고 인물 그 자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이 말은

내 소설은 공간 즉 환경에 따라서 스토리와 주제가 정해지며 인물의 성격까지도 변화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물론 이 때문에 소설의 공간이 고향으로 한정돼 있다시피 한 내 작품은 주제와 인물이 다양하지 않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작가가 창조해 내는 인물은 결국 작가의 정서적 체험 안에서만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정서는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농촌에서 농민들과 한께 살아온 사람에게는 농민정서를 갖게 되고 도시 사람들은 도시민의 정서를 갖게 된다.

강변에 사는 사람괴 강이 없는 깊은 산골에 사는 사람의 정서가 다른 것처럼,

6 . 25  같은 역사 체험을 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정서는 서로 다르게 마련이다.

 

#    작가도 마찬가지로, 살아온 공간과 역사 체험에 따라 각기 고정된 정서를 가지고 있다.

#    그리고 그가 소설 속에서 묘사한 공간이나 인물들은 작가의 정서적 한계에서만이 가능하며,

#    그것은 곧 작가의 작품세계 즉 주제와도 연결된다.

#    농사꾼의 아들로 자라온 나는 농민정서를 가지고 있다.

#    내가 만들어내는 소설 공간은 농민정서가 숨쉬고 있는 곳일 수밖에 없으며,

#    그런 곳에서만 생존이 가능한 사람들을 그려낸다.

#   따라서 도시 사람들의 정서를 그려내는 데는 아주 서투르다.

#   그 때문에 내 소설 중에서도 도시를 공간으로 설정하고 도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것은 거의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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