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창작의 실제 /시의 제목 <시의 제목은 어떻게 붙일 것인가> 여러분은 모두 이름이 있습니다. 사이버에 들어와 서는 자기만의 넷 명을 또 가지고 있구요. 이렇듯 우리의 삶 과 세계 속에 있는 수많은 사물들을 돌아보면 모든 사람들이나, 나무와 풀들, 새들과 꽃들, 곤충들, 산과 강, 나라, 하물며 하늘의 별들까지 모두 자기의 이름을 각각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사물들은 이 이름을 통하여 자 신의 존재와 의미를 우리들에게 보여준다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이를 낳으면 아이에게 좋은 이름을 지어주기 위해서 부모들은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어떤 분들은 작명가 에게 아이의 이름을 부탁하기도 합니다. 이러하듯 시에서도 이름을 갖는 것을 우리가 압니다. 한 편 한 편 시 를 창작할 때마다 그 시에 걸맞은 제목을 정하기 위해서 시인들은 노심초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의 이름을 듣고 웃기도 하며, 좋은 이름이라고 칭찬도 하듯이 제목은 가장 먼저 우리들의 시 선과 마음을 끕니다. 사람을 만나면 첫 인상이 있듯이 이 제목은 우리에게 강한 인상을 주어서 오래 기억에 남 도록 해주기도 합니다. 우리가 읽었던 많은 시들의 내용과 구절은 정확히 외우기는 힘이 들지만 제목만큼은 기 억에 남는 것 을 볼 수 있습니다. 옛날 교과서에 나왔던 시들 한용운의 <님의 침묵> 이나 조지훈의 <승무>, 이육사의 <청포도> 김동환의 <파초>, 김현승의 <눈물> 신석정의 <그 먼 나라를 아십니까>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 는가> 노천명의 <사슴> 등 차마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제목을 알면서도 그 구절 들은 외울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 제목만 들어도 우리는 그 내용들이 생생하게 마음속에 살아나 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시의 제목은 시의 내용을 환기시켜 시적 정서들을 삶의 실제적인 정서와 만나게 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시의 내용보 다는 시의 제목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됩니다. 시의 제목은 시의 성공 여부를 가름하는 데 결정적 인 작용을 하게 됩니다.
1.제목이 중요하다
시는 언어예술 중에서 가장 압축되고 정제된 형태를 지니고 있지요. 그래서 하나의 단어마다, 구절마다, 행이 나 연마다 최대한의 효과가 나타나도록 노력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다싶이 한 시어의 어미나 조사 는 물론 문장 부호까지도 한 편의 시를 이루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시에 쓰이는 모든 요소들은 더없이 큰 무게 비중과 밀도로써 시의 구조를 형성하고 있기에 브룩 스와 워렌은 "모든 시는 극적인 구조를 내포하고 있으며 이런 의미에서 시는 "작은 희곡(little drama)라고 할 수 있고 또 그렇게 되어야한다"고 말했습니다. 소설가 발자크는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에게 적절한 이름을 지어주는 데 무척이나 고뇌를 많이하였다 합니다. 좋은 이름이 떠오르지 않으면 몇 개월이든 좋은 이름을 찾으려 고민을 했고 거리마다 골목마다 돌아다니며 간 판 이름을 보고 다녔다 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우리는 그냥 무심히 소설 속의 주인공들의 이름을 읽고 지나쳐 버리는데요? 그 것은 적절한 이름만이 소설의 주제는 물론 배경이나 분위기와 조화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 인간이 지 닌 전형성과 개성, 특징 등을 집약해서 생동감을 불어 넣고, 따라서 작가가 의도한 것을 최대한 효과적으로 살 려낼 수 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을 짓는데 한 작가가 보여준 노력 과 열정 이상으로 시를 쓰는 사람은 시의 이름 즉 제목을 붙이는데 더 한층 노력과 정성이 필요할 것입니다. 제목 때문에 시적 의미가 살아나고, 더 풍부한 의미를 암시할 수 있으며, 극적 구조를 더욱 탄력적으로 만들 수 있으며, 시적 정서를 증폭시킬 수 있지만, 이와 반대로 시적 의미를 절감 시키고, 내용을 평면적으로 만들 고 긴장감을 잃게 하고, 더 나아가서는 시가 지녀야할 극적 구조를 무너지게 할 수도 있다고 조태일님은 주장 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제목이 갖는 중요성을 임보님은 중국의 왕유가 지은 녹시(鹿柴)라는 작품을 통해 적절하게 설명하고 있 어서 여기에 올립니다. 맑은 산 속 사람은 보이지 않고 空山不見人 두런두런 말소리만 들려올 뿐 但聞人語響 석양볕은 깊은 숲에 스며들어 返景入深林 어제처럼 이끼 위를 비추고 있네 復照靑苔上 1200년 전에 쓰인 작품이다. 작자가 처음부터 이 작품에 제목을 달았는지 아니면 후세에 어떤 이가 그렇게 했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아무튼 "녹시"는 글자 그대로 "사슴 울타리"이다. 도대체 이 시의 제목을 어찌해서 "사슴 울타리"로 붙였단 말인가, 겉으로 보기엔 사슴은커녕 사람의 모습도 보이지 않는 다. 그런데 웬 "사슴울타리"란 말인가. 제목이 시의 내용을 말한다고 기대하는 이들은 아마 그렇게 생각하면서 이 시를 읽을 것 이다. 그러나 제목도 시의 한 행처럼 시의 내용을 형성하는 요소라고 생각한다면 문제는 달라 진다. 깊은 산 속 숲 속에 햇볕이 든 작은 공지를 상상할 수 있다. 그 빈터에 몇 이랑의 조그만 채마밭이 만들어져 있다. 아마 무나 배추 등속의 채소를 심었던 곳인가 보다. 그 채소밭 가에 나뭇가지를 듬성듬성 엮어 만든 울 타리가 있다. 주인도 먹기 전 예 사슴이 자주 찾아와 뜯어 먹으니 이를 말려 보자는 것이었으리라. 저 밭의 주 인은 누구일까? 아마 근처 산 속 어딘가에 움막이라도 치고 살 것이다. 작품 속에 나오는 두런거리는 말소리의 주인공이 바로 그다. 그는 지금 약초라도 캐면서 혼자 시를 읊조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제목 "녹시"는 바로 이러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만일 "녹시"라는 제목이 붙어 있지 않았 다면 이 작품은 한갓 깊은 산속의 자연을 노래한 작품에 지나지 않게 된다. 그러나 이 작품은 제목으로 인하여 자연을 노래한 작품이라기보다는 은자의 깨끗한 삶을 노래한 작품으로 크게 달라진다. 제목이 얼마나 역동적으 로 작품의 내용을 결정하는 지 알 일이다. 좀 길지만 끝까지 인용한 것은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위의 인용을 통해서 알 수 있듯 이 시의 제목은 결코 시의 내용을 알려 주거나 설명해주는 것만은 아닙니다. 시어들이 작품 속에서 늘 사용되 거나 습관화한 식상한 시어가 아니라 절대적인 고유성을 지녀야 하듯이 작품의 제목 역시 고유성과 절대성을 지닐 때 시를 제대로 살릴 수 있으며 시인들은 단 하나뿐인 "유일한 제목"을 찾아내기 위해 노력해야할 것입니 다. 최근에 발표된 시들을 읽고 오늘 강의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설태수님의 <향내에 실려>를 한 번 읽어볼까요? 십 년도 더 넘은 세월. 그 오랜 침묵의 굴 속을 지나온 행운목 꽃내가, 오늘 저녁 온 집안을 진동시킨다. 봄마다 라일락 향기를 부러워해서인지 아카시아 향내를 질투해서였는지, 아니면 노을빛을 목말라한 향기였는지. 해진 뒤에 木船처럼 밀려오는 이 향내에 실려 떠내려가고 싶다. 때론 뻘 같은 삶에 아무런 미련도 없이 별빛을 바라보고픈 설렘도 없이 낡은 목선에 실린 듯, 향내에 담겨 멀리멀리 떠내려가고 싶다. 삐걱이는 소리에 호흡 맞추며 아주 멀리 떠내려가고 싶다. 다음엔 서지월님의 <낮달이 있는 풍경>입니다. 구부정한 바지랑대 위에 낮달 하나 걸려 있다. 바람도 풀밭으로 가 엎드린 시간 채송화 꽃밭에는 졸음 오는 맨드라미 피가 달아 아버지의 나귀방울 소리는 감투봉을 넘었는지 동구 밖 미루나무 꼭대기엔 흰 배때아리 드러낸 까치 한 쌍, 무어라 꽁지 흔들며 알아듣지 못하는 말 시늉을 건넨다. 한참을 이고 섰던 광주리 내려놓듯 댓돌 위 신발 한 켤레 벗어놓고 엄마는 방으로 들어 끙끙 앓으신다. 구부정한 바지랑대 위 낮달 하나 걸려 오도 가도 못하듯 마당가엔 지심 매던 엄마의 호미 한 자루 드러누워 있다. 나는 부엌으로 가 풍로에 불 지펴 약탕기에 탕약을 끓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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