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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인

법정 2008. 10. 9. 10:14

가을 저녁 - 이해인

 
박하 내음의
정결한 고독의 집
연기가 피네

당신 생각 하나에
안방을 비질하다

한 장의 紅葉(홍엽)으로
내가 물든 가을 저녁

낡고 정든 신도 벗고
떠나고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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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의 노래 - 이해인

나는 늘
떠나면서 살지

굳이
이름을 불러주지 않아도 좋아

바람이 날 데려가는 곳이라면
어디서나 새롭게 태어날 수 있어

하고 싶은 모든 말들
아껴둘 때마다
씨앗으로 영그는 소리를 듣지

너무 작게 숨어 있다고
불완전한 것은 아니야
내게도 고운 이름이 있음을
사람들은 모르지만
서운하지 않아

기다리는 법을
노래하는 법을
오래전부터
바람에게 배웠기에
기쁘게 살아갈 뿐이야

푸름에 물든 삶이기에
잊혀지는 것은
두렵지 않아

나는 늘
떠나면서 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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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화 - 이해인-

초록빛 스커트에
노오란 블라우스가 어울리는
조용한 목소리의
언니 같은 꽃

해가 뜨면
가슴에 종(鐘)을 달고
두 손 모으네

향기도 웃음도
헤프지 않아
다가서기 어려워도
맑은 눈빛으로
나를 부르는 꽃

헤어지고 돌아서도
어느새
샘물 같은 그리움으로
나를 적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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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길 / 이 해인

바람이 지나가다
내 마음의 창문을
살짝 흔드는 가을길。

탱자。시냇물。어머니。
그리운 단어들을
하나씩 떠올리며
잠시 멈추어 선 가을길。

푸른 하늘을 안으면
나의 사랑이 넓어지고
겸손한 땅을 밟으면
나의 꿈이 단단해져요。

이제 내 마음에도
서늘한 길 하나 낼 거에요
쓸쓸한 사람들을 잘 돌보는
나무 한 그루 키우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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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의 커피 / 이해인
혼자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허무해지고
아무말도 할수 없고

가슴이 터질것만 같고
눈물이 쏟아지는데
누군가를 만나고 싶은데
만날 사람이 없다

주위에는
항상 친구들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날
이런 마음을
들어줄 사람을 생각하니

수첩에 적힌 이름과 전화번호를
읽어 내려가 보아도
모두가 아니었다

혼자
바람맞고 사는세상
거리를 걷다 가슴을 삭이고
마시는 뜨거운 한잔의 커피

아! 삶이란 때론 이렇게 외롭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