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 모으기
양심의 심장을 꺼내는 시간 / 박관서
법정
2018. 5. 22. 23:09
양의 심장을 꺼내는 시간
박관서
그의 손이 정수리를 비집고 들어와
내 심장과 숨통을 풀어헤쳐 꺼내 갈 때
나는 그와 내가 살았던 집을 바라보며 곰곰이
생각하는 일밖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돌아보면, 너와 내가 만나 서로 엉켜
한 생애를 살아가는 일이 어찌
너와 나만의 일이었겠느냐
낮이 가고 밤이 오고
흰 눈 몰아치는 겨울이 오듯이
나는 나고 너는 너만이었겠느냐
너와 내가 만날 때처럼 그리
환희로운 나라 역시 다시 있지 않겠느냐
라마! 라마!
너의 손아귀에 들린 내 심장의 온기와
그 뜨거움을 지우며 금세 하얗게 엉켜 오는
너와 나의 기억을 걷어 가리니
앞무릎 뼈와 뒷무릎 뼈를 꺾어 벗겨내는
두꺼운 외피 너머 피어나는 꽃처럼 내 속살에는
성긴 피 한 줌 묻어나지 않으리니 그대가
펄펄 끓는 물에 나의 살과 뼈를 삶아
돌아올 봄과 여름을 예비하는
초원의 노래로 삼으시라
달리는 마상에서 서로 엉켜 음률을 우려내는
두 줄의 마두현 사이사이로
그대와 내가 나누었던 아침과 저녁 그리고
노을로 지는 슬픔마저 깃들여 두었나니
나의 너여, 라마여!
갈수록 난만해지는 혹한의 이 계절을 잘 건너오시라
⸻ 계간 《문학들》 2018년 봄호
------------
박관서 / 1962년 전북 정읍 출생. 조선대학교 국어교육과 졸업. 1996년 계간 《삶사회그리고문학》 신인 추천. 시집 『철도원 일기』 『기차 아래 사랑법』 .
관련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