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 모으기

나의 시를 말한다 / 손택수 시인

법정 2016. 8. 8. 05:35

나의 시를 말한다 | 손택수

 

나무의 수사학 1

 

 

꽃이 피었다,
도시가 나무에게
반어법을 가르친 것이다
이 도시의 이주민이 된 뒤부터
속마음을 곧이곧대로 드러낸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나도 곧 깨닫게 되었지만
살아 있자, 악착같이 들뜬 뿌리라도 내리자
속마음을 감추는 대신
비트는 법을 익히게 된 서른 몇 이후부터
나무는 나의 스승
그가 견딜 수 없는 건
꽃향기 따라 나비와 벌이
붕붕거린다는 것,
내성이 생긴 이파리를
벌레들이 변함없이 아삭아삭
뜯어 먹는다는 것
도로변 시끄러운 가로등 곁에서 허구한 날
신경증과 불면증에 시달리며 피어나는 꽃
참을 수 없다 나무는, 알고 보면
치욕으로 푸르다

 

        -시집 <나무의 수사학> 수록-

 

 

거기에 나무가 있었다. 농가 왼쪽에는 감나무가 있었고, 오른쪽에는 배나무가 있었다. 어른들은 들일을 나갈 때면 언제나 새끼줄로 아이를 묶어놓았다. 감꽃이 필 때는 감나무가, 배꽃이 필 때는 배나무가 베이비시터가 되어주었다. 그때 우는 아이를 위해 나무는 자장가를 불러주었으리라. 울다 지쳐 잠든 아이를 위해 다독다독 이파리를 흔들었으리라. 꽃이 지는 어느 봄날이었던가. 새끼줄이 허락하는 범위까지 나무 둘레를 자전하던 어린 짐승은 지는 꽃에 흙을 버무려 먹고 있었다. 그때의 새끼줄은 이 행성과 나를 잇는 탯줄이었다.

 

농경문화시대의 궁핍마저 설화적 어조로 위무해주던 그 유실수로부터 떨어져나온 것이 내 근대의 아렴풋한 기점이다. 어머니는 대소쿠리 바구니 행상으로 경전선을 탄 여섯 살 무렵에 나의 전근대가 끝났다 하고, 선친은 농업을 팽개치고 떠난 그 무렵이 우리 가족사의 눈부신 계몽기였다고 한다. 뿌리내린 나무의 장소애 대신 속도와 스펙터클의 휘황찬란한 편람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설화와 농업과 미신으로부터 해방된 나는 계몽의 단계를 충실히 밟기 위해 제도언어를 학습했다. ‘더 높게, 더 빠르게, 더 멀리!’. 올림픽 표어를 외우면서 열등생과 낙오병의 공포감에 포박되는 일이 없도록 자신을 독려했다. ‘이승복 어린이’처럼 새로운 국가의 설화에 비분강개하면서 애먼 책상에 삼팔선 칼금을 긋고 함부로 적의를 불태웠다.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로부터 눈을 뜨고 길을 가다가도 애국가가 들려오면 가슴에 손을 얹고 하루를 마감했다. 주술의 리듬 같은 그 노래들이 두려워지기 시작한 게 언제부터였을까. 살아보기도 전에 이미 소진된 나는 향수병에 걸린 성장기를 막 통과하고 있었다.

 

소진된 인간은 거부하는 인간이다. 소진된 인간은 또한 어딘가로 회귀하고 싶어하는 인간. 그러나 소진된 인간은 무엇보다 자기 자신이 되고 싶은 인간이다. 그때 거기에 다시 나무가 있었다. 학교 담벼락 옆 그늘진 자리의 볼품없는 석류나무였다. 그가 나의 유일한 교우였다면 향수병에 실어증까지 겹친 내 외로운 소년기에 위로가 될까. 나는 무려 삼년 동안 한 그루의 나무와 우정을 나누었다. 그의 꽃잎이 어떻게 피어나는지, 그의 수피는 어떻게 변해가는지, 그의 열매는 어떻게 둥글어가는지…… 한 대상을 하염없이 들여다보면 그 대상이 바라보는 자신을 보여주기 마련이다. 한 대상을 하염없이 들여다보면 그 대상과 나만이 아는 비밀이 생기기 마련이다. 지식 검색창을 두드려도 나오지 않고, 식물사전에도 없는 어쩌면 하찮고 사소하고 간지럽기까지 한 작은 서사들을 나는 받아적게 되었다. 그때 시가 나를 찾아왔으리라.

 

최근에 내가 보고 있는 나무는 공사장 한 중심에 있는 아파트 정원의 자작나무다. 이사를 오던 날 그도 트럭에서 짐보따리 같은 뿌리를 품고 내렸다. 어느 산협에서 뽑혀 온 것일까. 뽑혀 내던져진 것으로 치자면야 그나 나나 처지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전기스토브를 쬐고 있는 겨울 동물원의 기린처럼 그 서늘한 목덜미가 슬펐다. 수액주사를 맞던 한여름은 가지에 달린 비닐포대가 영락없는 링거병이었다. 어느 날은 흉터 딱지가 축 처진 내 눈그늘만 같았다. 말라죽는 일이 없도록 거름을 뒤집어쓴 나무 앞을 지날 때 어쩌면 나는 망측하게 존엄사를 문득 떠올리기도 했는지 모른다. 한때는 죽은 자를 위해 천마도를 그렸다는 나무였다. 팔만의 경을 파넣기도 했다는 나무였다. 북방의 눈보라 속을 달려가는 기차의 흰 연기처럼 피어오르던 나무였다.

 

그래도 나무는 자란다. 여기가 비록 눈보라 치는 북방이 아니라 하더라도. 한여름이면 부패를 막는 생선상자 속 얼음조각처럼 눈부신 빛을 뿜어댄다. 지열로부터 가장 높은 곳까지 자신을 뽑아올리기 위해 가지를 쳐낸 자리의 흉터 딱지를 품고 아파트 계곡과 계곡 사이로 불어가는 바람이 더러는 어느 먼 북방 얼어붙은 산협의 바람 소리나 되는 것처럼 이파리를 흔든다. 뿌리뽑혀 유랑하는 내국 디아스포라의 삶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나는 나무의 저 눈물겨운 노래 또한 알지 못하였으리라. 그리하여 내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또한 발견하지 못하였으리라.

 

 

나무는 나의 모국어이며 동시에 낯선 미지다. 모국어의 혈연감은 굳이 이해하거나 해석하려 애쓰지 않아도 통하는 대지로부터 오고, 외국어 같은 미지의 이질감은 도무지 번역할 수 없는 고유의 몸짓으로부터 온다. 나무가 나의 혀라면, 나는 일찌감치 갈라져 있었던 셈이다. 이 욱신거리는 균열이 시의 숨구멍이라면 어떨까.

 

손택수 시인

*199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호랑이 발자국> <목련 전차> <떠도는 먼지들이 빛난다> 등과 산문집 <바다를 품은 책 자산어보> 등을 냈다.

 


 

불면증에 피어나는, 꽃의 미래

 

 

1970년에 전남 담양에서 태어난 손택수는 유년기에 고향을 떠나 부산에서 성장했다. 타인의 이야기와 책을 통해 세계를 배우기 전에, 뿌리 뽑힌 어린 몸과 마음으로 세계와 직접 부딪쳐야 했다. 시골과 도시, 농경사회와 산업사회, 근대 이전과 근대가 격돌하는 충격은 그의 성장기를 지배했다. 자신이 태어난 땅에서 이방인으로 떠도는 ‘내국 디아스포라’의 내면은 손택수 개인의 것이면서, 자연과 농경의 세계를 파괴한 대가로 확장하면서 균열해온 근대문명의 것이기도 했다.

 

손택수의 시는 근대 이전의 충만한 세계에 대한 기억술을 통해 근대의 허점을 상상적으로 보충하는 데 목적을 두지 않는다. 손택수는 근대의 균열이 태생적이고 구조적인 것이며, 이 균열이야말로 자연과 농경의 세계가 ‘외부’가 아닌 ‘근대의 배제된 내부’임을 증거하는 것이라고 본다. 손택수가 문제 삼는 것은 이 배제의 시스템이며, 그에 길들여진 우리의 사고방식과 삶의 감각이다. 자연과 농경의 세계를 타자화하면서 근대는 자신이 근대적인 것으로만 채워졌고 채워져야 한다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손택수는 이 착각의 유포에 반대한다. 산업사회의 아들인 그의 심신에 새겨져 있는 “저 푸른 느티나무”의 기억과 “어느 먼 곳”의 그리움은, 완강히 부정함으로써 오히려 이들의 존재와 필요성을 자인해온 근대세계의 산물이며, 따라서 역설적이게도 근대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내면의 균열을 견디고, 실패를 각오해야 하는 형태로서 말이다.

 

손택수의 시적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이 진술은 사실이지만, 적절한 것은 아니다. 손택수의 시는 시적 전망이 아닌 시적 당위를 위해 쓰이기 때문이다. 시적 당위가 그에게는 시적 전망이다. 근대세계는 근대 이전 및 근대 아닌 것들을 구별하고 배제하는 과정에서 ‘시적인 것’을 적잖이 상실했으며, 시적인 것의 회복은 근대의 뒤틀린 내부를 회복하는 일과 분리될 수 없다. 손택수는 도시 일상의 곳곳에서 그 징후들을 본다. 가령, “도로변 시끄러운 가로등 곁에서 허구한 날/ 신경증과 불면증에 시달리며 피어나는 꽃”은 시적이지 않은 형상으로 ‘시적인 것’을 요청하는바, 이 (비)시적 요청에 응답하는 것이 우리의 현재이며 미래여야 한다. 이 꽃의 미래가 바로 우리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김수이 문학평론가·경희대 교수




아슬아슬하게 아름다운, 생

 

신형철의 격주시화(隔週詩話)  [한겨레] 2016-07-29
- 최승자의 옛 편지를 다시 읽으며

 

20년 후에, 지(芝)에게 

 

   최승자

 

 

지금 네 눈빛이 닿으면 유리창은 숨을 쉰다.
지금 네가 그린 파란 물고기는 하늘 물속에서 뛰놀고
풀밭에선 네 작은 종아리가 바람에 날아다니고,

 

이상하지,
살아 있다는 건,
참 아슬아슬하게 아름다운 일이란다.
빈 벌판에서 차갑고도 따스한 비를 맞고 있는 것 같지.
눈만 뜨면 신기로운 것들이
네 눈의 수정체 속으로 헤엄쳐 들어오고
때로 너는 두 팔 벌려, 환한 빗물을 받으며 미소 짓고······
이윽고 어느 날 너는 새로운 눈(眼)을 달고
세상으로 출근하리라.

 

많은 사람들을 너는 만날 것이고
많은 사람들이 네 눈물의 외줄기 길을 타고 떠나가리라.
강물은 흘러가 다시 돌아오지 않고
너는 네 스스로 강을 이뤄 흘러가야만 한다.

 

그러나 나의 몫은 이제 깊이깊이 가라앉는 일. 봐라,
저 많은 세월의 개떼들이 나를 향해 몰려오잖니,
흰 이빨과 흰 꼬리를 치켜들고
푸른 파도를 타고 달려오잖니.
물려 죽지 않기 위해, 하지만 끝내 물려 죽으면서,
나는 깊이깊이 추락해야 해.
발바닥부터 서서히 꺼져 들어가며, 참으로
연극적으로 죽어가는 게 실은 나의 사랑인 까닭에.

 

그리하여 21세기의 어느 하오,
거리에 비 내리듯
내 무덤에 술 내리고
나는 알지

 

어느 알지 못할 꿈의 어귀에서
잠시 울고 서 있을 네 모습을,
이윽고 네가 찾아 헤맬 모든 길들을,
- 가다가 아름답고 슬픈 사람들을 만나면
그들의 동냥바가지에 너의 소중한 은화 한 닢도
기쁘게 던져 주며
마침내 네가 이르게 될 모든 끝의

 

시작을!

 

     * 시집 <즐거운 일기>(1984) 수록

 

 

한 시인의 삶이 객관적으로 보기에 불행한 편에 속한다 할지라도 그것을 타인이 주관적으로 확언하는 것은 부주의한 일이다. 당사자가 ‘나는 불행하다’고 말한다 해서 타인이 아무 때나 ‘그는 불행하다’라고 말할 자격을 얻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당사자가 그 말을 할 때에는 설사 신세 한탄의 형식을 취한다 해도 그것이 자기 직시의 효과를 발휘해 자신의 현재를 극복하는 첫걸음이 될 수도 있겠으나, 타인이 그런 말을, 그것도 그를 그 불행에서 끌어내기 위한 노력을 기울일 의사도 없이 할 때는, 그런 말이야말로 그가 미래의 다른 자신을 상상할 수 있는 힘을 꺾기도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불행하다’고 말하는 그 시인의 성별이 여성이라면 그 점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강조하는 편이 옳겠다는 생각을 한다. 설사 당사자가 자신의 고통을 ‘존재 일반’의 그것으로 규정한다 할지라도, 읽는 사람 쪽에서는 고통에도 성별이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되새겨야 한다는 뜻이다. 평론가 김현이 “최승자의 시는 사랑받지 못한 사람의 고통스러운 신음 소리다.”(<말들의 풍경>)라고 말하면서 ‘여자’가 아니라 ‘사람’이라고 적은 것은 ‘여성성’과 ‘여성시’에 대한 당대의 태만한 규정 안에 그를 가두지 않으려는 배려였겠으나 그와 더불어 생각해야 할 것은 고통의 성별을 지우면 고통 자체가 왜곡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사랑받지 못한”이라는 표현은 여성의 생애에서 사랑의 비중을 과장하고 여자를 사랑의 객체로 주저앉히기를 원하는 어떤 이들의 편견과 엮여 있지 않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저 표현 속에, 당시로서는 드물게 급진적 허무주의자의 자리에서 너무 솔직해 오히려 듣기 불편한 말을 토해낸 한 여성을, 유신시대에서 세기말에 이르기까지의 한국사회가 ‘정확하게 사랑하지’ 못했다는 뜻을 집어넣고 싶다. 최승자의 시에 표현된 고통은 1970~90년대의 한국사회를 살아가면서 여성들이 경험한 고통의 한 유형을 대표할지도 모른다. 그의 고통이 수많은 독자의 지지를 이끌어내기는 했지만, 그 지지가 한 시인의 사적 삶까지 구원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얼마 전 그의 여덟 번째 시집 <빈 배처럼 텅 비어>(문학과지성사)가 나왔으므로 나는 그의 예전 시집 일곱 권을 다시 넘겨보았고 두 번째 시집 <즐거운 일기>(1984)가 그의 가장 훌륭한 시집이라는 희미한 과거의 판단을 재확인했다. 이 시집이 특히 뛰어난 것은, 모진 말이지만, 그가 다른 어느 시집보다도 바로 이 시집에서 가장 ‘사랑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의 모든 시집을 놓고 봐도 드문 것에 속하는, 생에 대한 순순한 긍정의 표현처럼 보이는 문장이 바로 이 시집 속에 있다는 사실도 아이러니한 일이다. “살아 있다는 건, 참 아슬아슬하게 아름다운 일”이라는 (자주 인용되는) 구절의 출처가 바로 이곳이다.

 

‘20년 후에, 지(芝)에게’라는 제목이 알려주는 바는 이 시의 수신자가 ‘지’(芝)이고, 이 시가 그 ‘지’의 20년 후를 생각하며 혹은 ‘지’가 20년 후에 읽어주기를 바라며 쓰인 것이라는 사실이다. ‘지’가 누구인지 시에 밝혀져 있지 않지만 나이와 성별은 추정해볼 수 있다. 내용상 20년 후에나 성인이 되는 존재이므로, ‘지’는 당시 막 태어났거나 아직 유아(幼兒)였을 것이다. 그리고 단언할 일은 아니지만 80년대 초반에 지(芝)라는 글자를 이름의 끝 글자로 썼다면 아마 여자아이일 것이다. 내가 알기로 최승자 시인에게는 아이가 없으니, 그렇다면 ‘지’는 시인의 조카이거나 친구의 딸이지 않았을까.

 

비관적 허무주의자인 시인은 어린 소녀에게 무슨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던 것일까. 그는 우선 어린 생명체가 세계와 처음 대면하는 날들을 지켜보며 경탄한다. 아이가 보는 세계는 경이롭다. 세계 그 자체가 본래 경이롭다기보다는 세계를 경이롭게 볼 줄 아는 아이의 눈이야말로 경이로운 것이다. 그런 아이를 보며 시인은 바로 그 문장을 적는다. “이상하지, 살아 있다는 건, 참 아슬아슬하게 아름다운 일이란다.” 비록 깨어지기 쉬운 아름다움이지만 삶은 아름다운 것이 될 수 있다는 것. 훗날 아이가 자라면 “새로운 눈”을 달고 세상에 출근해야 하겠지만, 적어도 지금 아이에게 주어진 삶은 아름답기만 해야 마땅하다는 것.

 

앞에서 최승자답지 않게 ‘생에 대한 순순한 긍정’을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문장이라고 했지만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저 구절 속에 담겨 있는 희미한 회한을 어떻게 지나칠 수 있을까. 삶은 아름다운 것이 될 수도 있는데 자신은 어째선지 그리되지가 않았으며 앞으로도 끝내 그럴 것 같다는 안타까움. 당시 겨우 30대 초반의 나이였던 시인은 자신에게 남은 것이 “깊이깊이 가라앉는 일”뿐이라고 단언한다. 그 예정된 결론을 바꿀 수는 없으며 다만 거기에 이르는 과정을 어떻게 연출하느냐 하는 일만이 그가 관심을 쏟음직한 유일한 일이라는 말과 함께(“참으로 연극적으로 죽어가는 게 실은 나의 사랑”).

 

이 시의 긴장이 거기서 나온다. 어린 ‘지’에게 생에의 찬가(讚歌)를 들려주고 싶지만 삶의 진실은 비가(悲歌) 쪽에 있다는 생각 말이다. 시인은 여성으로서의 자신의 삶에 개입해 들어온 세상의 적대적 힘이 ‘지’를 비껴가기를 바라면서도 그럴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그래서 시인은 20년 후의 ‘지’를 생각하며 이 시를 부친다. 그때 나는 이미 죽어 무덤 속에 있을 것이고, 너는 울면서 길을 찾아 헤매다가 “모든 끝의 시작”에 이르러 이 편지를 읽게 되리라고. 이 편지는 실제의 ‘지’에게 무사히 도착했을까. 알 수 없지만,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많은 이들이 생의 어느 국면에서 문득 최승자의 편지를 받는 일은 계속될 것이다.

 

 

신형철 조선대 교수
신형철 조선대 교수

 

자신의 예견과는 달리 “21세기의 어느 하오”가 왔을 때 시인 최승자는 무덤 속에 있지 않았지만 대신 정신병원에 있어야만 했다. 진실과 허위를 분별하는 감각이 예민하고 그 둘의 뒤섞임을 못 견디는 이에게는 살아있음 자체가 항구적인 정신적 투쟁일 것이다. 그 투쟁이 2000년대 초반 이후 그를 정신분열증으로 이끌어 갔으리라. 입원 중이었던 2010년 당시의 어느 인터뷰에서 몸무게 34㎏의 그는 자신의 삶은 스스로 선택한 것이며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해 나를 전율하게 만들었다. 후회하지 않는다는 말, 그 말을 할 때 그는 이번 생의 승자처럼 보였다. 재작년에 퇴원한 시인의 건강을 빈다. 부디 그의 가까운 곳에, 그를 다정히 안아주는 사람들이 많기를.

 

  신형철 문학평론가·조선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