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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소의 저녁 /안도현

법정 2014. 1. 12. 17:09

 

안도현의「염소의 저녁」감상 / 권서각

 

 

 

 

염소의 저녁

 

 

   안도현(1961~)

 

 

 

 

할머니가 말뚝에 매어놓은 염소를 모시러 간다

햇빛이 염소 꼬랑지에 매달려

짧아지는 저녁,

제 뿔로 하루종일 들이받아서

하늘이 붉게 멍든 거라고

염소는 앞다리에 한번 더 힘을 준다

그러자 등 굽은 할머니 아랫배 쪽에

어둠의 주름이 깊어진다

할머니가 잡고 있는 따뜻한 줄이 식기 전에

뿔 없는 할머니를 모시고 어서 집으로 가야겠다고

염소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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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염소도 당나귀와 함께 시에 자주 호출되는 소재다. 울음소리는 아기인데 수염이 달려 있어 할아버지 같기도 하다. 그 부조화가 오히려 친근감을 주는가 보다. 저물녘 뒷산에 매어놓았던 염소를 몰고 집으로 돌아오는 정경이 수채화처럼 아름답다.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지만 시인은 평범한 일상을 고급한 예술로 바꾸어놓았다.

 

   허리가 굽은 할머니는 염소 한 마리와 외롭게 산다. 염소가 아마 유일한 가족인지도 모르겠다. 수염이 있으니 영감 대신인지도 모르겠다. 울음소리가 아기 같으니 아들인지도 모르겠다. 염소는 할머니가 빨리 자기를 데리러 오지 않아서 뿔로 하늘을 들이받았노라고 응석을 부리는 철부지이기도 하고 할머니에게 뿔이 없음을 애석하게 생각하기도 한다.

 

   염소와 둘이 사시는 할머니의 삶은 어려운 농촌 현실을 말해준다. 젊은이가 없어 아이 울음이 들리지 않는 것이 우리 농촌의 현실이다. 그러나 마냥 절망적이지는 않다. 이 시의 핵심은 염소 고삐를 ‘따뜻한 줄’이라 한 데 있다. 줄은 할머니와 염소를 연결해 주는 마음의 통로다. 둘의 관계는 따뜻한 줄로 이어져 있다. 올해는 우리 이웃과의 관계도 이렇게 따뜻했으면 좋겠다.

 

 

  권서각 (시인)

 

  * 권서각 : 본명은 석창. 경북 순흥 출생, 영주고 교사, 대구대 겸임교수, 호 서각(鼠角) 혹은 쥐뿔. 197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벌판에서」당선. 1988년 시집 『눈물반응』, 2005년 시집 『쥐뿔의 노래』등이 있음.

 

 

 

박용래의「저녁눈」감상 / 문태준

 

 

 

 

저녁눈

 

 

   박용래(1925~1980)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말집 호롱불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조랑말 발굽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여물 써는 소리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변두리 빈터만 다니며 붐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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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두컴컴해지고 호롱불은 켜졌다. 불빛 둘레에 눈발이 뿌린다. 눈발은 벌떼처럼 붐빈다. 눈발은 달리는 말의 발굽처럼 재촉한다. 말 목덜미의 갈기처럼 흩날린다. 또 눈발은 한 단의 짚이나 마른 대궁의 풀을 손작두로 썰 때의 소리를 내며 쌓인다. 그리고 바깥 외진 곳까지도 내려 하얀 단층을 이룬다.

 

   응축과 생략을 한껏 사용한 단형의 시가 이처럼 여러 겹의 상상을 이끌어낸다는 게 놀랍다. 이 시를 읽고 있으면 눈발은 눈에 가득하고 귀에 가득하다. 채색을 하지 않은 가늘고 정교한 선의 소묘를 보라. 하지만 분주함과 여유, 피로와 평온, 있음과 없음이 동시에 표현되어 있다. 단일한 반복과 병렬을 통해 음악이 생겨나는 풍경은 또 어떠한가. 눈 오는 삼동(三冬)에는

 

      고산식물(高山植物)처럼 

      늙으신 어머니가 돌리시던

      오리 오리 

      맷돌 가는 소리

 

가 들린다고 노래한 박용래의 시 '설야(雪夜)'를 함께 읽자.

 

 

  문태준(시인)

 

 

안도현의「겨울 편지」감상 / 황인숙

 

 

 

 

 

겨울 편지

 

 

   안도현(1961∼ )

 

 

 

 

 

댓잎 위에 눈 쌓이는 동안 나는 술만 마셨다

눈발이 대숲을 오랏줄로 묶는 줄도 모르고 술만 마셨다

 

 

거긴 지금도 눈 오니?

여긴 가까스로 그쳤다

 

 

저 구이(九耳) 들판이 뼛속까지 다 들여다보인다

 

 

청둥오리는 청둥오리 발자국을 찍으려고 왁자하게 내려앉고,

족제비는 족제비 발자국을 찍으려고 논둑 밑에서 까맣게 눈을 뜨고,

바람은 바람의 발자국을 찍으러 왔다가 저 저수지를 건너갔을 것이다

 

 

담배가 떨어져 가게에 갔다 오느라

나도 길에다 할 수 없이 발자국 몇 개 찍었다

이 세상에 와서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것을

 

 

땅바닥에 찍고 다니느라

신발은 곤해서 툇마루 아래 잠들었구나

상기도 눈가에 물기 질금거리면서,

 

 

눈 그친 아침은, 그래서

이 세상 아닌 곳에다 대고 자꾸 묻고 싶어진다

넌 괜찮니?

넌 괜찮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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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발이 대숲을 오랏줄로 묶는 줄도 모르고’라! 안도현은 평범한 풍경이나 소소한 사물에도 기발한 상상력과 적확한 수사(修辭)로 그럴싸한 새 옷을 지어 입힌다. 비처럼 눈도 술을 부른다지. 술꾼의 흥에 겨워서가 아니라, 낮고 외롭고 쓸쓸한 마음으로 혼자 술을 마시며 지새운 눈 내리는 밤. 아침이 되어 눈이 그치고 화자의 집 앞에 펼쳐진 ‘저 구이(九耳) 들판이 뼛속까지 다 들여다보인다’. 귀는 아홉 개에 뼛속까지 다 들여다보이는 겨울 들판, 겸허하고 무구한 자연이어라. 쌓인 눈 위에 청둥오리도 족제비도 거리낌 없이 발자국을 찍을 테지만, 화자 자기는 안 찍고 싶단다. 차마 발자국을 남길 수 없단다. 그런데 참 담배가 뭔지! ‘담배가 떨어져 가게에 갔다 오느라/할 수 없이 발자국 몇 개 찍은’ 화자다. 다녀와서는 눈 묻은 신발을 툇마루 아래 벗어 던지고 또 마음이 자조감으로 자욱해진다. ‘이 세상에 와서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것을/땅바닥에 찍고 다니느라’라고. 발자국, 족적(足跡)은 살아 있는 흔적, 삶의 흔적이다. 시인에게는 시가 삶의 흔적일 테다. 화자가 안도현 자신이라면, 자기 시를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다’는 구절은 엄살 부리는 게 아니라 스스로를 엄하게 돌이켜보는 것일 테다. 화자의 괜찮지 않은 심사를 전하는 편지에 ‘이 세상 아닌 곳’의 한 시인은 답하리. 괜찮타, 괜찮타, 괜찮타.

 

  황인숙 (시인)

 

백석의 「멧새 소리」감상 / 문태준

 

 

 

 

멧새 소리

 

 

   백석(1912~1995)

 

 

 

 

처마 끝에 명태를 말린다

명태는 꽁꽁 얼었다

명태는 길다랗고 파리한 물고긴데

꼬리에 길다란 고드름이 달렸다

해는 저물고 날은 다 가고 볕은 서러웁게 차갑다

나도 길다랗고 파리한 명태다

문턱에 꽁꽁 얼어서

가슴에 길다란 고드름이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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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가 발표된 때는 1938년. 이 시를 쓸 무렵 백석은 함경남도 함흥에 살았다. 함흥에 살면서 동해(東海)에선 날미역 냄새가 난다고 썼고, 관북 지방에서 잡히는 가자미와 가무락조개에 대해 썼다.(그는 동해의 조개가 되고 싶다고 썼고, 가자미는 흰밥과 빨간 고추장과 함께 가난하고 쓸쓸한 밥상에 한 끼도 빠지지 않고 올라오던, 먹어도 물리지 않는 생선이라고 썼다!)

 

   이 시의 온몸에는 한기가 들어 있다. 민가 처마에 겨울 명태가 매달려 있다. 추운 세상에 명태에 고드름까지 달렸으니 더 여위고 기다랗고 두 눈은 퀭해보였을 터. 그 명태의 궁색을 화자의 처지에 겹쳐 놓았다. 객지에 사는 이의 외로움과 쓸쓸함의 높이 같은 것. 그런데 왜 제목이 '멧새 소리'인가. 멧새 소리는 뭍과 숲과 고향의 소리이니 바다와는 한참 멀다. 바다에서 잡혀온 명태나 고향을 떠나온 화자나 다를 바 없다. 처마 끝 꽁꽁 언 명태를 바라보는 이의 객수가 시린 뼛속에 더욱 사무쳤으리.

 

 

  문태준 (시인)

 

 

 

정호승의「슬픔이 기쁨에게」감상 / 황인숙

 

 

 

 

슬픔이 기쁨에게

 

 

   정호승(1950∼)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겨울밤 거리에서 귤 몇 개 놓고

살아온 추위와 떨고 있는 할머니에게

귤값을 깎으면서 기뻐하던 너를 위하여

나는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주겠다

내가 어둠 속에서 너를 부를 때

단 한 번도 평등하게 웃어주질 않은

가마니에 덮인 동사자가 다시 얼어 죽을 때

가마니 한 장조차 덮어주지 않은

무관심한 너의 사랑을 위해

흘릴 줄 모르는 너의 눈물을 위해

나는 이제 너에게도 기다림을 주겠다

이 세상에 내리던 함박눈을 멈추겠다

보리밭에 내리던 봄눈들을 데리고

추워 떠는 사람들의 슬픔에게 다녀와서

눈 그친 눈길을 너와 함께 걷겠다

슬픔의 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기다림의 슬픔까지 걸어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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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갈수록, 일본 만화 ‘시마과장’의 한 대사처럼 ‘저마다 업보 많은 삶을 살고 있다’는 걸 절감하게 된다. 멀리, 가까이, 가슴 아픈 일이 너무 많다. 도처에 슬픔의 웅덩이, 슬픔의 구름장, 슬픔의 도가니다. 그래서 어쩌다 그늘 한 점 없어 보이는 사람을 만나면 마음이 편해지고 환해진다. 부모 된 사람들은 자기 아이가 그늘 없이 살아가기를 바랄 테다. 세상에 슬픔이 있다는 걸 아예 모르고 오직 기쁨 속에서 살게 되기를. 밝은 전망이 안 보이는 불안정한 시대이니만큼 더 그럴 테다. 그런 옹졸한 사랑으로 길러진 기쁨의 아이들은 슬픔의 사람들이 자기와 평등한 사람이라는 걸 깨닫지 못한다. 그 아이들의 눈에는 ‘겨울밤 거리에서 귤 몇 개 놓고/살아온 추위와 떨고 있는 할머니’도 ‘가마니에 덮인 동사자’도 보이지 않는다. 슬픔이 ‘어둠 속에서 부를 때/단 한 번도 평등한 얼굴을 보여주지 않은’, 그런 둔하고 차가운 마음이 세상을 슬픈 얼음장으로 만드는 것인데. 기쁨이 세상의 슬픔에 눈 돌리도록 하겠다는 결기가 안타까운 분노와 함께 서려 있는 시다.

 

   정호승의 시를 김광석이 노래한 ‘부치지 않은 편지’를 듣고 있다. ‘언 강바람 속으로 무덤도 없이/세찬 눈보라 속으로 노래도 없이/꽃잎처럼 흘러흘러 그대 잘 가라’ 혈관 속에 슬픔의 입자들이 가득 차 따끔거린다. 정호승 시들은 왜 이리 서러울까. 무슨 업보를 갖고 있기에.

 

 

  황인숙 (시인)

 

 

신석정의「蘭」감상 / 문태준

 

 

 

 

 

 

   신석정(1907~1974)

 

 

 

 

 

 

바람에

사운대는 저 잎샐 보게

 

 

잎새에

실려오는 저 햇빛을 보게

 

 

햇빛에

묻어오는 저 향낼 맡게나

 

 

이승의

일이사 까마득 잊을 순 없지만

 

 

蘭이랑

살다보면 잊힐 날도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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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석정 시인은 난초를 노래한 시 여러 편을 유작으로 남겼다. 그 시편들을 요즘의 한파 속에서 읽어 마음에 지니니 한파와 몰려오는 눈발이 수그러드는 느낌이다. 신석정 시인은 난초의 굽힌 데 없이 뻗은 '밋밋한 잎'은 건강하고도 고고하고, 꽃 빛깔은 '맑고 담담하여/ 아예 속운(俗韻)이 없'고, '손에 잡힐 듯 달려드는' 난초의 향기는 십리 너머로 나아간다고 썼다.

   신석정 시인이 권한 대로 고아하고 청초한 난초를 가까이에 두어 우리의 가쁜 숨을 조금은 돌릴 일이요, 세상의 풍진(風塵)을 겪더라도 본래의 면목과 품성을 지켜나갈 것을 생각해 볼 일이다. 소곤거리듯 들려오는 잎새의 작고 미묘한 흔들림, 그 위에 얹힌 투명한 빛, 은은하게 움직이는 향기를 보라. '고서 몇 권과 술 한 병, 그리고 난초 두서너 분이면 삼공(三公)이 부럽지 않다'고 가람 이병기도 말하지 않았던가.

 

 

  문태준 (시인)

 

 

 

 

최영미의 「행복론」해설 / 권순진

 

 

 

 

행복론

 

 

   최영미

 

 

 

 

 

 

사랑이 올 때는 두 팔 벌려 안고

갈 때는 노래 하나 가슴속에 묻어놓을 것

추우면 몸을 최대한 웅크릴 것

남이 닦아논 길로만 다니되

수상한 곳엔 그림자도 비추지 말며

자신을 너무 오래 들여다보지 말 것

 

 

 

답이 나오지 않는 질문은 아예 하지도 말며

확실한 쓸모가 없는 건 배우지 말고

특히 시는 절대로 읽지도 쓰지도 말 것

지나간 일은 모두 잊어버리되

엎질러진 물도 잘 추스려 훔치고

네 자신을 용서하듯 다른 이를 기꺼이 용서할 것

 

 

 

내일은 또 다른 시시한 해가 떠오르리라 믿으며

잘 보낸 하루가 그저 그렇게 보낸 십년 세월을

보상할 수도 있다고, 정말로 그렇게 믿을 것

그러나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고

인생은 짧고 하루는 길더라…

 

 

 

 

 

                      —시집『꿈의 페달을 밟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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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른 잔치는 끝났다』로 처음 이름을 알린 최영미 시인은 그의 친구들 가운데 가장 먼저 결혼하고 가장 빨리 이혼한 전력을 갖고 있는 독신이다. 그리고 서울대에서 서양사학을 공부했고 홍익대에서 서양미술사를 전공했으며 소설집도 두어 권 냈다. 이건 좀 부담스러운 편견일지 모르겠지만 간략한 이력만으로도 그 콧대의 높이를 짐작할만하다. 말하자면 그 콧대를 염두에 두고 이 시를 읽었는데, 먼저 이별에 대한 쿨한 태도는 살아있음을 본다.

 

   그리고 이 행복론은 첫 작품집에서 감지된 삶의 고행과 비관의 그림자와 비교하면서 읽을 때 얼핏 화해와 희망 그리고 낙관을 이야기하는 듯 보이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그동안의 다채로운 삶의 이력과 그 궤적의 결과에서 오는 필연적 피곤함에 조금 지친 탓일까. 계획대로 되지 않는 삶에서 자발적 모험들이 내일을 보장받을 수 없고 밤을 새워 고민한들 나아질 게 없다는 인식의 흔적에서 스스로 안전지대를 찾아든 것일까.

 

   그의 말대로라면 절대 촛불 따위는 치켜들지 말고 그 근처에도 얼씬거리지 말며, 남의 일에 공연히 참견하거나 들쑤시지도 말아야 한다. 누구나 행복한 삶을 꿈꾸지만 행복의 진정한 의미는 무얼까 라고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그냥 가란다. 가되 ‘남이 닦아논 길로만’ 다니고, 조금이라도 ‘수상한 곳엔 그림자도 비추지 말며’ ‘자신을 너무 오래 들여다보지 말 것’도 주문한다. 반어적 표현에 시인의 냉소와 열정이 함께 느껴져 묘한 설득력을 지닌다.

 

   그만큼 사람들이 피곤에 지쳐있다는 의미일까. 하지만 현실을 눈감고 얻을 수 있는 반대급부가 있다면 바로 편안함일 텐데, 편함이 곧 행복일 수는 없다. 니체가 말했다. 언젠가 날기를 원한다면 먼저 일어서고, 걷고, 달리고, 기어오르고, 껑충거리는 것을 배워야 한다고. 준비 없이 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했다. 인생의 비탈에 선 우리 같은 사람에겐 그리 썩 와 닿거나, 의지를 불태울 격려사는 아니지만 그게 정석 아니겠는가.

 

   ‘시는 절대로 읽지도 쓰지도 말 것’이란 대목에서 움찔하지만 현재로선 로또가 당첨된다면 모를까 그러진 못할 것 같다. 다만 집착하진 않겠다. 논어에서도 '집착을 버리니 仁이 다가오더라'고 했던가. 바다는 광활하여 고기가 뛰어 노는 대로 버려두고 하늘은 막힘없는 그 허공에 새가 나는 대로 내버려 둘 일이다. '태양아래 새로운 것은 없고 인생은 짧고 하루는 길‘뿐이니 그저 열심히 살아내는 것이 최선의 행복이라 믿고 싶다.

 

 

  권순진(시인)

 

 

생각담요 아래 살다

 

   박연준

 

 

 

바람이 덩어리로 지나다니는 겨울,

저녁입니다

무거워진 생각을 발끝으로 차며 걷는데

별안간 생각은 오래전,

아랫목에 펼쳐 놓은 밍크담요가 되어

펄럭이다 따뜻해집니다

안을 들춰보니

작고, 고요하고, 가느다란 옛날이

아무것도 모른 채 살고 있었습니다

어깨가 굽은 순한 가장들과

콩나물국에 밥을 말아 먹는 식구들

골목과 마당과 연탄 속을 뛰어다니다 잠든 쥐들

같이 살던, 쥐들

점선으로 걸음을 그리며 다가오던 저녁도

여전히 살고 있었습니다

 

다시 담요를 덮고

꼭꼭 숨어라, 주문을 외우고

눈을 감으니

발을 길게 끌며 사라지던,

구불구불한 골목을 데리고 사라지던

두부장수 종소리도 들릴 것 같습니다

 

느리게 오는 기억은

오는 동안

귀퉁이를 잃지요

담요 아래서나 살지요

 

차가워진 턱 아래를 만져봅니다

지붕 아래 숨어 사는 고드름들이

한꺼번에 물이 되어 쏟아질 것처럼,

흔들립니다

 

 

 

                       —《현대시학》2013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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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준 / 1980년 서울 출생. 2004년〈중앙일보〉신인문학상 시 당선. 시집 『속눈썹이 지르는 비명』『아버지는 나를 처제, 하고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