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산맥> 신인상
제7회 <시산맥> 신인상 당선작 _ 조희진, 지연
투영화법(投影畵法) (외 4편)
조희진
투명 물고기였다 어시장 대형 수족관에서 보았던 살을 발린 물고기처럼 당신은 남은 뼈와 꼬리만으로 밤하늘을 유영하고 있었다 날숨 뱉고 아가미만 뻐끔거렸다
당신의 깊은 속살까지 떠온 밤, 캄캄한 검은 비닐봉지 속에서 내가 점점 투명해졌다 유리 파편처럼 부스러진 별 부스러기들이 남쪽물고기자리에서 사방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주머니 속 거슬러 받은 동전이 더욱 쩔렁거렸다
앙상하게 격자무늬로 남은 당신의 창, 당신의 서랍에는 아직도 딱딱하게 굳어가는 당신의 붓, 당신의 명분들이 가지런히 그대로 놓여 있다 뾰족한 붓끝을 물에 적신다 핏기 가신 밤하늘에 아픈 갈비뼈 하나를 긋는다 쩍쩍 갈필이 난다
자꾸 갈라지려는 내가 면도날처럼 선명해지고 싶어 눈꼬리를 치켜뜨고 날카롭게 눈썹을 다듬는다 당신의 비린 냄새도 A병동 냉동 수족관에서 서서히 얼어붙어 화석처럼 선명하게 굳어갈 것이다 자라나지 않은 눈썹을 한밤중에 일어나 또 민다
‘오늘’이라는 매뉴얼
이 달의 카탈로그에도 네 바코드는 없었다 여전히 과거로만 똬리를 트는 내 인식 속의 오류, 단 한 번도 눈으로 마주친 적 없는 너를 마른 빵처럼 뜯어 먹다 이불 속으로 발을 뻗는다 이불을 눈 아래까지 끌어 덮고 멀티의 배꼽을 누른다 절반쯤 익어가는 정오의 햇덩이, 절반의 광고방송, 뉴스는 언제나 수족관의 열대어처럼 소리 없이 입만 달싹이는 현란한 구문의 반복
조간신문의 풍성한 메뉴는 새벽 네 시의 공복 속으로 던져진다 초고속 CCTV에 반짝, 우주 공간의 별 하나로 네가 찍힌 건 수년 전이었고 붉은 직인이 찍힌 네 생의 독촉장은 잊을 만하면 또 배달된다 오늘은 플라스틱 바구니에 시든 사과 향, 먹다 만 사과는 금세 갈변되었다 햇살 한 번 들인 적 없는 위장 속에선 자꾸 신물이 올라왔다 사과껍질 안쪽에 붙은 과육, 그 사소한 분량만이라도 반송하고 싶다 슬픔 어딘가에 더 딱딱하게 익어갈 부드러운 육질이 남아 있다면
툭툭 굵은 실밥 터지는 소리 들린다 누군가 내 겨드랑이에서 초인종을 누른다 아무도 없는 긴 복도 끝, 검은 빗물만 뚝뚝 흘러내리고 있다 아직 끌러보지도 않은 크고 작은 상자 위, 또 배달된 젖은 짐들이 아무렇게나 쌓여가고 있다 터진 겨드랑이에 시침핀을 꽂는다 배열이 일정하지 못한 모서리의 아픈 시간들이 지금 무겁게 회복하고 있는 중이다
견인
오래 버텨온 그가 무허가 컨테이너 박스처럼 녹슬어 가고 있다 튿어진 나일론 잠바 사이 그가 걸어온 구비 진 길들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자바라 방충망 새시 인테리어… 때 절은 소매 끝의 내력이 건설 삼보중기 문고리에 쩍쩍 달라붙고 있다 뚜껑이 없어져버린 그의 잠 속에서 이월의 난로가 꽁꽁 얼어붙어 있다 선팅이 벗겨져 피부 각질처럼 나달거리는 창문 안으로 부려진 시간들이 보인다 먼지 속에 박제된 꿈의 도구들, 벽의 내부로 찬바람 들이칠 때마다 죽은 빙어가 둥둥 떠다니는 것처럼 보인다 반쯤 떨어져 나간 차양이 표정을 철거당한 콘크리트 바닥 위에서 덜컹거리고 있다 리모델링할 수 없는, 눈동자 속으로 얼어붙은 하늘 한 자락 무심히 펄럭인다 비장하게 녹슬어 가고 있는 철문처럼 눈꺼풀이 잠깐 열렸다 천천히 닫힌다 굳은살 박인 손가락 사이로 타들어가고 있던 꽁초가 그 이력의 한가운데로 툭, 떨어진다
비상등
저 쪽이 들판이라고 말해준 건 너였고
이 길이 곧바로 동쪽 바다로 가는 길이라고 말해준 것도 뭉뚝한 너의 두 눈,
초봄이었지
몇 개의 길고 긴 터널을 지났는데 대관령에서 또 터널을 만났다
그런데 이게 뭐야,
육중한 몸의 앞다리 두 개를 펼쳐들고 언제나 어정쩡한 직립의 자세로 서 있는 백마의 조각상처럼 불쑥,
내 앞을 끼어든 것도 너잖아
작년에 핀 복사꽃이 올해도 복사꽃이라고? 오늘은 어제의 복사판이라고?
깜빡거리는 네 눈빛의 의민 또 뭐야,
내 기억이 안개 속에서 자꾸 지워지잖아
이 길 위에서 눈 한 번 딱 감았다 떴을 뿐인데
저 들판의 꽃들은 언제 피었다 언제 져버린 걸까
희미하게 사라져 가는 네 눈빛 속의 말들
그 눈빛으로 다시 한 번 내 기억의 들판을 말해 줘
우기, 그렇게
물 향기 수목원 편백나무 울타리 곁에는 아카시아 모텔만 땅속으로 뿌리를 번성해 가고 있었다
유리문 굳게 닫힌 미소지움 안과, 진료실 책상 위로 얇은 일간지들 묵묵히 쌓여가고 있었다
서로를 오해하거나 견주려 들지도 않았다
둥글게 솟아오른 미소지움 원시의 안구 속으로 몇 차례 낙뢰의 환영들이 흘러갔다
백내장의 눈시울 같은 계절 그 너머, 양 날개 그물 살 부비는 소리 들렸다
불거져 나온 광대뼈, 나비 한 마리 슬쩍 앉았다 간 흔적, 단치마 사그락거리며 누군가 걸어 나오고 있었다
등 갈퀴 풀숲을 헤치고 막 날아오르려는 북방기생나비처럼 활짝 펴든 양 날개, 결절된 등 비늘의 시간들이 흩날렸다
후드득 풀숲에 떨어진 보드라운 잎맥들과 거세게 몰아쳤던 유월의 단상들이, 그렇게
긴 장마의 출구였다
[당선소감]
둑을 무너뜨리고 방류되는 물길 위의 한 잎 나뭇잎
무릴 지어 다니는 사람들 사이에서 저는 늘 혼자였던 것 같습니다. 어느 누군가가 단지, 제 피부색이 조금 검다는 이유로 출생 연도가 조금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지나친 세금을 물린다면, 그건 분명 억울한 일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그 어떤 것도 새로 만들거나 조작하고 싶진 않았습니다. 목적지가 모두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전혀 우왕좌왕하지 않았다면 그건 터무니없는 거짓이겠지요.
불투명한 사물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노작 홍사용 문학관 시창작반이었습니다. 아마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시편들을 접했을 때였을 겁니다. 서양의 전통적인 사조나 미학담론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분방한 우주적 상상력을 시에 투영시킨 작품들, 특히 만년의 꾸준한 창작활동을 본받고 싶었단 말을 감히 해도 될는지요.
강둑을 무너뜨리고 방류되는 물길처럼, 시시각각 역마다 사람들이 방류됩니다. 제가 어느 지점에서 어떻게 흘러들었는지,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만, 때에 따라 방류되는 그 물길 위의 한 잎 나뭇잎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시산맥’이라는 역에 방류된 제 시가 어떻게 해석될지 어떤 반열에 놓일지 걱정이 앞섭니다.
시가 뭔지도 모르고 시 수업에 뛰어들어 얼떨떨해 했을 때의 최정례 선생님, 밥숟가락도 제대로 못 쥐는 제게 안타까운 마음으로 숟갈질을 가르치며, ‘시’라는 ‘잡곡밥’의 거칠고도 쓴 맛을 곱씹게 만들어 주신 이덕규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돈이나 밥이 되는 것도 아닌 시 쓰는 것을 곱게 봐준 가족들께 고맙단 말 하고 싶고, 주야로 함께한 노작 시창작반 동료들, 햇살들도 늘 제 옆에 있다는 것, 잊으면 안 되겠지요.
제 시의 방류를 도와주신 시산맥 심사위원님들께도 깊이 감사드립니다.
▲ 조희진 / 경남 함안 출생, 경기 오산 거주, 한국방송통신대 일본어과 졸업. 10420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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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뀌꽃이 걸어오는 시간 (외 4편)
지 연
1
사내는 물비린내가 난다고 했다
여뀌꽃이 피기 전에 여자
유방암 항암치료를 하고 돌아왔다
사내는 다른 여자를 품고 있었다
나란히 앉아 피아노를 치면서
샵을 누르며 웃는 소리
계단을 내려가며
여자는 빛을 밟고 밟았다
외가로 보낸 딸아이를
왼쪽 젖무덤에 올려놓았다
2
도려진 가슴을 만졌다
살갗에 입을 부딪치며
수많은 여뀌가 숨구멍을 찾고 있었다
여자의 외짝 무덤이 철렁 떠오를 때마다 나는 욕실로 간다 전신 거울에 맺힌 물방울들 십년이 지났지만 가묘(假墓)의 하루, 하루가 흘러내린다 나에게 이혼의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 했던 여자의 시간이 온다 몸에 붙은 젖무덤이 파헤쳐진다 여뀌들이 솟아오른다 물이 잘 빠지는 무덤에 여뀌꽃 어머니, 미끄럼 타는 물방울들 가묘 위에 가묘들
저승에 한쪽 가슴을 주고
이승에서 꺼져가던 여자
물방울에 기대면
나에게 빈젖을 물리고
여뀌꽃 피기 전에
투둑 떨어집니다
친절한 금자씨 2013
어두운 방에서 고시공부하다 실성한 여자
산굴뚝나비처럼 걸어가고 있었어
연기처럼 날아올랐어
골짜기를 지나 바다를 지나 머나먼 사막
산굴뚝나비가 노을 한 입을 베어 물었어
네 발을 겅중 세우고 날개를 접었다 펴고 있었어
광활한 어둠이 전갈처럼 다가왔어
표범무늬 날개눈이 커지고 있었어
삼켜도 삼켜도 날개로 달려오는 전갈들
산굴뚝나비 선인장에 숨어 이슬을 빨았어
무너져도 무너지지 않는 사구 그 깊은 창고에
산굴뚝나비 가시로 눈을 빗질했어
별이 떨어지고 있었어 아니, 하얀 모래알
여자가 그림자 속에서 속삭였어
전갈이 가위를 세웠어
그림자 머리가 쪼개지고 표범이
표범무늬 날개눈 속에 얼굴이
허기진 산굴뚝나비처럼
날개를 접었다 폈다 했어
모래 바람이 쏟아졌어
생의 메마른 무늬들
가루약 같은
봄에 따시끼를 듣다
오후 세 시가 되면 사내는 알람처럼 멜로디언을 불지 사람들이 힐끔힐끔 못을 날리지 그러거나 말거나 사내는 화단에 앉아 나비야 노래를 스타카토로 깨워 부르지 천분(天盆)에 노랑나비 흰나비 날아온다고 뛰어다니지
아이들이 몰려오지 발을 구르고 손뼉을 치지 따시끼 따시끼 왕따 시끼 따시끼 나비 반주에 맞춰가며 침을 튀기지 사내는 팔을 휘저으며 갓 심은 팬지꽃 위로 올라서겠다는 듯 꽃을 밟지 아파트 값이 내려갈까 조마조마한 사람들이 더는 참을 수 없다고 항의한다지
통장이 삼천지구대에 민원을 넣었는지 사내가 사라졌지 지하주차장 벽에 아이들과 따. 시. 끼. 짖어대듯 유성 펜으로 썼다는 풍문만 있지 반올림 건반을 징검다리 삼아 이사 갔는지 벙그러진 입으로 나비가 떼 지어 들어갔는지 알람은 더 이상 울리지 않지 몇몇 사람이 화단에 물을 주었다지
바람이 문을 때렸지 햇살이 방범창을 뚫고 들어왔지 봄이 언제 적에 왔는지도 모르느냐고 바닥을 쳤지 따시끼, 순간 바닥에 납작 엎드린 나비가 공중 위로 날아올랐지 따시끼 따시끼 왕따 시끼 따시끼 벽지에 앉아 멜로디언을 불었지 자리끼 같은 따시끼 봄이 환장하게 피어났지
환풍기
1
그는 화장지를 돌돌 말아 왼쪽 귀를 막았어 자신보다 먼저 진물 흘리는 귀를 참을 수 없었어 꽃을 만나면 꽃을 나비를 만나면 나비를 돌돌 말아 넣었어 왼쪽 귀에 밀어 넣으면 오른쪽 귀로 빠져나가는 진물 더듬이들 한번은 먹바람을 한 움큼 잡아 귀에 넣고 양쪽 귀를 막았어 우왕우왕 뇌벽을 세차게 때리는 바람, 경기를 일으키던 나무들이 아주 잠시 하늘을 보여주었어 나는 그의 말을 들으며 십자드라이버로 화장지를 빼고 싶었어 거짓말쟁이, 이상한 일이었어 그가 돌려서 빼놓은 바닥의 화장지가 꽃이 나비가 솔바람이 환풍기가 되어 도는 것이었어
2
내 최초의 기억은 때에 전 환풍기를 바라보는 일이었어 돌아가는 환풍기에서 곧게 뻗어 들어오는 빛, 혀끝으로 핥고 싶었어 어머니는 분식집을 했어 밀가루에 오지 않는 아버지를 넣고 치대고 밀고 떼었어 뜨거운 물에 수제비가 풀어지듯 나는 자라 도로를 핥는 바퀴를 보았어 그 바퀴를 따라 걷다보면 집에서 얼마나 멀어지는지 몰랐어 길은 잃기도 쉬웠지만 잃어버릴수록 찾기도 쉬워졌어 메뉴판을 꼼꼼히 훑어보고 오세요 손님처럼 아버지
3
차 한 대가 순식간에 지나갔어 길이 기침하여 뱉은 돌멩이를 발로 찼어 길은 구심점을 향한 환풍기의 날개, 날개를 타고 나는 길과 바퀴를 눈으로 핥았어 속도에 튕겨진 돌멩이처럼 그가 휴지를 돌리며 나를 따라왔어 해가 붉게 환풍기를 돌렸어 노을, 그가 손을 뻗어 허공의 노을을 돌돌 접었어 아버지를 닮은 그가 내 손에 쥐어준 노을이 어지럽게 돌다 손바닥에 박혔어 그와 나만이 아는 외곽의 노을이 바퀴살이 되어 바람을 일으키고 있어 나는 손을 들어 오른쪽 귀를 막았어
바람 바이러스
교회 종소리가 울리면
삭발한 여자가 인형을 만든대
삐걱이는 의자에 앉으면 벽에 자꾸 머리를 찧는 바람의 말이 들린대 아이는 벽에 머리를 파륵파릅 찧는 아이였대 여자는 아이를 데리고 새벽 예배에 다녔대 그런데 그날은 이상하게 아이가 옆으로 흔들거렸대 여자는 아이를 업고 찬송가를 불렀대 그때 처음으로 아이가 여자의 등에 깊이 머리를 기대었대
등에서부터 바람이 지나갔대
바람이 여자에게 우왁 달려왔대
가슴에 머리를 찧는 바람을 안고
여자는 인형을 만들었대
걸어 다니지 못해서 무릎 닳은 바람
추워서 어쩌냐고 여자는 이불을 뜯어 인형 옷을 만들었대 바람이 새처럼 이야기를 한 것도 그즈음 이었대 엄마엄마 얼었던 눈이 흘러내려 엄마엄마 내 몸에 목이 아픈 꽃이 필까? 말 못하던 아이가 눈을 후비며 이야기 한대 문에 걸린 인형도 테이블에 앉은 인형도 모두 이불 한 조각, 조각난 천의 시간이 여자의 등을 바라본대 빗방울이 고인 오목한 등 바라보다가 목을 앞뒤로 흔드는 인형들은 바람을 토닥토닥 덮어준대 바람을 따라다니는 인형의 헤엄 다리는 밤새 해어져 여자는 다리를 더 촘촘히 바느질한대
여자는 하얀 실처럼
바늘의 뾰족한 눈물이 되어
수시로 세상의 안과 밖을 시침질한대
대에 대에엥 종이 울리면 누구나 바람의 호위병 가게 문을 연대 바람이 사람들의 등으로 달려가 머리를 훕훕훕 찧는대 어른들은 여자의 인형을 안고 헐겁게 웃는대 여자의 등에 바람 길이 생겨난대
[당선소감]
눈물겹게 한 생을 적시는 것들, 그 눈빛으로
시는 내 무의식을 끝없이 끌어올리는 설렘이었습니다. 그 두근거림은 오래지 않아 나를 할퀴기 시작했습니다. 시는 더 이상 설렘이 아니라 살풀이가 되어 주술을 외우고 있었습니다. 무당이 된 듯 나는 발에 땅을 딛지 못하였고 작두 위에서 아슬아슬 울고 있었습니다. 스스로 베이고 떨어지기를 수십 번 그러다 생각했습니다. 나는 어떤 시를 쓰고 싶은가? 내 인생 위에 시는 어느 지점에 있는가? 내가 쓴 시가 나와 타인을 위로할 수 있는가? 그러다 시와 떨어져 지내기로 했습니다. 가끔 생각날 때마다 벽면 그림자를 후려쳤습니다. 단 한 줄도 쓰지 않았고 쓸 수도 없었습니다. 텅 빈 시간과 풍경이 나를 채웠다가 어둠으로 지워졌습니다. 무방비로 심심하였으나 그 심심함 속으로 햇볕이 드나들었고 풀벌레가 지루하게 울기도 했습니다. 이제 시에게 매달리지도 끌려가지도 않겠습니다. 찾아오면 찾아오는 대로 떠나면 떠난 대로 동행하며 걷겠습니다.
당선 전화를 받고 노랑으로 건너가는 논두렁을 보았습니다. 익어가며 깊어가는 알곡들이 바닥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바닥이 남루하지 않겠지요. 내 후미진 바닥에도 꼬물꼬물 기어가는 것들 걸어가는 걸들 뛰는 것들이 있겠지요. 눈물겹게 한 생을 적시는 것들 초라하지만 형형한 눈빛으로 사랑을 나누는 것들……. 저들의 노래를 끝없이 받아 적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초록에서 노랑으로 가는 길목에 내 가난한 발을 올려도 좋겠습니다. 바짓가랑이에 이슬이 적시면 더더욱 좋겠습니다. 가난한 눈으로 오래 바라보겠습니다. 두려워하지 않겠습니다. 들뜨지도 않겠습니다.
당선 소식을 듣고 기뻐해주신 스승님께 고개 숙여 감사 인사를 올립니다. 자신이 행복해야 읽는 사람도 행복하다며 아버지처럼 응원해주신 김동수 교수님, 쓰고 쓰다보면 된다며 주눅 든 어깨를 토닥여주신 문신 선생님, 두 분 스승님께 부끄럽지 않은 제자가 되기 위해 느리고 깊게 걷겠습니다. 밤 열시가 넘도록 치열하게 공부했던 ‘글벗’ 식구들과 멀리서도 박수를 보내고 있을 ‘온글’ 식구들에게도 이 자리를 빌려 감사함을 전합니다. 그리고 누구보다 재미없는 시를 또박또박 읽어주던 수현이, 마냥 잘한다고 칭찬했던 성민이, 읽어라 배워라 따끔하게 지적했던 남편 김동석님께 고마움을 전합니다. 모든 것은 나로부터 시작되었으나 돌아보면 주변이 나를 이루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를 둘러싼 모든 분들과 풍경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마지막으로 부족한 글을 잡아주신 시산맥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립니다.
▲지연 / 1971년 전북 임실 출생. 제 35회 전북여성백일장 시부문 장원. 2013년 미션21크리스천 신춘문예 동시 가작 입선. kiki217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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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회 시산맥 신인상 심사평]
앞으로 펼칠 활약상을 기대하며
시인에게는 천지간의 운행원리를 물리적인 측면이나 심리적인 측면에서 천착해 들어가려는 탐구의지가 있어야 하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사회 속에 내재된 사회적 또는 역사적 시점에서의 갈등과 모순, 순행적인 측면과 역행적인 측면, 조리와 부조리를 가늠하려는 자세가 요구된다. 그러한 기반 위에서 심미적으로 시적 플롯을 구성해야 다각적으로 독자와 소통이 될 수도 있고 다채로운 플롯의 묘미가 있는 형상성을 갖출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시인의 선험 내지는 경험적 인식에서 빚어진 삶의 미학과 메시지가 더해진다면 더할 나위없는 작품의 완성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더하여 시인을 지망하는 사람에게는 기본적인 시작의 기법을 충실히 습득할 의무가 있다. 작품(시)을 형상화함에 있어 시적 기교가 지나치게 드러나는 것을 경계하여 기법과 기교를 충분히 익히되 작품을 쓸 때에는 그러한 것들을 모두 내려놓아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말이 시작법에 소홀해도 된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그래서는 모든 시인의 염원이기도 한 ‘좋은 시’를 생산하는 것이 요원해질 수밖에 없고 시간을 아무리 벼려도 ‘좋은 시’를 쓰는 시인이 되기는 어렵다.
이러한 취지를 갖고 본심에 오른 작품들을 면밀히 살펴보았다. 총 820여 편의 작품이 응모되었고, 이 중에서 24명의 250여 편이 예심을 통과하였다. 본심에 오른 작품들답게 대체로 기본적인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대체로 서사적 플롯이나 극적 플롯이 편향적으로 치우쳐진 플롯구성의 문제를 갖고 있었다. 이는 기성시인들의 작품을 살피면서 겉만 보고 따라 쓰는 결과로 보였다. 또 다른 측면으로는 독창성을 드러내려는 욕심이 과하다보니 시의 본질을 구현하는 데에는 소홀하고 기교만 두드러지는 작품도 꽤 있었다. 그러한 작품들 중에서도 김미옥, 김욱, 김일곤, 이재근, 임희선, 정은, 조희진, 지연, 홍애니, 황선주의 작품들은 다른 작품들에 비해 이러한 문제를 다소 극복한 것으로 보였다. 심사위원들은 이들의 작품에 주목하여 세심히 읽고 다각적인 측면에서 평가하며 토의하였다. 그런 다음에 최종으로 김욱, 조희진, 지연, 황선주의 작품을 선하였고, 다시 네 사람의 작품을 놓고 오랜 시간 동안 다시 평가하며 토의한 끝에 지연, 조희진의 작품을 당선작으로 내기로 하였다.
김욱의 작품은 시적 구성이 원만했고 의미를 재현해내는 시적 표현의 유연함이 탁월하다는 평가가 있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시적의미를 구현하는 심도가 약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또한 황선주의 작품은 시적 기교가 탁월하다는 평가가 있었지만 시적의미를 명징하게 드러내주는 측면이 아쉽다는 지적이 있었다. 비록 당선작에는 들지 못했지만 이들의 시적 내공이 만만치 않은 것으로 보여 앞으로의 기대를 갖게 하였다.
최종적으로 지연의 작품 「여뀌꽃이 걸어오는 시간」 외 4편과 조희진의 작품 「투영화법(投影畵法)」 외 4편을 당선작으로 뽑았다. 지연의 작품 「여뀌꽃이 걸어오는 시간」에서는 슬픔을 슬픔의 의미에만 가두지 않고 여성성과 모성으로 심화시켜 잘 녹여내 형상화한 특징이 빼어나 보였다. 다른 작품들 속에서도 이러한 심미적인 측면을 잘 드러내주는 형상성을 잘 갖췄다는 측면에서 당선작으로 뽑는 데 망설임이 없게 하였다. 조희진의 작품 「투영화법(投影畵法)」에서는 화자가 처해진 현실 속에서의 결핍과 초조함이 선명하게 잘 드러나고 있었다. 또한 그것이 비추는 현상이 우리 삶의 비극적인 측면을 반추하게 하는 기운을 갖고 있었다. 다른 작품들 속에서도 사물이나 현상을 관조하면서 역설적으로 드러내는 삶의 미학을 특징적으로 잘 형상화했다는 점이 두드러져 당선작으로 선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들의 작품이 흡족하기보다는 앞으로 펼칠 활약상에 기대를 거는 심정이 더 크다. 더욱 정진해서 이후에 더 ‘좋은 시’를 쓰는 시인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심사위원 : 김광기(글) 박남희 나금숙 이영식
—《시산맥》2013년 겨울호
2014 부산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_ 뱀을 아세요 / 윤석호
뱀을 아세요
윤석호
뱀이 왜 기어 다니는지 아세요
불안하기 때문이래요
손발 없이 귀머거리로 사는 동물은 또 없거든요
독이라도 품어야 살 수 있지 않겠어요
얼마나 불안했으면 혀가 다 갈라졌겠어요
남의 땅에 사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혹시 은인을 찔러 죽인 전갈 이야기 들어 보셨어요
본능을 장전하면 갈기고 싶어지죠
본능은 의지보다 늘 앞서니까요
하지만 본능보다 앞에 불안이란 게 있어요
그래서 가장 위험한 것들은 불안해하는 것들이래요
독을 품은 것들은 기억력이 없어요
어느 한구석 오목한 데가 없기도 하지만
사실은, 뒷걸음질 칠 수 있는 담력이 없어서래요
이방異邦의 밑바닥에 몸을 대고 살다 보면
굳이 시간을 되새기고 싶지는 않을 거예요
간혹, 숨 막히게 달 밝은 밤이 있잖아요
그런 날이면 통째 삼킨 먹이를 삭히며
똬리를 틀어요 철이 든 거지요
저도 한번 쭉 뻗고 살고 싶겠지요
하지만 마음 놓치면 독을 품긴 힘들어져요
무딘 칼은 피차 고통이거든요
번질거리던 각질의 모서리가 굵게 갈라져
살을 후비며 파고든 어느 밤
제 살갗을 찢어 벗겨 내며 뿌리치고,
쉼 없이 날름거리며 생을 지켜 냈어요
이런 아침은 늘 뻐근해요
눈꺼풀 없이 잔 눅눅한 잠을 말려야
또 하루를 살아갈 수 있거든요
하늘에서 가장 먼 쪽으로 붙어 다니지만
햇살의 따스함을 알고 있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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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고립된 상황서 신기루 같은 가능성 확인"
고민하고 한 선택이라도 그 고민이 결과에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 선택은 그냥 입장권이었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았다. 삶의 맨 가장자리에 서면 무모함 외에 달리 길이 없다. 그러나 뜻밖에도 그 길 안에 아름다움이 있었다는 것을 한참 후에 알게 되었다. 나에게 이민이 그랬고, 시를 쓴다는 것이 그랬다.
총을 들고 훈련할 때보다 휴가를 나와 거리 한복판에 군복을 입고 섰을 때 나는 내가 군인인 줄 알았었다. 이민 오고 한참 만에 고국을 방문했을 때 비로소 나는 내가 이도 저도 아닌 이민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칼로 모래를 벨 수 없다. 저항하지 않기 때문이다. 적대적이지 않는, 때로는 친절하고 이해심까지 갖춘 상대를 무모함이라는 칼로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한밤에 걸려온 낯선 전화에(한국과의 시차 때문에) 당황해서 생각되지도 않은 말들이 입을 나서 수화기로 흘러 들어갔다. 그리고 침묵의 며칠, 희망을 놓아야만 하는 경계쯤에서 한 통의 이메일을 받았다. 글을 쓰겠다는 똥고집 하나밖에 없는 사람에게 신춘문예는 신기루다 못해 신앙이다. 낯선 땅에 고립된 상황에서 가능성을 따져 접근하려는 것은 어쩌면 불경스럽다.
지난 몇 년 동안, 새해 첫날 각 신문사의 당선된 시를 읽으며 '당선되지 못한 소감'을 안으로 삭히는 데 익숙한 나에게 '당선소감'은 참 어색하다. 아버지께, 나의 무모함을 함께한 가족에게, 이런 자리를 마련해 준 분께 그리고 심사하신 분께 감사드린다.
▲ 윤석호 / 1964년 부산 출생. 부산대 기계공학과 졸업. 현 미국 시애틀 거주. 미주 중앙 신인문학상 시 부문 당선(2011년)
[심사평] "현대적 인간 존재의 외로움 참신하게 표현"
올해에는 유난히 투고작이 많았다. 심사위원들의 논의를 거쳐 최종심에 오른 작품은 시 부분에서 '귀' '물을 향해 걷는 나무 곁에서' '손을 부수다' '뱀을 아세요', 시조 부문에서 '별이 빛나는 밤에' '눈 오는 밤, 프란츠 카프카' 등 모두 6편이다. 시·시조 두 장르에서 당선작 1편을 뽑아야 하는 만큼 심사위원들의 고뇌가 컸지만, 작품의 수준을 제1의 원칙으로 한다는 기준이 있었기에 당선작을 결정하는 데엔 큰 무리가 없었다.
시 '귀'는 실험적이면서도 언어의 미와 사유의 깊이가 잘 살아나고 있었지만, 너무 소품이라는 점이 한계로 지적됐다. '물을 향해 걷는 나무 곁에서'는 표현도 참신하고 주제도 서정적이라 가작이지만, 표현의 묘미에 너무 치중한 감이 있다. '손을 부수다'는 존재의 본질적 슬픔을 여러 기발한 표현을 통해 잘 살려 내고 있었지만, 시의 내용이 관념으로 흐르는 점이 지적됐다. 시조 부문에서 '별이 빛나는 밤에'는 시조의 형식미와 서정의 깊이를 확보하고 있지만, 그 내용이 너무 전통적 정서라는 점이 한계로 지적됐다. 이에 비해 '눈 오는 밤, 프란츠 카프카'는 시조의 형식미를 현대적으로 살려 내고 있을 뿐 아니라 내용도 동시대 사람들이 겪고 있는 소외의 문제를 연시조로 그려 내고 있어 주목을 끌었지만, 당선작과 최종 경합에서 아쉽게도 2위로 낙착됐다. 그리하여 당선작은 '뱀을 아세요'로 결정했다.
'뱀을 아세요'는 뱀이라는 존재의 특성을 통해 현대적 인간존재의 외로움과 그 지향을 참신한 표현과 깊은 사유로 살려 내고 있어 높은 수준을 보여 주었다. 일로매진하여 한국문단의 큰 별이 되기를 기원한다.
심사위원 : 강은교·이우걸·김경복
2014 문화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_ 반가사유상 / 최찬상
반가사유상
최찬상
면벽한 자세만
철로 남기고
그는 어디 가고 없다
어떤 것은 자세만으로도
생각이므로
그는 그 안에 있어도 없어도 그만이겠다
한 자세로
녹이 슬었으므로
천 갈래 만 갈래로 흘러내린 생각이
이제, 어디 가닿는 데가 없어도
반짝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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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詩語 함께하던 길 끝에서 설렘·두려움 만나
최찬상
당선 전화를 받는 순간 잠시 휘청거렸습니다. 가슴속 한 장소에서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동안 나의 길잡이가 되어 준 수많은 시들이 까맣게 지워진 나의 정수리 위에서 반짝입니다. 짧은 길을 두고 먼 길을 돌아오는 길. 닳아버린 신발 밑창에서 해가 지고 어둠 속에서 말들이 바스락거립니다. 한밤, 피곤에 지친 말들을 보듬고 위로하며 또 신발 밑창에서 빨갛게 해가 뜨기를 기다립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오솔길이 있음을 압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하나씩의 모퉁이입니다. 이제 저도 그 오솔길을 출발할 채비가 되었습니다. 스스로 빛나지 않는 모래 알갱이 같은 제 시를 앞자리에 놓아 주신 황동규, 정호승 선생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김기택, 조은 예심위원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제 시의 첫 장을 펼쳐 준 문화일보에 감사드립니다. 저보다 더 외진 사각지대에, 겨울밤 아궁이에서 갓 구워낸 따뜻한 말들이, 가 닿을 수 있도록 정진하겠습니다.
‘시’라는 이름으로 고통을 준 사랑하는 가족 인숙, 준영, 준하에게 용서를 빌며, 부모님의 부재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추운 겨울 제가 지피는 작은 불씨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안부를 묻습니다. 얼어붙은 하늘을 횡단하는, 강철의 날개들을 동경하며…….
▲ 1960년 경북 칠곡 출생
▲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심사평】상투성 과감하게 벗어나… 힘의 낭비 없이 짜여져
신춘문예 당선시에 어떤 유형이 있다고 여겨져 가능한 한 그 유형에서 벗어난 작품을 선택하자는 데에 의견이 모아졌다. 김고유의 ‘마음론’, 박민서의 ‘구유’, 김미선의 ‘고요한 천둥’, 최찬상의 ‘반가사유상’ 등이 그런 관점에서 최종심에 올랐다.
‘마음론’은 인간의 마음을 ‘한 번도 보지 못한 짐승’에 비유한 점이 신선했으나 ‘순백의 언어가 차갑게 빛난다’ 등의 구태의연한 표현들이 그 신선함을 떨어뜨렸다.
‘구유’는 왜 굳이 산문 형식으로 써야 했을까 하는 질문을 던져 주었으며, 이는 한국현대시의 어떤 유형의 유행에 의존한 것이라고 여겨졌다.
‘고요한 천둥’은 일상에서 들을 수 있는 소리의 다양한 의미를 다각도로 추구한 작품이었다. 그러나 이 작품 역시 군더더기가 많았다. ‘이제 당신은 처음의 고요다’ 이후 마지막 두 연은 삭제하는 게 시의 완결성을 위해서는 오히려 더 나았다.
당선작 ‘반가사유상’은 신춘문예 시의 상투성을 과감하게 벗어난 작품이어서 눈에 띄었다. ‘반가사유’라는 관념과 추상을 ‘반가사유상’으로 구체화하는 데 성공했다. 전체적으로 잘 짜여 있음으로써 힘의 낭비가 없었다. 둘째 연 ‘어떤 것은 자세만으로도/ 생각이므로/ 그는 그 안에 있어도 없어도 그만이겠다’는 이 시의 백미다. 외면의 형상을 통해 존재의 내면에 대한 구도적 성찰이 돋보인다.
〈논어〉에 나오는 ‘회사후소(繪事後素)’ ‘본질이 있은 연후에 꾸밈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를 깊게 생각하게 해주는 시다. 시는 인간을 이해하게 하는 부분이 있으므로 당선자는 더욱 인간을 이해하게 할 수 있는 시를 열심히 써주길 바란다.
심사위원 황동규·정호승
2014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_ 발레리나 / 최현우
발레리나
최현우
부슬비는 계절이 체중을 줄인 흔적이다
비가 온다, 길바닥을 보고 알았다
당신의 발목을 보고 알았다
부서지고 있었다
사람이 넘어졌다 일어나는 몸짓이 처음 춤이라 불렸고
바람을 따라한 모양새였다
날씨는 가벼워지고 싶을 때 슬쩍 발목을 내민다
당신도 몰래 발 내밀고 잔다
이불 바깥으로 나가고 싶은 듯이
길이 반짝거리고 있다
아침에 보니 당신의 맨발이 반짝거린다
간밤에 어딘가 걸어간 것 같은데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돌았다고 한다
맨발로 춤을 췄다고 한다
발롱*! 더 높게 발롱!
한 번의 착지를 위해 수많은 추락을!
당신이 자꾸만 가여워지고 있다
———
*발레의 점프 동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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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눈이 내렸다… 오늘은 암호를 해독할 수 있을 것 같다"
최현우
이미 랭보가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겠느냐'고 말했다. 아팠다고, 외로웠다고 자랑할 수 없을 것 같다. 특히 시를 앓는 사람들이 다 아프고 외로워서 혼자 특별하게 피 흘린 척할 수가 없다.
시와 현실의 압력 차이로 사람이 펑 하고 터져버릴 수도 있겠구나 하며, 희망과 절망을 양 겨드랑이에 한쪽씩 목발 삼고 걸었다. 편한 쪽으로 기대려다가 자꾸 넘어졌다. 주저앉는 곳은 어디나 골목이 되었다. 그 담벼락에 실컷 낙서나 하다, 침도 뱉다가, 날아다니는 나방을 세어보기도 하다가, 다시 일어나려고 할 때 희망과 절망에 같은 힘을 주어야 한다는 걸 알았다. 십원짜리 동전을 세우는 일 같았다. 그러니까 아주 가끔씩만, 나는 희망도 절망도 아닐 수 있었다.
김혜순·송찬호 두 심사위원께서 호명해주셨다. 스무 살 때 허연 시인이 영혼에 열병을 심어주셨다. 불치병이 되었다. 박찬일 교수님과 김다은·윤호병 교수님께 목구멍의 생선가시처럼 걸려 있지 않아도 돼서 다행이다. 이형우 교수님과 많은 술잔을 기울였고, 임경섭 선생님과 거짓말처럼 한 약속이 있다. 지킬 수 있게 되었다. 추계 학우들의 축하 때문에 가슴이 아플 지경이었고, 부모님께 아직도 반찬 투정하는 아들이고, 내게 미현은 여전히 반짝거린다.
간밤에는 목발을 잠시 내려놓고 주저앉아 길게 자란 발톱들을 깎았다. 날이 밝았다. 이곳에 눈이 내렸다. 그 위로 누군가 모스부호처럼 흘린 발자국, 오늘은 해독할 수 있을 것만 같다.
▲1989년 서울 출생
▲추계예술대 문창과 4학년 재학 중
[심사평] 발뒤꿈치 들고 도약을 시인이여, 더 높게 발롱(점프)!
매일 홍수처럼 쏟아지는 광고의 말과 현란한 드라마 대사 속에서 시가 나아갈 길은 더욱 분명해 보인다. 꽃·별·구름·사랑과 이별, 버려진 구두 한 짝, 창문의 덜컹거림, 전화기 속의 흐느낌… 등을 질료 삼아 늘 그래 왔듯 묵묵히 시를 쓰는 것. 황지우 시인은 "시란 금방 부서지기 쉬운 질그릇인데도, 우리는 그것으로 무엇인가를 떠 마신다"고 하였다. 갑갑한 소화불량의 사회에서 시는 더욱 예민해졌고 더욱 갈급한 형식이 되었다.
이번 본심에 오른 작품 중에서 송민규의 '곰팡이로 만드는 바람소리'外, 조창규의 '불안한 상속'外, 서문정숙의 '시간여행자들'外, 최현우의 '발레리나'外를 주목해 읽었다. 위 응모작들은 대체로 어느 정도 수준의 기량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좀 더 들여다보면 새로운 시인으로서 외침은 있되 아직 그 울림이 뚜렷하지 않고 자기만의 웅얼거림에 갇혀 있는 듯했다.
고심 끝에 최현우씨의 '발레리나'를 당선작으로 뽑았다. '발레리나'는 '한 번의 착지를 위해' 거듭 삶을 연습해야 하는 발레리나의 내면을 잘 그려내고 있다. 특히 시에서 계절로부터 '부슬비'의 가는 발목을 발견하거나 바람으로부터 '사람이 넘어졌다 일어나는' 원시의 무용을 발견하는 응시의 시선이 돋보인다. 발레는 발뒤꿈치를 들고 돌거나 도약과 착지를 거듭해야 하는 고된 춤이다. 시도 이와 다를 게 무어랴. 당선자는 오래 습작기의 열정을 내려놓지 말기 바란다. 새로운 시인에게 시가 발롱! 더 높게 발롱!
심사위원 : 김혜순, 송찬호
2014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_ 알 / 박세미
알
박세미
처음부터 거기 있었는지 모른다
지나가던 개가 아무렇게나 싸놓은 똥처럼
거기엔 무단 투기 금지라고 쓰여 있었는데
나는 당당했지
버려진 적 없으니까
어느 날 거기 옆에 쪼그려 앉아 말했다
누가 널 낳았니
이름이 없어 좋겠다
털이 있다는 건 위험한 일이지
정체가 발각되는 것이니까
집을 나오는 길
두 발이 섞이는 것 같았다 그 다음엔 얼굴과
머리카락이 엉키고
몸의 구분이 모호해질수록
흩어져 있던 영혼의 조각들이 뭉쳐질수록
나는 아무렇게나 던져진 쓰레기로 완성되었다
처음부터 거기 있었는지 모른다
아무도 내 정체를 모르고
아무도 나를 분류하지 않는 곳
껍질을 깨고 안으로 들어간다
자, 이제 신앙에 대해 말할 수 있지
바깥에게 무례하게 구는 것
한 가지 이름으로 불리는 것
욕조 안으로 들어가면
반쯤 잠기는 몸
최초의 기분은 여기에 있지
출렁인다
다리 하나가 기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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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 소감]
손에 쥔 알… 깨지든 태어나든 마주하겠습니다
나는 어떤 시간들을 놓칩니다. 어쩌면, 놓습니다. 당선 통보를 받던 순간에도 주저앉아 울거나 소리라도 시원하게 질러 볼 타이밍을 보내 버렸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은 꼭 남아 있습니다. 금방 터질 것 같은데, 아직 터지지 않았습니다. 그런 것들을 끌어안은 채 나는 시를 만납니다.
그녀들의 언어와 인격은 겹쳐지며 반짝입니다. 너무나 눈부신 나의 김행숙 선생님과 이원 선생님.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문드러진 나의 스무 살, 뼈를 심어 주셨던 우성환 목사님. 늘 그립다는 말을 이제 전합니다. 나의 가족. 박종주, 홍미숙, 박대인. 가장 뜨거운 세 개의 이름. 그리고 다정하게 내 이름을 발음해 주는 사람들. 나는 당신들이라는 숲에서 크게 숨을 쉽니다.
시나락 아이들. 우리 오랫동안 함께 걷자.
미숙한 목소리에 귀 기울여 주신 황현산 선생님, 나희덕 선생님 감사합니다. 조심스럽게 알 하나를 손에 쥡니다. 깨지든, 태어나든. 어떤 것이라도 마주하겠습니다.
▲ 박세미 / 1987년 서울 출생. 강남대 건축공학과 졸업 .
[ 심사평 ]
세계를 향한 끝없는 질문과 대화의 자세 돋보여
본심에 올라온 10명의 작품은 예심위원들의 젊은 안목 덕분에 정형화된 신춘문예 스타일과는 다른 개성적인 목소리가 많았다. 그래서 우리의 심사는 한 편의 ‘잘 빚어진 항아리’를 선택하기보다는 세계에 대한 ‘개성적 독법과 화법’을 찾아내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여러 번 읽는 과정에서 수사적인 표현에만 의존한 시, 지나치게 관념적인 시, 낯익은 발상에 머물러 있는 시 등이 우선 떨어져 나갔다. 그렇게 해서 마지막으로 남겨진 것은 박세미, 김잔디, 이현우의 작품이었다.
김잔디의 시는 이미지를 조형해 내는 솜씨가 섬세하고 감각적이라는 점에서 호감이 갔다. “풍경을 의심하는 초식동물의 눈은 까맣다”라든가 “우유곽 바닥을 훑는 빨대 소리에 놀라 수목은 뿌리를 내리고” 등 매력적인 구절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행과 이미지들이 파편적인 아름다움을 넘어 뚜렷한 구심을 형성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다.
이현우의 시는 상상력이 활달하고 다양한 소재를 유니크하게 소화해 낸다는 점에서 범상치 않은 역량을 갖추고 있다고 여겨졌다. 실러캔스, 달의 착란, 손금의 태계, 프로토아비스…. 그는 무엇이든 시로 만들 수 있지만 어떤 시에도 자신을 전폭적으로 걸지는 않는 것 같다. 이 소재주의적 경향이 그의 유창함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망설이게 했다.
박세미의 시는 간결한 언어를 통해 시간과 공간을 증폭시켜 내는 특유의 에너지를 지니고 있다. 비극적 인식을 경쾌한 어조로 노래하는 그는 시적 대상의 슬픔과 고통을 진부하지 않은 방식으로 끌어안는다. 당선작인 ‘알’에서도 버려진 존재들에 대한 상투적 연민이 아니라 “껍질을 깨고 안으로 들어”가는 방식으로 새로운 난생설화를 탄생시킨다. 화자의 교체나 장면의 전환을 자연스럽게 구사하고, 행과 연을 조율하는 능력도 뛰어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는 세계를 향해, 바깥을 향해, 끝없이 질문하고 대화한다. 그 질문과 대화의 자세로 오랫동안 좋은 시를 쓸 것이라 믿고, 또한 지켜볼 것이다.
심사위원 : 나희덕(시인), 황현산(문학평론가
2014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_ 갈라진 교육 / 심지현
갈라진 교육
심지현
오빠 내가 화장실 가다가 들었거든, 내일 아줌마가 우릴 갖다 버릴 거래. 그 전에 아줌마를 찢어발기자. 우리가 죽인 토끼들 옆에 무덤 정도는 만들어 줄 생각이야. 토끼 무덤을 예쁘게 만들어 주는 건 오빠의 즐거움이잖아. 아줌마는 가슴이 크니까 그건 따로 잘라서 넣어야겠다. 그년의 욕심만큼 쓸데없이 큰 젖. 여긴 아줌마가 오기 전부터 우리 집이었어, 난 절대 쫓겨나지 않을 거야.
너 시들지 않는 새엄마를 시기하고 있구나. 아버지가 무능해서 고생하는 예쁜 나의 새엄마. 그녀가 나를 버려도 괜찮아. 개처럼 기어가서 굶겠다고 말하면 그만인걸. 그게 안 먹히면 그녀의 가슴을 빨고 엄마라고 부르면 되지. 잠 설치는 아이를 달래는 척 밤마다 날 찾을지도 몰라. 자꾸 커지는 나를 본다면 오히려 그녀는 아이가 되겠지. 아, 못생긴 엄마가 떠나면서 주고 간 선물. 예쁜 우리 새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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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읽히는 것만으로도 영광…더 좋은 글 향해 정진”
버려야 채워지는 것이 있어요. 허공에 잠긴 밤들을 살았지요. 학교에서는 글을 썼고, 그렇지 않은 시간엔 질투를 했어요. 저를 글 쓰게 하는 사건들이 올해 참 많았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짓말처럼 진심을 쓸게요.
폭탄이 터졌는데 어쩐 일로 기쁘대요? 어머니, 아버지. 조금 다른 걱정들을 하기로 해요. 바르게 걸을 수 있는 계기이자 감동인 현우에게 아픔이 다신 없기를.
김수복 선생님, 박덕규 선생님, 강상대 선생님, 최수웅 선생님. 매일 되새길 수 있는 배움들이 있어요. 위태롭던 제 글에 바닥을 그려주신 이덕규 선생님 감사해요. 새봄맞이, 그 처음을 가르쳐주신 이시영 선생님, 그 시간들로 글을 썼어요.
다 지난 4년 전이 여태껏 벅찬 이유, 문과 임, 박, 김, 조. 그립지 마요. 든든한 재롱받이 요섭 선배와 기호 선배, 동우. 아름다운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시누리. 우리에겐 무엇이라도 괜찮을 논쟁이 있어 즐거워요. 단단하나 날카로운, 성규는 내 성장의 원동력. 우리 서로의 부러움을 자랑하도록 해요. 내가 먼저 말할게요, 그대의 가슴!읽히는 것만으로도 영광임이 분명해요. 감사해요. 김사인 선생님, 황현산 선생님. 아무리 잘해도 부족한 보답이겠지만 더 좋은 글을 보일 수 있도록 정진할게요.
△1990년 경남 김해생 △단국대 문예창작학과 4학년 재학 중
[심사평] “불편·설렘 동시에 안겨주는 당당함…생생하다”
본심에 넘어온 10인(장혜령·김영미·서진배·서명옥·이현우·김묘숙·박승렬·이호준·엄기수·심지현)의 후보작들을 검토하며, 오늘의 삶과 의식이 처한 현실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다시 확인했다. 후보작들 다수가 그 음울과 살풍경을 막막하게 앓고 있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그 고통의 복판을 피해갈 시의 길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을.
시는 ‘참말’을 하려 한다. 담긴 메시지가 논리적·도덕적으로 맞다거나 합당하다는 뜻이 아니다. 태초 이래 무수한 사람들이 살고 갔지만, 그럼에도 모두의 생이 진부하기는커녕 매순간 새롭고 아프고 기막힌 것이며, 누구에 의해 대신될 수 없는 것이라는 의미에서의 참이다. 그때 ‘참말’은, 설사 낯익은 메시지를 싣고 있는 듯 보일지라도 반드시 새롭고 절실하다. ‘참말’은 또한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 습성화된 느낌과 생각과 말의 회로로부터 우리를 흔들어 깨우기 때문이다. 그러한 참말의 힘은 겉을 꾸며 흉내낼 수 없다. 오직 온몸을 던진 낮은 포복을 거쳐 이루어질 뿐이다.
신춘문예가 일부 문학 지망생들의 잔치를 넘어, 전 한국어 사용자들의 공동 관심사이며 그래야 마땅한 것은 무슨 까닭인가. 우리의 기꺼움과 설움과 고뇌를, 우리의 아름다움과 매혹과 깊이를, 나아가 우리의 공포와 분노, 우리의 파렴치와 비열함까지를 우리 자신보다 더 예민하게 앓고 노래해줄 새 소리꾼, 새 만신, 새 예언자를 기대하는 사회적 형식이기 때문이다.
재독을 거쳐 우리는 이호준·엄기수·심지현 3인으로 일단 후보를 압축했다.
이호준의 감각과 솜씨는 훌륭한 것이었다. 그의 매력적인 언어들은, 필요하다면 신선함조차 연출할 수 있을 만큼 잘 다듬어진 것이었다. 그러나 그 노련함과 자신감의 과잉이 오히려 시적 모험의 기개와 순결성을 손상하기도 한다는 것을 지적해 둔다.
엄기수도 이미 능숙한 시인이었다. ‘이끼소녀’ 등의 시편들이 보여주는 바 비애를 갈무리해 내는 낮은 톤의 목소리는 오랜 습작의 내공을 엿볼 수 있게 했다. 그러나 그의 어투와 시적 조형방식에는 선배 시인들을 떠올리게 하는 낯익음이 없지 않았고, 시들이 좀 더 다채로울 필요도 있을 것이다.
심지현의 당돌함 앞에서 우리는 불편한 동시에 설렜다. 독자들도 그러할 것이다. 그의 시들은 어딘가 불균형한 듯하지만 그것을 상쇄하고도 남는 새롭고 생생한 발화로서의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정면으로 감당하기 쉽지 않을 삶과 세계의 잔혹과 비극성을 그는 피하지 않았다. 슬픔과 상처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그의 언어들은 감상에 떨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노련과 안정감보다 심지현의 이 용기와 젊은 당당함 쪽을 선택했다. 세상의 고통과 환희를 자신의 것으로 깊이 앓는 좋은 시인이 되기를 빈다.
심사위원 : 황현산, 김사인
2014 세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_ 주방장은 쓴다 / 이영재
주방장은 쓴다
이영재
눈은 이미 내렸다 새가 날아온다 그리고 새는 날아간다 이곳에서 시가 시작되는 건 아니다
세상엔 먹을 것이 참 없다 먹는 것이 얼마나 괴로웠으면 사람들은 맛있는 음식을 만들 생각까지 했을까
허기가 시보다 나은 점이라면 녀석은 문을 두드릴 줄 안다는 것 요리는 곧 완성 된다 완성되기 전에 이 깨끗한 접시를 쓰레기통으로 던질 수 있을까
내 몸에겐 건강한 학대가 필요하고, 다행히 이곳은 학대에 매우 알맞다 떠나는 새조차 둥지를 훌륭하게 지을 줄 안다
시를 포기하고 시인이 된다는 건 멋진 일이다 더 멋진 건, 죽어서 시인이 되는 일
거짓이다 누구도 시인이 될 수 없고 되어선 안 된다 담배를 문 주방장만이 오래도록 써왔을 뿐이다
휘파람이 휘파람을 불 생각이 없듯 우체통은 붉을 필요가 없다 다행히 라면집은 가끔만 문을 연다
요리는 완성될 필요가 없다 이 깨끗한 접시를 온전하게 버리기 위해
철새가 돌아올 둥지를 삶아 먹고 이사를 할 것이다 겨울과 더 가까운 곳에 주방을 열고 문을 닫을 것이다 어디서든, 시작하지 않기 위해
거짓인 명제가 가득한 접시 위에만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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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하고 괴로워하며 ‘삶’을 쓰겠다
당선 소감 - 이영재
무엇보다, 아주 조금 운이 좋았습니다.
감사의 말을 전하는 게 먼저인 것 같습니다. 부모님. 생각만 해도 늘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계속 시를 쓰게 된다는 것, 사실 앞으로도 그 죄송한 마음을 계속 이어가야 한다는 것에 더욱 죄송합니다. 사랑합니다.
선생님들. 김혜순 선생님, 채호기 선생님, 이광호 선생님. 전해주셨던 말씀들이 저를 지금껏 견디게 해주었던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서울예대에서 배움을 주셨던 수많은 선생님들, 모두 감사합니다.
부족한 시를 뽑아주신 심사위원 분들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존재만으로도 위로가 되어주었던 나의 친구들. 효준, 준섭, 상우. 고맙다. 이름을 적지 못한 수많은 친구들도. 윤동주, 백석, 이상, 김춘수, 김수영. 이 시인들의 이름을 적어보고 싶었습니다.
며칠 동안 수상소감에 적을 말을 생각해 봤는데 도통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시에 대해서 말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이미 시는 제게서 분리된 것 같습니다. 이제 시는, 시의 몫입니다.
사는 얘기를 하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늦은 졸업입니다. 주말마다 열두 시간씩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고 곧 서른이 됩니다.
신춘문예 당선을 하긴 했지만 이력서는 꽤 많이 써야 할 것 같습니다. 서울의 월세방은 비싸고, 라면은 더는 먹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사회의 속도에 뒤처지고 있다는 좌절감은 도통 익숙해지지 않습니다. 이쪽의 뉴스와 저쪽의 뉴스를 매일 보려고 노력합니다.
누군가는 살아있지만 이미 살아있는 상태가 아닌 것 같습니다. 거리의 찬 바닥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사진으로만 접합니다. 혼자 있을 때도 웃어보려고 노력합니다. 그럼에도 거울 속 얼굴은 그다지 안녕해 보이지 않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남들만큼 고민하고 괴로워하고 슬퍼하는 일뿐인 것 같습니다.
예술과 정치에 대해 오래 생각하겠습니다. 우선 주어진 대로, 써 나가겠습니다.
■ 이영재 ▲1986년 충북 음성 출생 ▲서울예술대학 졸업
기발한 詩想·세련된 언어감각 지녀
심사평 - 김사인·최승호
올해도 900명이 넘는 예비시인들이 응모해 주셨다. 현실적 보상이 따르기 어려운 이분들의 고독한 헌신에 한국문학은 크게 힘입고 있다. 그 아름다움을 일일이 기려야 하겠지만, 차라리 아쉬운 점을 몇 가지 적시하는 것으로 상투적 덕담에 대신하려 한다.
우선 긴장이 떨어지는 설명조의 사설이 적지 않았다. 이것은 장황한 관형어구의 습관적 사용과 무관하지 않은데, 그것으로는 산문과 구별되어 마땅한 시적 촌철살인을 구현하기 어렵다. 두 번째로, 언어 일반에 대한 자각, 모국어에 대한 자의식이 부족하게 느껴졌다는 점이다. 젊은 세대로 갈수록 생활언어의 많은 부분이 ‘국영문 혼용체’로 재편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이것은 구미 중심의 가속적인 세계화 추세가 가져온 불가피한 결과일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욱, 누구보다 언어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시인들은 모국어의 쓰디쓴 현실에 좀더 깨어 있어야 마땅하다. 이것은 편협한 외래어배척운동을 다시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해요’ ‘∼이에요’ 투의 어미가 유행처럼 많았다는 점도 지적하고자 한다. 여성스러운 경어체 입말의 실감이라는 특수 효과가 없지 않지만, 이것은 시를 주관화, 연성화하고 자칫 시를 사적 독백 쪽으로 끌고 가는 역기능을 수행하기도 하는 듯하다. 역시 자각과 절제 속에서 제한적으로 구사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요컨대, 작위적으로 시를 꾸려가고 있거나 낡은 시적 투식을 답습하는 투고작들 대부분에서 그러한 문제들이 발견되는데, 그것은 ‘시작에 임하는 태세의 안이함’이라는 한마디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검토를 거쳐 김동환 민현 이영재로 범위를 좁힌 다음 재독에 들어갔다. 서민적 삶의 그늘을 침착한 시선으로 포착하고 있는 김동환의 시들은 고르고 품위가 있었다. 반면, 시적 긴박감이 부족한 느낌과, 안정적인 대신 선도가 떨어지는 비유와 이미지들이 지적되었다. 민현의 시들은 일견 낯익은 듯했지만, 절실함이 그 내부를 채우고 있는 ‘간곡’ ‘아이가 자는 방’ 등은 아름다웠다. 어투의 기시감을 극복한다면 그는 더 높은 시적 성취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이영재는 언어에 대해 좀더 민첩하고 세련된 감각을 지니고 있었으며, 그것은 존재의 미세한 기척들에 대한 민감함과 결부된 것이었다. 빠른 리듬은 독특하고 매력적이었으며, 좋은 발상과 표현이 신인으로 손색없었다. 그를 당선자로 합의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다만 언어의 운용에 깊이와 신중함이 더해지기를 당부하는 우리의 노파심을 기억해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