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
모닥불 새끼오리도 헌신짝도 소똥도 갓신창도 개니빠니도 너울쪽도 짚검불도 가랑잎도 머리카락도 헝겊 조각도 막대꼬치도 기왓장도 닭의 깃도 개터럭도 타는 모닥불 재당도 초시도 문장(門長)도 늙은이도 더부살이 아이도 새사위도 갓사둔도 나그네도 주인도 할아버지도 손자도 붓장사도 땜쟁이도 큰개도 강아지도 모두 모닥불을 쪼인다 모닥불은 어려서 우리 할아버지가 어미아비 없는 서러운 아이로 불상하니도 몽둥발이가 된 슬픈 역사가 있다 /////////////////////////////////////////////////////////////////////////////////////////////////
* 갓신창 : 부서진 갓에서 나온, 말총으로 된 질긴 끈 개니빠니 : 개의 이빨 재당 : 서당의 주인 초시 : 초시에 합격한 사람 혹은 늙은 양반 문장 : 문중의 가장 어른 갓사둔 : 새사돈 몽둥발이 : 손발이 불에 타버려 몸뚱아리만 남은 상태의 물건 * 김형준 /감상 평 1. 감상 처음 이 시를 읽고 몇 가지 이유 때문에 강한 충격을 받았었다.
1연과 2연에서 의도적으로 ‘도... 도... 도...’로 끊임없이 이어지면서도 할 말 다하고, 시로서도 결코 부족함 없이 완결성을 이루고 있는 점과 결코 동시가 아닌데도 동시처럼 읽혀지기도 하고, 한편의 동화처럼 느껴지기도 하면서도, 어른이 읽기에도 부족함 없는 이 시를 읽고 강한 충격을 받은 기억이 새롭다. 그리고, 좀 더 세월이 흐른 후에는 ‘찢어지게 궁핍했던’ 우리 선조들의 생활상이 떠올라 눈시울을 붉히게 되었다. 그것은 3연 때문이었다. 만일, 이 시가 2연에서 끝났다면 나는 동시로도 읽고 이 시의 재미난 음률에 즐거워만 했을 것이다. 그런데, 3연에서 시인은 모닥불에 어린 아이가 손발이 모두 불에 타버려 몸뚱아리만 남은 ‘슬픈 역사가 있다’고 끝을 맺는다. ‘전설도 아닌 역사’가.
그래서 이 시는 3연이 없다면 그저 재미난 동시 정도에서 끝났을 것이 자명하다. 이처럼, 백석은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의 사람들과 자연과 풍물들을 자세히 관찰해서 ‘철저하게 사실적인 묘사’를 통하여 기록으로 남겼다. 그것도, 내 나라 모국어로써 가장 아름답고 서정적으로 남긴 것이다. 그러한 점들이 내가 백석을 천재라고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새끼 조각도 끈 떨어진 짚신도, 쇠똥도, 신발 밑바닥도, 개 이빨도, 머리카락도, 넝마도, 나무 막대기도, 기왓장 조각도, 닭털도, 개털도 다 태우는 모닥불’은 땔감이 없어서였다. 궁핍한 농가의 구석구석을 다 찾아내어 쓸어 모은 것이다. 그러하니, ‘서당 주인으로부터 마을에 있던 모든 사람들뿐만 아니라 개들까지도’ 모두 모여 모닥불가로 모여드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이 1990년대 들어와서 북한에서 재현되었다. 당시 북한 전역은 극심한 가뭄과 굶주림이 창궐했었다. 거리에는 부랑자가 넘쳐나고 경제적인 이유로 가정이 붕괴되고 마을이 폐허화되는 현상이 벌어진 것이었다. 2. 백석의 아동문학관 백석은 자신이 아끼던 제자이자 아동문학가 강소천에게 늘 이렇게 말했다. “그 나라 말을 오래 보존하는 길은 오직 한 가지, 그 나라 문학을 높은 수준에 올리는 것이다. 또 하나 우리나라 말을 후세에 이어가는 방법은 좋은 아동문학 작품을 남기는 것”이라고.
그러면서, 1956년도 <조선문학> 5월호에 ‘동화 문학의 발전을 위하여’라는 평론에서 “시정(詩情)으로 충일되지 못한 동화는 감동을 주지 못하며, 철학의 일반화가 결여된 동화는 심각한 인상을 남기지 못한다. 이러한 동화는 벌써 문학이 아니다. 동화에 있어서 시정이라 함은 인간과 세계에 대한 감동적 태도이며 철학의 일반화라 함은 곧 심각한 사상의 집약을 말하는 것”이라 주장했다. 이어서, 그해 9월호에서 ‘아동시와 관련하여, 아동 문학의 새 분야와 관련하여’라는 평론에서는 말미에 몇 가지 제안을 한다. “우리 아동 문학에서 풍자 문학 분야를 개척하자”, “아동 문학에서 향토 문학 분야를 개척하자”, “낭만적인 분야를 개척하자”, “구전 문학의 분야를 더욱 개척하자”, 끝으로 “우리 아동 문학 작가들이 높은 문학 정신에 살기를 바란다” 등의 주장을 했다. 지금 생각해도 실로 매우 선진적이고, 진보적인 아동 문학관이라고 생각한다. //////////////////////////////////////////////////////////////////////////////////////////////////////////
<‘모닥불’에 대한 한국과 일본의 평가와 전파>
‘모닥불’은 원래 백석이 1936년 1월에 발간한 시집 <사슴>에 수록된 시이다. 백석이 일본에까지 널리 알려지게 된 시 중 하나는 이 시 <모닥불>이다. 100부 한정판으로 발행된 <사슴>시집을 구할 수 없었던 윤동주는 1937년 8월에 자신이 필사한 <사슴> 시집에서 모닥불을 읽고 끝마디에 붉은 연필로 ‘걸작(傑作)이다’라고 적었다. 1939년 임화는 <현대조선시인선집>을 발간하면서, 조선의 대표적인 시인들을 선정한 후, ‘1인 1편의 원칙’을 세우고 백석의 <모닥불>을 선정하였다. 그의 선정 기준은 서문을 통하여 “예술적인 또는 정신사적인 의미에서”라고 밝혔다. 일본에서 발행되던 유명 잡지 <모던일본> 조선판 1939년 11월호에도 <모닥불>을 일역하여 <분화(焚火)>라는 제목으로 실렸다. 그 잡지에는 조선 시인 3명을 소개했는데, 정지용의 시 <백록담>과 쥬요한의 <봉선화>등이 실렸다. 시의 번역은 당시 일본 동경에서 활동하던 평론가이자 시인 김종한이 했다. 이로써, 백석은 일본에 ‘조선의 3대 시인’으로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당시 일본에서 더 유명했던 평론가 김종한은 1943년도에 자신의 시를 포함하여 한국 시인들의 시를 추려, 일본어로 된 자신의 선(選)시집 <설백집>에도 ‘모닥불’ 등 세 편의 시를 실으면서, “백석 사형(舍兄)의 특이한 샤머니즘은 <머리카락>, <탕약>, <모닥불> 같은 작품에 그의 일류의 섬세한 애정을 배치해가며 묘사를 하고 있다.”고 평했다. 1940년 김소운도 일본에서 <젖빛구름>이라는 일역(日譯) 시집을 내면서 백석 등을 일본에 알렸다. 당시 학생이었던 前 도쿄대 교수 이마미치 도모노부(今道友信) 교수는 이 시집을 보고, 훗날 “백석의 시를 즐겨 읽는 문학청년이 되었다.”고 고백했다. 임학수는 1949년 4월 시집 <시집>을 펴내면서 ‘모닥불’을 비롯하여 백석의 시 세 편을 실었다. 주로 남한의 시인 50여 명의 자선시(自選詩)들을 추려서 발간했는데 여기에 백석도 들어간 것이다. 다만, 당시 발표한지 얼마 되지 않은 백석의 시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이 총 32행의 절반가량인 15행만 실린 것은 크나큰 실수였다. 나중에 따로 소개하겠지만,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南新義州 柳洞 朴時逢方)은 평론가 김현이 ‘한국시의 최고봉’이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은 백석의 절창이다. 1949년 평론가 백철은 <조선신문학사조 현대편>이라는 책을 내면서 “백석이 평북 사투리를 살려서 일특색(一特色)을 만들었다”면서, “백석의 시에서 우리는 눌박한 민속담을 듣고 소박한 시골 풍경화를 보고 구수한 흙냄새를 맡을 수 있다”고 평했다. 다만, 백철은 김종한에 비하여 백석 시에 대하여 깊이있는 평론을 다루지 않았다. 이는 백철뿐만 아니라, 당시 문학 작품을 제대로 읽지 않고 ‘함부로’ 평론을 하는 평론가들의 한계였다.
분단 후 북한에서 백석이 조심스럽게나마 평가되기 시작된 것은 1990년대 이후이다. 김일성이나 사회주의 사상 등 체제 순응하거나 찬양하는 문학 창작을 단호히 거부했던 백석은 남한에서 뿐만 아니라, 북한에서도 소위 ‘왕따’를 당했던 것이다. 북한에서도 내로라하는 문학인들도 역시 백석에 대해 알고는 있었지만 함부로 그에 대하여 거론할 수가 없었다. 남한이나 북한이나 분단체제가 낳은 비극이 아닐 수 없다. 1995년 6월에는 북한의 국문학자 유만이 <조선문학사>에서 “백석은 세태 풍속을 기본으로 노래하면서 민족적 정서를 진하게 체현하고 독특한 시풍을 보여준 시인이다. 시 <모닥불>에 이르기까지 그의 시들은 대체로 하나의 풍속도라 할만치 세태적인 생활감정으로 일관되어 있다”고 평함으로써, 그동안 해방 후 북한에서도 소외되거나 애써 외면해왔던 백석에 대하여 서정시인으로서, 새롭게 평가하기 시작하였다.
만일, 분단에 상관없이 백석의 시를 묶어 놓지 않았더라면, 문학인들 만이 아니라, 진작에 남북한 국민들로부터 백석의 시와 문학 작품들이 대중화되었을 것이고, 한국문학은 더 높은 경지에 오르고 한국어는 진작에 한류바람을 일으켰을 것만 같다.
늙은 갈대의 독백(獨白) / 백석 詩 /신경림의 시 <갈대>- 김형준 감상평 - 감평.합평.심사평.자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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