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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편의 시 베껴 쓰기 /깅인한

법정 2013. 1. 18. 12:46

 

천 편의 시를 베껴 쓰는 의미




   며칠 전 이 카페의 [좋은 시 읽기]에 천 편의 시를 올렸습니다. 여기까지 오는데 카페를 시작하고 5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제 막 시를 쓰기 시작한 분들이라면 읽어보십시오. 시를 쓰기 시작하여 몇 해가 지났으나 정지용, 이용악, 백석, 김관식, 김종삼, 구자운, 전봉건 시인들의 이름이 낯선 분들이라면 더욱 새겨서 읽어보십시오. 시는 단순한 넋두리나 혼자만의 도취에서 우러난 것이라고 잘못 아는 이들도 읽어보십시오.

   제대로 된 시, 올바른 시를 어떻게 쓸 것인가. 이 문제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풀기 어려운 문제는 결코 아닙니다. 끈기와 열정을 가지고 과거의 낡은 버릇을 과감하게 팽개쳐버리고 다시 시작하는 각오가 있으면 됩니다.

   이 카페의 [좋은 시 읽기]에 올린 시들을 손으로 노트에 모두 필사해 보십시오. 평생 몸 바쳐 시를 쓰고야 말리라는 결심을 하고 있다면 두려워 마십시오 [좋은 시 읽기]의 시들 맨 아래의 1번 시인들부터 100번의 시인들까지는 5편씩의 대표작을 다른 데서 찾아서라도 노트에 쓰십시오. 그리고 101번부터 300번까지 시인들 작품은 3편씩 찾아서 쓰십시오. 그 이후부터는 그냥 [좋은 시 읽기]의 시들을 필사하십시오.
   하루에 5편 내지 10편을 필사할 경우, 1년이면 그 훈련이 대충 끝나게 될 것입니다. 늦어도 2년이면 그 습작 훈련이 끝나게 될 것입니다. 이만한 노력 없이 올바른 시의 길을 찾는다는 것은 나무에 올라 물고기를 찾으려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왜 시를 손으로 필사해야 하느냐고 의심합니까? 그 필사하는 과정 안에 시의 비밀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필사하면서 집중하여 생각을 하면 그 시의 심상, 그 이미지를 쓰게 된 시인의 남모를 동기, 행을 바꾼 의도, 시 속의 소리 없이 숨쉬는 운율 등이 은근히 내게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읽고 지나쳐버리고 만다면 그 중요한 것들의 눈짓을 알지 못합니다. 또한 시를 쓰는 방법도 자연 그렇게 터득되는 것입니다. 어떠한 이론적 습득보다 이 방법이 가장 확실합니다.
   그리고 순서를 좇아 쓰게 되면 아마 여러분은 우리나라 현대시의 역사를 스스로 깨치게 될 것입니다.

   아울러 [비평/에세이]의 글들을 맨 아랫것부터 차례로 출력하여 최근의 것까지 하루에 두 꼭지씩 정독을 해 보십시오.

   1,200 편의 시를 필사한다고 칩시다. 시집 겨우 20 권에 지나지 않는 분량입니다. 하루에 5 편씩 필사한대도 240일이면 할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겁내지 마십시오. 아무런 대책 없이, 좋은 시, 제대로 된 시가 어떤 것인지도 모르고 자기 혼자만의 시 쓰기에 골몰하고 자아도취에 빠져 허송하는 세월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렇게 필사를 하고 다 하고 나면 그 때 비로소 시의 참맛과 시의 바른 길을 알게 될 것입니다.

 

                                                  *

   이 과정을 마친 분은 시 이외의 교양 서적을 섭렵하는 게 좋습니다. 문학, 철학, 신화, 미술, 음악, 역사 등 교양의 축적이 폭넓은 시적 자산이 될 것입니다.

   망설이지 마십시오. 지금 바로 시작하십시오. 좋은 시 속에 좋은 시를 쓰는 왕도(王道)가 있습니다.

 

 


 

      2007년 11월 5일

 

       강 인 한

 

 

좋은 시와 베껴쓰기에 대하여|좋은 시 읽기
강인한 | 조회 2534 |추천 1 |2008.08.03. 09:00 http://cafe.daum.net/poemory/JW6F/1333 

여기에 올리는 '좋은 시'들은 제가 읽은 시집 한 권(평균 60 편)에서 보통 세 편 정도 빼어난 작품만을 고른 것들입니다.

매달 발행되는 시지나 계간지에서는 좋은 시로 서너 편을 고르기도 합니다.

이 시들을 베껴쓰는 것은 가장 확실한 시 쓰기의 지름길입니다. 대략 5백 편 정도 베껴쓰기를 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스스로의 시를 쓸 수 있을 것입니다.

천 편의 좋은 시를 베껴썼을 때, 아마도 당신의 시는 좋은 시에 많이 닮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치 호손의 '큰바위얼굴'을 흠모한 소년이 마침내 그렇게 닮아가는 것처럼......

- 강인한 올림.

 

시집을 타이핑하며 떠오른 사소한 생각

 

 

오늘은 하루 종일 비가 오네.

저 창 아래 보이는 한강공원 얕은 지대들 움푹 팬 곳 여기저기 작은 웅덩이에

제법 빗물이 고였어. 여름 비 오는 풍경처럼.

 

어제 타이핑을 한 조혜은 시 3편.

시 한 편 한 편의 길이가 긴 것들에 지레 겁 먹을 필요가 없었어.

손으로 타자를 해보니 그다지 까다롭지 않은 시들이데.

그냥 수필처럼 편안하게 쓴 시들이야.

굳이 저렇게 길게 쓸 필요가 있었을까, 그건 좀 회의적이었어.

 

오늘은 S시인 시집에서 세 편 골라 준비하려 했는데, 겨우 겨우 두 편만.

그의 시집 첫머리의 시보다 앞에서 두 번째 시가 좋기에(괜찮기에) 타이핑을 하는데

도중에 화가 치밀어서 그만 집어치웠어.

 

     주기가 바뀌는 각각의 달빛을/ 한 스푼씩 먹으며     (9행, 10행)

     나는 본다. 짓물나는 몸 밖으로 돋는/ 푸른 싹들을 나는 본다.  (17행, 18행)

 

우리 카페 <좋은 시 읽기> 코너에 소개하려던 그 시의 9, 10행과 17, 18행을 옮겨 적은 건데

내 생각엔 아무래도 '떠먹으며'가 되어야 할 부분 같았고,

'진물 나는'이 바른 표기일 것 같았어.

그리고 '~다'로 끝나는 문장들이 여덟 군데인데 두 군데만 마침표를 찍은 것도

영 기분 나뻤어. 너무나 사소한 것에 무신경한 흔적이 역연하잖아.

(추측건대 몇 차례 퇴고하는 과정에서 부분적으로 고치고, 고치다가

다듬은 흔적을  전체적으로 다시 한번 검토하지 않고 무심결에 지나친 것일 게야.

어쩌면 '짓물러'를 '진물 나는'으로 고친다는 것이 그만 '짓물나는'이란 표기가 되었는지도 몰라.)  

 

자기 시에 대하여 성의 없다 할까, 무책임하다 할까.

이 시가 전체적인 내용이 아무리 훌륭하면 뭐해. 

여기저기 못 봐 줄 흠집 투성이인데!

결국 이 시를 깨끗이 잊기로 하고 이 사람 시집에선 두 편만 올릴 계획을 굳혔어.

 

좋은 시라고 생각하여 그 시를 끝까지 타이핑하고 나서 아무래도 이렇게 찜찜해서

그만 '없던 일'로 지워버릴 땐 정말이지 나도 많이 속상해.

시인들, 특히 시집을 내는 시인들은 자기 시를 남들보다 더 사랑하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야.

시집 속에서 오자, 오기 등을 발견하면 그 책이 가치 없어 보여.

 

사정이 있어서 낱낱이 자세하게 검토하지 못하였으리라 짐작은 하지만,

그야 어쨌든 시집은 책으로 남아서 그 시인이 세상을 뜨더라도

책(종이)의 생명이 다하는 그 마지막 순간까지 그 시인을 대변하게 되거든!

 

      2013/ 1/ 21   강인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