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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신춘문예 시당선작

법정 2013. 1. 5. 00:06

 

2013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이끼의 시간 / 김준현

 

 

우물 위로 귀 몇 개가 떠다닌다

검은 비닐봉지 속에 느린 허공이 담겨 있다 나는

내 빈 얼굴을 바라본다 눈을 감거나

뜨거나, 닫아놓은 창이다

녹슨 현악기의 뼈를 꺾어 왔다 우물이 입을 벌리고

벽에는 수염이 거뭇하다 사춘기라면

젖은 눈으로

기타의 냄새 나는 구멍을 더듬는, 장마철이다

손가락 몇 개로 높아지는 빗소리를 누른다 저 먼 곳에서

핏줄이 서는 그의 목젖, 거친

수염을 민다

드러나는 싹이여, 자라지 마라

벌레들이 털 많은 다리로 밤에서

새벽까지 더듬어 오른다

나는 잠든 그의 뒷주머니에

시린 손을 숨긴다 부드럽고 가장 어두운

비닐봉지 안에 차가운 달걀 몇 개를 담아

바람에 밀려가는 주소를 찾는다

귀들이 다 가라앉은 물에도

소름이 돋는 중이다

 

 

 

 


[당선소감] 더 정갈한 글로 보답하겠습니다

어릴 때, 저녁이면 부모님은 저와 동생에게 과일을 깎아 주셨습니다. 지켜보며, 사과껍질을 끊기지 않게 깎는 법을 배우고 싶었죠. 그러나 손놀림이 서툴렀던 저는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생각하면, 한 번도 긴 곡선의 껍질을 남긴 적이 없었던, 제 사과.

서툴렀던 건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병아리를 길렀던 적이 있었죠. 어쩌다 다리를 다친, 이름도 잊어버린 그 병아리 역시 제 서투른 사육의 증거였습니다. 베란다의 사과박스 속 홀로, 한 쪽 다리로 서 있던 병아리를 보며 저는 ‘쓸쓸’이라는 감정을 배웠습니다. 의무처럼, 저는 병아리의 배설물이 묻은 신문지를 갈아주었습니다. 오래된 신문지와 새 신문지의 날짜 사이 점점 간격이 벌어지던 어느 날, 병아리는 눈을 감고 있더군요.

방에서 홀로 쓰다가 그렇게 지칠 때면 저는 밝고 따뜻한 집으로 돌아갑니다. 늘 믿고 기다려주신 아버지, 어머니, 동생에게- 늘 사랑하고 고맙습니다.

문학을, 사람을 대하는 자세를 몸소 보여주시고, 늘 제 서투른 감각들을 짚어주시는 김문주 교수님. 감사합니다, 그 이상의 인사는 좋은 작품이어야 할 것 같습니다. 더불어 영남대 국문과의 교수님들, 제가 지나온 모든 선생님들과 친구들, 특히 승협, 명재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정끝별 손택수 두 심사위원께는 더 정갈한 소리로 보답을 드리겠습니다. 오래 가라앉고자 합니다.

■약력

▲ 1987년 포항 출생 ▲영남대 국문과 졸업▲ 현재 동대학원 국문과 재학

 

 

 

 


[심사평] ‘따로 없는 詩 쓰는 법’ 모험에 박수를

추사에 따르면, 묵죽을 그리는 데는 법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법이 따로 없는 것도 아니다. ‘따로 있는 법’을 성실히 참조하면서도 과감히 떨쳐버리고 어떻게 ‘따로 없는 법’을 찾아나설 것인가. 신춘문예 시 부문 심사는 모험을 향해 떠난 외롭고 고단한 열정들과의 뜨거운 만남의 자리였다.

꼼꼼하고 균형 잡힌 예심을 거쳐 올라온 총 20여명의 작품 중 최종심에 오른 것은 ‘새라는 가능성’, ‘고동의 길’, ‘만찬’, ‘이끼의 시간’ 등 모두 네 편이었다. 예리하게 벼린 언어 감각이 돋보이는 ‘새라는 가능성’은 높은 시적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기시감이 있었다. 새, 새장, 온도, 울음, 바람 등 선택된 오브제들과 그 엮음의 방식이 표절 시비로 이미 당선 취소된 바 있는 작품들과 유사해 또 다른 표절 시비를 몰고 올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 하에 가장 먼저 제외되었다. ‘만찬’은 “노을에도 마블링이 있다/ 칼이 허공의 날개처럼 살 사이를 휘젓는다”와 같은 감각적인 언술에 호소력이 있었으나 전체적으로 과잉된 수사욕망을 절제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마지막까지 남은 작품은 ‘고동의 길’과 ‘이끼의 시간’이었다. ‘고동의 길’은 수많은 시 창작론의 정석이라고 해도 될 만큼 균형 잡힌 구조와 투박한 시어들을 장악해 들어가는 사유의 힘이 돌올했다.

반면에 미성년의 실존적 내면을 다룬 ‘이끼의 시간’은 우물, 검은 비밀봉지, 현악기(기타) 등으로 변주를 거듭하는 은유와 신경증적인 감각들로 이미지와 이미지, 의미와 의미 사이의 연결고리가 불안으로 술렁였다. 동봉한 작품들 또한 같은 문제를 안고 있었다. 하지만 이 불안은 그 무엇도 결정되지 않는 혼돈 속에서 돋아나는 새로운 가능성의 감각과 열기로 꽉 차 있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완숙한 포도주의 맛과 아직 미숙하긴 하되 미래를 잠재한 떫은 포도주의 맛 사이에서 장고 끝에 심사위원들은 ‘따로 없는 법’을 찾아나선 자의 모험에 손을 들어주기로 하였다. 새로운 시인의 탄생에 매운 채찍과 응원을 함께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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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푸리13.01.02. 16:57 new
다른 당선작들 읽다가 이 시 읽으니, 정신이 번쩍 나는 듯 새롭네요.
대부분의 당선작들이 신춘문예 문법에 꼭 맞는, 그래서 그 시가 그 시 같은 느낌이었는데,
이 시는 첫 줄부터 아주 참신한 느낌.
올해도 심사평에서 언급한 새, 새장, 바람, 온도 운운하는 작품이 자칫 당선될 뻔했네요.
"~뭐뭐라는 뭐"라는 형식의 수사도 이 부류의 고정된 표현으로(특히 제목에서) 여기저기 나돌고 있는 것 같던데요.
아무튼 이 당선작 너무 신선해서 좋습니다.
 
 
안서00:20 new
동감입니다. 두번째 행간에 나는 이라는 시어로 맺음한 표현에 감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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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오늘의 의상 / 정지우

 

 

성당의 느티나무 그늘이 무더위에 끌리고 있다
팔랑거리는 양떼들을 데리고
계절 속으로 입성하려면 가벼운 체위는 가리고 고딕의 시대를 지나야 한다


폭염은 언덕에 한낮으로 누워 있다


구름의 미사포를 쓰고 그늘을 숙이던 오후는 초록의 전례를 들려주더니
밀빵을 혀에 얹고 한동안 입들이 닫혀 있을 것이다
종탑에는 귀머거리 새가
종소리를 둥지로 삼아 살고 있다


회색을 입고 묵상에 잠긴 성전엔 돌기둥을 돌던 저녁의 의복이 걸쳐져 있다


미사의 요일엔 검은 머리카락을 버리고 히브리어를 닮은 숟가락으로 점심을 먹는다
오늘의 드레스코드는 디저트가 없는
주일 맛 나는 테이블
중세의 햇빛이 스테인드글라스로 들어오는 창문
귀가 잘려진 무늬에선
단풍잎 맛이 나는 오래된 말들이 달그락거린다


촛대처럼 나무가 자꾸 떨어뜨리는 중얼거림들
대신 읊고 가는 가을 울음소리가 스르르 바닥에 끌린다
계단이나 혹은 의자로 배치되어 있는 한 철을
나는 양치기 소년으로 지나고 있다

 

 

 

 

 

 

시름의 골목 지나는 어린 나에게 돌아가고 싶어

시 당선소감 - 정지우

 

입술을 달싹였지만 말이 되어 나오지 못한 날들이 되풀이됐다. 한동안 소리를 잃었을 때 모든 밤과 낮을 모아 구겨버린 일들이 소소한 날의 뒤편을 떠다녔다. 내 옆엔 언제나 불면의 그림자만이 작아졌다 커지곤 했다. 시어를 쌓았다 허물어버린 기억이 어제의 눈송이로 내리고 그 위로 겨울비가 내렸다. 차가운 빗물에 미끄러질 뻔한 손을 간신히 잡아준 아침처럼 당선 소식을 받았다. 아직 어린 아이로 골목을 지나고 있는 나에게 먼저 찾아가고 싶다. 내가 나를 잃어버린 시간으로부터 너무 멀리 와 있었다. 타인의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는 나를, 양떼를 몰고 성당 주위를 돌고 있는 양치기 소년을 외면할 수가 없었다. 묵상을 의복처럼 걸치고 사물의 바깥에서 길을 잃어도 멀리 성당 종소리에 귀를 붙들려도 중세로 돌아가는 길을 망설이지 않을 것이다.

잠시 쉬어가야겠다, 라고 생각했을 무렵이었다. 몸으로 시를 써서 왼쪽엔 통점을, 오른쪽엔 고독을 모시고 살았다. 문득 뒤돌아보게 되는 연말엔 더욱 지치고 힘들었던 것 같다. 매번 마침표를 찍고 싶은 순간을 지나치곤 했는데 이제는 그 시름을 넌지시 위로할 수 있겠다. 무수한 날들, 삶의 전환점을 돌아 어린 나에게 돌아가는 일이 헛되지 않음에 감사한다. 오랜 기다림에 손을 내밀어주신 황동규, 정호승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시의 근원이신 엄마에게 생애 최고의 선물을 전할 수 있어서 무엇보다 기쁘다. 언제나 곁에서 독자로 조언과 힘을 실어주었던 남편과 소망을 주는 딸 이주, 이정 그리고 동생 애정이에게 지면을 빌려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많은 가르침을 주신 이봉일, 이문재, 이영광 교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학우들, 목동 문우들과 행복을 나누고 싶다. 그리고 힘들 때 벗이 돼주었던 동료 논술 선생님들과 나를 선생님으로 부르는 아이들이 보고 싶다. 더욱 치열하게 시를 쓰면서 희망을 견디기로 한다. 끝까지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 1970년 전남 구례 출생

▲ 경희사이버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 논술 언어력지도교사

 

 

 

 


풍성한 비유로 우리 시대의 삶에 화두 제시

시 심사평

 

 

최종심까지 남은 작품은 박도준의 ‘빨대’, 한그린의 ‘어떤 악기’, 최원의 ‘이웃의 중력’, 정지우의 ‘오늘의 의상’이었다.

‘빨대’는 인간에게 죽임을 당하는 새끼 곰에 대한 어미 곰의 모성을 역설적으로 드러냈으나 설명이 지나쳐 시적 형성력을 잃고 말았다.

‘어떤 악기’는 비뇨기과 탁자 위에 꽂혀 있는 ‘오줌 컵’들을 하나의 악기로 파악한 점이 신선하고 기발하나,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신선함과 기발함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 큰 단점이었다.

‘이웃의 중력’은 이웃과 함께 살 수밖에 없는 우리 삶의 관계를 투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수작이었다. 보통 그 투명함 속에는 냉소적인 차가움이 있게 마련인데 인간적인 따스함이 돋보여 호감이 갔다. 그러나 타 신문사에 중복 투고한 탓으로 더는 심사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결국 당선작으로 결정된 ‘오늘의 의상’은 풍성한 비유를 통해 오늘 우리 시대의 삶에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 하는 화두를 제시하고 있다. 특정한 모임에 예의상 입고 가는 의상을 일컬어 ‘드레스 코드’라고 할 때 오늘 우리의 삶에도 특정한 의상이 필요하며, 그것이 바로 ‘사랑의 의상’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 신뢰가 갔다.

이 시는 전체적으로 종교적 은유성을 지니고 있으나 결코 종교성에 함락돼 있지 않다는 점이 또한 큰 장점이었다. 함께 투고한 ‘향신료 상인’이나 ‘발소리를 포장하는 법’ 등도 시인으로서의 앞날을 기대하기에 충분한 작품이었다.

앞으로 한국시단의 발전을 위해 자기만의 개성이 두드러진 시를 쓰는 시인으로 성장해주길 바란다.

심사위원 황동규·정호승

 

 

2013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수박 / 진서윤|추천 詩 /공모당선작
진진/김면수 | 조회 2 |추천 0 |2013.01.03. 06:29 http://cafe.daum.net/kwangjuks/meML/29 

 

 

2013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수박 / 진서윤



수박밭에는 여물지 않은 태양들이 숨어있었다.



햇빛 줄기가 연결된 곳엔 푸르스름한 심장이 떠있고 폭염이 몰려들고 있었다.

양말 목 풀린 실밥처럼

몸이 헐 것 같은 날

거꾸로 자라는 덩굴의 비린 향이 꼼지락거렸다.



직선의 나이에 곡선의 통증이 붉다

모래밭 이랑마다 층층이 쌓이는 바람말이를 먹었다

누군가 손등으로 통통 두드려보고 갔다

그때 문득, 통증에 씨앗이 생겼다.



세상의 모든 음(音)은 보이지 않는 발자국처럼 익어가고 서리라는 말을 들으면 붉은 당도(糖度)가 끈적거렸다.



달의 필라멘트가 끊어진 밤

고양이가 지나갈 때마다 감지 등(燈)이 켜지고

닿기만 해도 탁! 터질 준비가 되어 있는 만월(滿月)

수박 속에는 검은 별들이 유영하고 있을 것이다.



푸른 굴절무늬로 온몸을 묶어 놓은 여름, 허벅지 아래로 붉은 씨앗 한 점(點) 떨어졌다.

이후 모든 웃음을

손으로 가리는 버릇이 생겼다.



들판 너머 여름이 이불 홑청 끝자락처럼 가벼워졌다

마르지도 젖지도 않은 이파리를 허리에 감고

수박들이 붉은 속셈으로 익어간다.

 

 

 

 

 

 

[경남신문 신춘문예]시 당선 소감

유난히 분주했던 해였습니다.

근무처를 옮긴 타지의 항구에서 서쪽의 나라에서 들어오는 배를 바라봅니다. 배에서 내리는, 오래 속이 흔들린 사람들의 표정을 알게 됐습니다. 그것은 오래 속이 흔들린 내 표정과 같았습니다. 시를 쓰는 일은 늘 속을 울렁거리게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오늘 당선 통보 전화를 받았습니다.

이렇게 기뻐해도 돼? 같이 교육 중인 옆 동료에게 물어보았습니다. 그녀는 당연하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려 주었습니다. 마음 놓고 기뻐하겠습니다.

오래 변방에 머물렀지만 뜻한 대로 살게 되지 않았던 것이 저의 자양분이 되었다는 걸 알게 되어 기쁩니다. 세상에 떠도는 이야기를 귀담아들으며 특별한 경험을 두려워하지 않겠습니다. 서로 떨어져 있으니 가족의 출처가 더 선명하게 보입니다.

사랑하는 딸 윤지와 연우 그리고 남편 강권구 씨, 가족이어서 또한 감동이었습니다. 처음 시 창작 법을 가르쳐주신 창신대학교 이상옥 교수님, 표성흠 교수님, 박노정 교수님, 언제나 독려해 주시는 이월춘 선생님, 장예은, 이영탁 문우님 고맙습니다. 무엇보다 삶의 자장권 안에서 필연으로 다가온 문학이 저를 이끌어 왔음을 믿습니다. 유홍준 박서영 시인님, 김경복 교수님, 서툰 저의 글을 뽑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서쪽의 저녁에서 배가 들어옵니다. 그 흔들린 뒤끝의 얼굴들을 오래 찬찬히 살필 것입니다. 앞으로 제 시도 그와 같을 것입니다.

◇1960년 함안 출생 ◇창신대 문예창작과 졸업 ◇제6회 세관문예전 시 부문 최우수 ◇2007년 경남여성백일장 장원 ◇2010·2011년 공무원문예대전 시 부문 동상

 

 

 

 

[경남신문 신춘문예]시 심사평


올해 시 부문에는 많은 작품이 투고되어 저마다 재기와 패기를 선보였다. 다만 일상생활에 지친 감상적 모습들이 많이 보인다는 점에서 시의 생기가 피로사회의 여파로 다소 잠식된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를 가지게 했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과 그 의식을 언어적 세련미로 형상화해낸 뛰어난 시들이 꽤 발견되어 그나마 안도할 수 있었다.

최종 심사에 오른 작품 중 ‘거푸집’은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패기 있게 시적 대응을 했으나 형상성이 너무 사변적이고 무거워 주저하게 되었고, ‘꼬리에 꼬리를 밟아본 꽃’은 표현의 신선함과 삶에 대한 인식의 재치는 돋보였으나 작위적인 전개와 구성이 문제되었다. ‘기린을 소재로 한 얼룩’은 산업도시 사회의 고독과 단절을 잘 포착했으나 감상에 치우친 면이 강했고 무기력하게 마무리한 점이 아쉬웠다.

‘허물어진 것들은 따뜻하다’는 마지막까지 놓지 않았던 작품이다. 허물어진 집이 재로 다시 건축된다는 발상이나 “따스함을 끝까지 놓지 않았던/ 저 집의 일생은 불이었다”라는 표현은 매우 신선하고 감동적이었다. 그러나 세련된 진술과 자못 낯익은 시상들은 어디에선가 본 듯한 느낌이었고, 신인으로서 가져야 할 패기를 놓쳐버리고 있다는 점에서 아쉬움으로 지적되었다.

당선작 ‘수박’은 이미지의 참신함이 돋보였다. 수박의 성장을 인간의 삶에 비유해 삶의 여러 단면을 성찰하고, 무엇보다 그 시적 전개마다 놀라운 언어감각이 심사위원들을 감동시켜 높은 점수를 받았다. 특히 ‘수박밭’과 ‘밤하늘’의 연계성을 지상의 어둠과 우주의 비밀로 해석해 감각적인 언어로 잘 꿰매고 있어 발상의 신선함을 샀는데, 이러한 점은 투고한 다른 작품들에도 고루 나타나고 있어 삶에 대한 깊은 성찰과 그에 합당한 언어 감각과 형상성을 지니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당선자가 더욱 정진해 한국시단을 밝히는 푸른 별이 되기를 기대한다.

<심사위원 김경복·유홍준·박서영>

 

 

 


 

2013년 농민신문 신춘문예 詩 당선작 - 하현달 소묘 / 조선의|추천 詩 /공모당선작
진진/김면수 | 조회 0 |추천 0 |2013.01.09. 10:29 http://cafe.daum.net/kwangjuks/meML/32 

 

 

하현달 소묘 조선의

 

 

한 끝을 힘껏 당겨 가만히 놓으면

다른 한 끝이 길이 된다

 

활시위는 지상을 향해 팽팽하게 유지되고 있지만

과녁의 위치에 대한 정확한 정보는 없다

아직 다 그리지 못한 한쪽 눈썹

마당 모서리에 반쯤 보이는 길고양이 꼬리

뒤꼍 항아리 돌아 핀 흰 철쭉꽃이거나

추녀를 넌지시 들어 올린 풍경소리거나,

어둠이 빛을 좇아 하늘로 오르기 시작하면

비어 있는 그늘에 풀씨들이 날아들어

지상의 벼랑 위에 피는 꽃들은

극한의 향기를 오로라의 남극으로 잇는다지

지하도를 빠져나오는 사람들이

빠른 속도로 전리층의 프리즘 속으로 사라지고

한 시절 끝 간 데 없이 오로라와 연결된

달빛의 통로를 빠져나오면

활시위의 과녁 위다

피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은

풍경소리가 추녀 끝 아래쯤에서 멈추기를 기다려

당신의 눈썹으로 달을 그리는 일,

 

그 끝이 다른

한 끝의 길이다

 

 

 

[당선소감] “나의 흔들림 묵묵히 지켜본 아내에 감사

 

새벽 6농원을 향하여 차를 달립니다.

아침햇살과 첫인사를 나누려면 한참을 더 기다려야 합니다.

해보다 먼저 일어나고 해보다 늦게 귀가하는 농부,

나무와 생활한 지 30년 세월이 지났습니다.

 

 본격적으로 나무와 생활하기 위해 오래 몸담았던 언론사를 7년 전에 그만두고주목·영산홍을 전문적으로 기르고 있습니다그러던 중 틈틈이 글을 쓰고 지우기를 반복했습니다거부할 수 없는 글쓰기의 매력에 고단함도 잊은 채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빠지지 않으려고 몸부림칠수록 더 깊이 빠지는 삶의 늪 속에서도 여명처럼 밝아오는 그 무엇을 기대했는지 모릅니다.

 

 나무는 땅에 심는 것이 아니고 하늘에 심는다는 것을 알기까지 뼈를 깎는 많은 수업료를 지불해야만 가능한 일이었습니다하늘을 향한 나무가 하나의 몸짓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그 나무 아래 수백 번 무릎을 꿇어본 사람은 압니다.

 

 기다림이 얼마나 무모한 것인지기다림이 얼마나 외롭고 고통스러운 것인지를.

 

 글쓰기의 기초를 놓아주신 고 문도채 시인님과열린시 회원님들은 물론 기독신춘동인님들과 무엇보다 부족한 글을 뽑아주신 농민신문사와 심사위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특히 나의 흔들림을 지금껏 묵묵하게 지켜본 아내(성경낭송가 김정희)와 두 아들 신언신의에게도 고맙다는 말 전하고 싶습니다.

 

 이제 납작하게 엎드려 겨울나기를 하는 농부,

 

 초봄이 올 때까지는 좀 게으르고 싶습니다.

 

 

 조선의(경섭1960년 전북 군산 출생 열린시동인 기독신춘동인 시사전북 편집위원 아름다운디자인조경 대표 2013년 기독신춘문예당선

 

 

 

[심사평] “시적 대상에 대한 진술이 섬세하면서도 날카로워

 

이번 신춘문예 시 부문의 본심에 오른 것은 모두 열두분의 응모작 60편이었다시적 형상성과 정서의 균형을 잘 지탱하고 있는 작품들이 많았다이 가운데 심사위원들이 특히 주목한 것은 <하현달 소묘> <곡우에 들다> <내 이를 물고 간 새는 언제 오나등 3편이었다.

 

 <곡우에 들다>의 경우는 시적 대상을 자기 방식대로 형상화하는 능력이 돋보인다그런데 어떤 부분은 지나치게 비약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어느 대목은 디테일에 집착하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시상의 흐름에서 어떤 균형을 발견하기가 어렵다.

 

 <내 이를 물고 간 새는 언제 오나>의 경우는 일상의 경험을 민속의 세계와 연결하는 상상력의 기발함이 돋보인다그러나 지나치게 서술적인 구절들이 많아서 시적 언어의 긴장을 해치기도 한다.좀 더 압축적으로 표현할 수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이번에 당선작으로 뽑은 <하현달 소묘>는 시적 대상에 대한 진술 자체가 섬세하면서도 날카롭다시간의 흐름과 공간의 이동을 동시에 포착해내는 시인의 언어 감각이 남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무엇보다도 우주적 공간과 그 질서에 대면하여 시적 주체의 자기 존재에 대한 인식을 이렇듯 섬세하게 표출할 수 있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앞으로 더 좋은 시적 세계의 성취를 기대해 본다.

 

 심사위원=김송배<시인>, 권영민<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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