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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소재 (2)

법정 2012. 7. 26. 05:16

시 창작의 실제 /시의 소재(2)|♧ 시/소설 이론 ♧
김옥순 | 조회 23 |추천 0 |2010.05.06. 13:51 http://cafe.daum.net/kjbsd/NqDa/48 

시의 소재(2)

 


마주보는 찻잔


- 백승우-



우리 서로

마주보는 찻잔이 되자

각자의 빛깔과 향기는 인정하면서


남아 있는 모든 것을

그 안에 담아줄 수 있는

꾸밈없는 순수로 서로를 보는


블랙의 낭만도 좋겠지만

우리 딱 두 스푼 정도로 하자


첫 스푼엔

한 사람의 의미를 담아서

두 번째엔 한 사람의 사랑을 담아서


우리 둘 가슴 깊은 곳에

가라앉은 슬픔이

모두 녹아져 없어질 때까지

서로에게 숨겨진 외로움을 젓는

소중한 몸짓이고 싶다.


쉽게 잃고 마는 세월 속에서

지금 우리의 모습은 조금씩

식어가고 있겠지만


그 때는 이렇게

마주보고 있는 것만으로

모자람 없는 기쁨일 테니

우리 곁에 놓인 장미꽃이

세상의 무엇보다도

우리를 부러워할 수 있도록

언제까지나 서로를 마주보는

찻잔이 되자


각자의 빛깔과 향기는 인정하면서

남아 있는 모든 것을

그 안에 담아줄 수 있는....

서로에게 숨겨진 외로움을 젓는....

언제까지나 서로를 마주보는 찻잔이 되자




강의에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오세영. 장부일님은 시의 소재를

1)정서를 소재로 하는 시

2)현실을 소재로 하는 시

3)관념을 소재로 하는 시 로 나누었습니다.


어제도 말하였지만 시의 소재는 너무도 많은데

그 들을 이렇게 셋으로 나누면 아마 모두가

이 범주 안으로 들어오겠지요.

이 분류에 따라 연구해보고자 합니다.


1.정서를 소재로 하는 시


시의 소재 가운데 비교적 흔하게 사용하는 것이 아마도 정서를 소재로 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

다. 서정시의 본질은 자신의 감정을 언어로써 표출하는데 있기 때문입니다. 시인의 감정은 추

상적이거나 우연한, 설명할 수 없은 그 무엇이 아니라 시인이 일상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느끼

는 자연스러운 감정이기 쉽습니다.

일단의 서정시들이 정서를 소재로 한 것들이 많기 때문에 여기서는 설명을 생략하기로 하겠습

니다. 


2.현실을 소재로 하는 시


정서를 소재로 하는 시도 그 정서가 현실의 생활에서 느끼는 감정이기 때문에 현실을 소재로

한다고 볼 수 있으므로 이렇게 분류하는 것이 어쩌면 무리일 수도 있으나 일단 두 분의 분류

를 따르기로 합니다. 이 분들의 주장은 "시인은 시를 쓸 때 자기가 가진 중심사상을 표현해내

는 중심소재를 가지는데, 이 때 중요한 것은 시인이 현실과 정서 가운데 어느 것에 주된 관심

을 기우리느냐 하는 것이다"는 것입니다.


임영조님의 <넥타이>를 예시로 올려 봅니다.


이른 아침 거울을 보며

스스로 목을 맨 올가미가

온종일 나를 끌고 다닌다


사무실로 거리로

찻집으로 술집으로

또 무슨 식장으로 끌고 다닌다

서투른 근엄을 위장해 주고

더러는 나를 비굴하게 만들고

갖가지 자유를 결박하는 끈


도대체 누굴까?

이 견고한 줄로

내 목을 거뜬히 옭아 쥔 者는...


답답해라

어머니의 탯줄을 끊고

세상에 나온 이후

나는 아무런 줄도 잡지 못하고

불안한 도시 안개 속을 헤매는 羊


제발 정신 좀 차려야지

하루에도 몇 번씩 다짐하면서

뒤틀린 넥타이를 고쳐 매지만

나는 다시 고분고분 길들여진다

낯선 시간 속으로

바쁘게 끌려가는 서러운 노예처럼


이 시를 잘 읽어 보면, 우리가 흔히 접하는 넥타이에 대한 것들을 여러 가지 비유적 언어를

써서 아주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여기에서 넥타이의 이중성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넥타이는 남성들의 유일한 장식물입니다. 물론 요즘 젊은이들이야 여자들처럼 귀걸이도 하고

목걸이도 하는 시대가 되긴 하였지만요. 그러나 일반적으로 볼 때 넥타이는 장식물이라기

보다는 남들에게 격식을 갖추기 위한 목적이 훨씬 강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부득이 격식을 갖추어야하는 처지, 소위 불루 칼라와 대비해서 칭하여지는 화

이트칼라 즉 사무직 근로자들을 일컫는 것이 됩니다.

그들에게 넥타이는 직업 혹은 직장을 상징합니다.


넥타이를 매고 다님으로써 다른 사람들로 부터 자기의 존재를 인정받는다는 긍정적인 측면보

다 남들의 이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넥타이를 매야한다는 부정적인 측면에

서 볼 때는 넥타이는 시인의 자유를 구속하는 "줄"로 둔갑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는 넥타이가 상징하는 바를 염두에 둔다면 넥타이에 의해서 자유를 구속당하는 상황

은 일에서 소외된 소시민의 일상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한 것을 볼 수 있겠지요.


오세영님의 해설을 읽어보지요.


"시인의 예리한 통찰력에 의해 제시된 넥타이의 양면성보다 우리의 눈길을 더 끄는 것은 일에

서 소외된 소시민인 시인의 현실에 대응하는 방식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대목이다. "정신을 차

려야 한다고 몇 번씩 다짐"하지만 그는 다시 길들여진다. 현실적으로 소외를 극복할 방안을

찾을 수 없으므로 시인은 자기가 일의 노예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가 처한 비극적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 시에서 일의 소외를 야기하는 사회 모순에 대한 소시민의

비판의식이 체념으로 끝을 맺는 매우 사실적이고 진솔한 소시민 의식을 찾아볼 수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체념적 소시민의식을 드러내기 위해서 시인은 일상사인 직장인의 생활을 소

재로 선택하였으며, 직장인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넥타이를 시의 소재로 삼은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가 시를 쓸 때는 내가 현실적으로 늘 접하는 매우 친숙한 소재를 잘 관찰하여, 깊은 의미

를 끌어내면 이와 같이 유용한 소재가 되어 여러분도 훌륭한 시를 쓰실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선배 시인은 어떻게 소재를 잡았는가 또

한 번 들어보는 기회를 갖겠습니다.


한기팔 시인의 견해입니다.


"한편의 시를 얻는 일은 사물과의 충실한 애정과

내적 교섭이 없이는 비롯되지 않는다.

사물이란 곧 시로 접근시켜 주는 시의 소재로써

끊임없이 시인과의 교감과 내적 교섭을 통하여

시 가운데 군림하게 된다.


빈 뜰에

바람이 인다.


의미성을 부여하기에 앞서 의미성을 암시하는 내적

충동의 대상으로서 다음에 오는 소재의 행위를 유

발시키에 된다.

뜰. 바람의 구체적인 형태가 어떤 행위에 의한 의

미의 암시적인 면을 보여주게 되는가.

빈 뜰에 바람이 이는 그런 상황만으로는 이는 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이는 사실을 사실대로 기록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일 것이다.


죽은 새 울음

하늘을 날데


헐린 돌담에

가을비

칭얼대는 날


마을 밖에

빈 집을 보러 간다.


여기서 우리는 몇 개의 소재가 주는 암시성을 발견하게 된다. 죽은 새 울음. 헐린 돌담, 빈 집

의 처절한 비애와 접근하게 된다. 이 시는 <가을비>라는 나의 졸 시의 전부다. 가을비와 죽은

새, 헐린 돌담, 빈 집과는 어떤 연계성을 지니게 되는가. 나의 경우 이와 같은 소재들은 의도

적으로 동원시키지는 않는다. 체험적 근거를 제시하는 동안 자연스럽게 집결되어지는 것이다.


죽은 새 울음이 하늘을 날 수 있다는 근거는 없다.

다만 그렇게 느꼈을 뿐이다. 비답지 않게 내리는 가을비의 이미지가 보얀 하늘의 죽은 새의

울음으로 비쳤을 뿐이다. 이를 [하늘이 뽀얗게 내리는 가을비]라고 해봤자 아무런 시의 새로

움을 발견해내지 못한다. 이 시를 쓰기에 앞서 문득 떠오를 상황의식을 적어보기로 한다.


어렸을 무렵 우리 동네에 봉탕할망이라는 노파 한

분이 계셨다. 물론 그의 집은 마을 밖에 거의 허물

어진 채 지극히 초라하고 음산한 모습으로 빈 집

마냥 놓여 있었다

누구든지 그 집 앞을 지나칠 때면 소름이 끼쳐지고

마음이 여간 부담스럽지가 않다. 우리 또래의 어린

것들의 울음소리도 저기 몽탕할망 온다 하면 거의

가 울음소리를 끊곤 했다

더욱이나 질척질척 비가 오는 날이면 이상한 비명

소리를 내며 그 노파는 마을을 쏘다니곤 했다. 지

금은 마을 밖, 오솔길 모퉁이에 잡초 우거진 임자

없는 무덤 하나가 거의 헐린 채로 비를 맞고 있다.


나는 <가을비>를 소재로 한 이 시에서 문득 이와 같은 영상을 더듬었던 것이다.

하나의 소재만을 가지고 시가 되지는 않는다 그 소재의 행위와 시인의 내적 교감과 교섭이 체

험적 근거로 이루어 질 때 곧 바로 시와 연결되어지는 것이 나의 예다.

그런 교감과 체험적 근거가 곧바로 시가 되어 나오지 않는다 할지라도 시인은 오래 참고 견디

어야 할 것이다.


나의 경우 하나의 소재를 접하게 되면 거의 한달 이건 두 달이건 시로써 마무리가 되기까지에

는 그 것에 매달려 악전고투 지극히 오랫동안을 신음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가령 그 소재에 의해서 문득 첫 행이 생각나서 수첩에 적어 두고 오래 오래 다음 행을 찾아

시적 에스프리에 접근하려고 무던히 애를 쓰게 된다. 시의 소재란 시적 애스프리를 일깨우는

동기유발의 가장 원초적인 대상이 되므로 소재의 빈곤은 시의 빈곤과 직결될 수밖에 없다."


인용이 좀 장황하였습니다만, 선배들의 이야기는 아무 곳에서나 들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어

려운 이론보다도 훨씬 우리들에게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좋은 시들을 읽으며 오늘 강의도 마치겠습니다.

송재학님의 <흰 뺨 검둥오리>입니다.


그 새들은 흰 뺨이란 영혼을 가졌네

거미줄에 매달린 표정 없는 고요에서 흰색까지

이 늪지에선 흔하디흔한 맑음의 비유지만

또 흰색은 지느러미 달고 어디나 갸웃거리지

흰 뺨 검둥오리가 퍼들껑 물을 박차고 비상할 때

날개 소리는 내 몸 속에서도 들리네

검은 부리의 새떼로 늪은 지금 부화 중,

열 마리 스무 마리 흰 뺨 검둥오리가 날아오르면

날개의 눈부신 흰색으로 늪은 홀가분해져서

장자를 읽지 않아도 새들은 십만 리쯤 치솟는다네

흰 뺨 검둥오리가 떠메고 가는 것이 이 늪을 포함해서

반쯤은 내 영혼이리라

지금 늪은 산산조각나기 위해 팽팽한 거울,

수면은 그 모든 것에 일일이 구겨지다가 반듯해지네

뒤돌아서서 논우렁이 잡던 사람들 둘레로

다시 시작하는 동심원은

아주 가볍다네


오세영님의 <홈페이지>를 읽어보겠습니다.

우리가 늘 사용하고 있는 홈페이지도 이렇게

시의 소재가 되는구나하는 것을 읽으시기 바랍니다.


패스워드를 바꾸어버렸구나

두드려도 이미 열리지 않는 문,

길은 아무데도 있다는데

길은 이제

막혀버렸다. 제 방으로 가는 길......

잠시 채팅을 즐기는 동안

어느 해커가 훔쳐 달아나버렸을까,

그 아름다웠던 날의 황홀.

간신히 피시 투우울에 들어가

지워진 파일을 되살리려 애쓰지만

떠오르는 명령어는 "에러"다.

누구의 집인가.

잠시 윈도우를 들여다본다.

까르르 피는 한 가족의 웃음꽃과

밖으로 울리는 한 소절의

피아노 화음.

너인 듯 네가 아니다.

찾아도 찾아도 얽히기만 한

인터넷 경로,

그 어느 빈 방 창밑에 앉아

잃어버린 첫사랑을 탐색한다.

귀뚜라미 우는 가을밤에 홀로

컴퓨터 키보드를 두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