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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2012년 봄호 신인문학상 단편소설 당선작 이연초 (생오지)

법정 2012. 2. 25. 20:27

 

 

미명(未名)



1

벚꽃이 날린다. 분분히 날리는 그것들은 울긋불긋한 나비 떼 같다. 미술관을 둘러싼 흰 벽도 온통 황금빛으로 분칠되어 있다. 여자는 저도 모르게 카디건을 여민다. 초봄의 숲 속 잔광은 그 눈부심만큼 따사롭지는 않다. 늙은 팽나무를 지나 미술관으로 들어서는 계단 입구에 오늘도 진돗개 한 마리가 석상처럼 앉아 있다. 춘설헌(春雪軒)에서 살았던 그 늙은 개는 미술관이 세워지자 아예 옮겨와서 지낸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개의 눈빛을 여자는 예사롭게 넘기질 못한다. 개는 표정 없는 얼굴에 영겁의 세월을 실은 눈빛을 하고 있다. 짐승으로 태어난 슬픔과 함께 세상살이의 적막과 고독을 다 알아버린 듯한 눈빛. 여자는 외람되게 의재 허백련(毅齎 許百鍊)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러다 문득 집에 있는 신선도의 노인이 떠올랐고, 결국 미봉(美峯)에서 생각이 멈췄다.

남자가 낡은 병풍을 집 안으로 들여온 것은 지난 연말의 일이었다.

"얼른 받아들지 않고 뭐해?"

여자는 손질 중이던 배내옷을 그대로 던져둔 채 일어섰다. 얼떨결에 병풍을 받아 안았다. 원목으로 깐 새 거실바닥이 지지직 긁혔다. 병풍 모서리의 경첩이 느슨하게 풀려 있었다. 여자는 병풍 한쪽을 열었다가 화급히 닫았다. 먼지가 일었다. 압화된 나방 두 마리가 파르라니 날아오를 것 같았다. 여자는 이마를 찌푸렸다.

"저 병풍, 어디서 난 거야?"

설거지를 마친 여자는 매일 그렇듯 아홉 시 저녁뉴스 앞에 앉았다. 3인용 등가구 소파에 나란히 앉아 텔레비전을 바라보는 두 사람을 두고 누군가는 십자매 한 쌍 같다고 했다. 아무려나.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좋은, 혹은 무슨 말을 해도 상관없는 그 시간대가 여자는 좋았다.

두 사람은 TV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수십만 마리의 닭들을 매립하는 장면이 방영되고 있었다. 흰 방역복을 입은 무리들이 당장이라도 화면 밖으로 걸어 나와 거실 가득 독가스라도 살포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자식처럼 애지중지 키운 닭들을 하루아침에 살처분해 매몰하니 뭐가 뭔지 모르겠어라우.”양계농인의 시커먼 두 눈덩이에서는 당장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여자는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돌연 마음이 서늘해졌다. 이 순간이 아니라도 곧잘 온몸에 서늘한 기운이 엄습해오곤 했다. 그럴 때면 가슴 저편에서 사각사각 도둑쥐들이 쏠아대는 소리가 들리면서 이내 후두두둑 가슴이 쓰리기 시작했다. 반듯하게 개켜진 배내옷더미가 마침 눈처럼 새하얗게 빛났다. 여자는 옷바구니를 장롱 깊숙이 밀어놓고 되돌아와 앉았다.

“저 먼지 좀 봐. 속을 들여다보고나 가져왔어? 나방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걸……. 어쩔 셈이야?”

여자는 자신의 어조가 날카로워진 것을 느낀다.

"어, 그 청년들 말야. 집값 대신 저걸 남겨두었더라고."

어쩐지. 코딱지만 한 집이라도 그렇게 처리하는 게 아니다 싶었다. 계약 날에 약정액의 절반을 마련해들고 사정해왔을 때, 이게 아닌데 싶었다. 정작 중도금 지불 날짜가 되었을 때는 돈을 마련할 때까지만 월세로 살겠다고 다시 번복해왔다. 그때 거절했어야 했다. 소년가장으로 자라났다는 젊은 형제는 이번에야 말로 자신들만의 집을 꼭 소유해보고 싶다했다. 남편은 그 두 청년의 눈이 너무 맑고 진솔해보여 거절할 수 없다며, 누구라도 그 상황에서 그리 야박하게 굴 수는 없는 거라고 못을 박았다. 완불할 때까지 등기명의만 넘겨주지 않으면 된다며 매매계약서를 여자에게 건넸다. 결국 새 집의 융자를 마저 꺼보려던 계획은 이제 한참 지지부진해질 거였다.

17평 주공아파트를 송두리째 넘겨받은 두 청년은 정작 반년째 월세마저 밀렸다. 정말 죄송합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다음 달엔……. 청년의 통화는 매번 절박했고 공손했다. 그 사정 조의 통화로 이냥저냥 넘겨왔지만 지난달부터 소식이 끊겼다. 그들의 전화마저 사용 중지가 되어 있었다. 오늘 출장 뒤끝에 남편은 세든 청년을 찾아간 모양이었다.

"나도 모르겠어. 저걸 왜 아무 생각 없이 가져올 생각을 했는지. 뭐에 홀린 것 같았어. 고녀석들, 그 집구석 어디에다 저런 병풍을 모셔놓고 살았던 것인지 알 수 없더라고. 우리가 물려준 커튼이며 식탁, 가스렌지, 살림살이가 하나도 안 변했더라고. 뭐에 홀린 기분이라니깐. 제 물건만 쏙 빼간 모양이야. 제 놈들의 흔적은 하나도 남겨놓지 않았다니까."

망연한 표정을 짓던 남편은 벌떡 일어나더니 노란 쪽지 하나를 꺼내들었다.

‘죄송합니다. 집값 대신 이 병풍을 받아주십시오.’

노란 포스트잇이 병풍 상단에 붙어 있더란다. 남편은 웬일인지 그만 그걸 들고 나와 차에 실었다는 것. 눈에 잘 띄게 거실 중앙 벽면에 세워 둔 병풍을 그는 마치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처럼 끌어내왔다는 것이다.

"또 모르지. 정말 값나가는 골동품일 수도?"

남편의 표정은 잠시 몽롱해졌다. 횡재가 굴러들 것 같은 막연한 기대감과 정체불명의 바깥물건을 함부로 집안에 들여왔다는 꺼림칙함, 착하게만 보이던 두 청년의 속사정에 대한 궁금증 등으로 그의 표정은 복잡했다. 여자는 물걸레를 챙겨 들었다. 해묵은 먼지가 유골 가루 같았다. 나방이 되지 못한 애벌레 몇 개를 마저 훔쳐내고 병풍을 펼쳤다. 텔레비전으로부터 시야를 차단당한 남편이 마지못해 일어났다.

"허, 참! 글씨 한번 멋있다."

앞면의 신선도는 보는 둥 마는 둥, 곧장 뒤로 돌아가서 하는 소리였다. 글씨라도 볼 줄 아는 사람처럼 한 마디 내뱉은 것은 그냥 소파로 되돌아 앉기가 멋쩍어서일 것이다. 괜한 짓 했나, 지레 너스레를 떨어보는 것이리라.

여자는 열 폭의 신선도를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누렇게 변색된 화폭은 오랜 세월을 품고 있었다. 화제시(畵題詩)는 흘려 쓴 서체여서 전혀 읽어낼 수 없었다. 두어 걸음 뒤로 물러섰다. 가만 보니 두 사람이었다. 흰 수염에 흰 머리의 사내와 검은 수염에 검은 머리, 두 사람이 병풍 한 면씩을 번갈아 차지하고 있었다. 여자는 병풍 뒤로 돌아가 글씨 앞에 섰다. 낙화무언? ‘떨어질 락(落)’과 ‘사랑 자(慈)’ 사이에서 갈팡거려졌다. 그녀는 이내 읽기를 포기하고 남편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저걸 어쩐다지?"

남편 또한 애당초 그 물건을 가져온 동기를 잊어버린 듯했다.

“일단 한쪽에 치워두고 천천히 생각하자구.”



2

아내는 또 외출이다. 식탁에 놓인 메모지를 발견한 남자의 미간이 잠시 흐려진다. <잠깐 증심사(證心寺)엘 다녀올게요. 금방 돌아와 저녁 차릴게…> 이번엔 짐짓 성의를 부려 메모를 남기고 나갔다.

역정이 났다. 베란다엔 봄꽃들이 한창이지만, 누렇게 바랜 해묵은 병풍이 실내 가득 어둠을 드리우고 있다. 한쪽 모퉁이에 다소곳이 접혀진 채 세워져 있지만 분명 그것은 집안 전체에 빛을 차단하고 음산한 기운을 퍼뜨리고 있다. 그 증거가 아내에게서 미소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앙증맞은 배내옷을 들여다보며 손질하던 아내의  표정에는 꿈꾸는 듯한 미소가 어리곤 했다.

요즘 아내는 배내옷바구니를 꺼내들지 않는다. 대신 한밤중에도 컴퓨터 앞에 종종 앉아 있곤 했다. 혹은 병풍 앞에서 깊은 수렁에 잠긴 듯 멍한 표정을 지었다. 뭔가 석연찮은 구석이 있었다.

남자는 담배를 입에 문다. 타들어가는 손끝의 재가 허망해진다. 담배까지 끊었던 지난날들이 새삼 씁쓸하다. 늦깎이 결혼으로 10여 년을 함께 살았지만 요즘처럼 아내가 멀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딱 한 번 생긴 아이는 아내의 뱃속에서 겨우 석 달을 살다 갔다. 인연이 없었던 거라고 애써 자위했지만 남자의 실망감 또한 적다할 수 없었다. 주위에서는 넌지시 시험관아기나 입양 이야기를 내비쳤지만, 그것은 아내가 먼저 꺼내야 할 이야기였다. 남자는 어쩐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내가 벼랑 끝에 몰린 상처받은 짐승처럼 느껴졌다. 더 이상 내몰아서는 안 된다는 것. 남자에게 그것은 아직 건장한 사내로서 지켜야 할 남편의 덕목이었다.

정작 참을 수 없는 것은 점점 아내가 멀어진다는 느낌이었다. 아무래도 쓸데없는 물건을 집안으로 끌어들인 것만 같았다. 아내의 외출이 잦아졌다. 집 안에 소품처럼 붙박여 있던 여자였다. 그런 그녀가 얼마 전에는 보성까지 기차를 타고 다녀왔다 했다.

“도대체 거기까진 뭐 하러 갔어? 그렇게 가고 싶었다면 주말에 같이 가도 되잖아.”

“그냥 설주 선생의 고향마을까지만 다녀왔어. 복사꽃이랑 매화, 산수유……. 꽃구경만 하고 왔어.”

아내는 그만 거기서 입을 다물었다. 무얼 찾고 싶었던 걸까. 남자는 아내의 의식이 어디로 뻗어가고 있는지 짐작할 수 없다. 엊그제는 목포를 다녀왔다고 했다. 목포라면, 남농 허건 선생을 찾았으리라. 아내의 행보는 마치 수맥을 찾아 움직이는 나무뿌리 같다. 부쩍 늘어난 아내 얼굴의 주름살을 보았던 탓인지, 남자는 그 수맥이 쉽게 정체를 드러내지 않을 것 같아 덩달아 우울했다.

남자는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창가에 세워진 병풍 앞으로 다가선다.

"마치 문지기 같군. 좌청룡 우백호라."

검정 병풍은 맞은편 흰 에어컨과 쌍벽을 이루는 형세다. 키도 비슷했다. 흑백과 신구(新舊)의 대조가 확연히 부조화스럽다. 어떻게 겨울 내내 그 자리 그대로 지키고 있었는지, 커튼 끈이 걸린 구석진 자리에 세워진 병풍이 새삼 불가사의하기만 하다. 진작 내다 버려야 했는데…….

그러니까 보름 전쯤, 아내는 확실히 병풍을 없애려 했다. 비가 한차례 흩뿌리고 난 늦삼월의 오후 무렵이었다. 남자의 퇴근시간에 맞춰 아내가 혼자 병풍을 끌어내왔다.

"어쩌려고?"

그동안 남자는 병풍에 일체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괜히 가져왔다는 후회도 내심 일었다. 그걸 확인해서 어쩔 것인가.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판명되면 쓰레기더미로 넘길 것인가. 젊은 애들에게 속은 것인가. 혹, 값나가는 물건이라면 또 어쩔 것인가. 병풍의 가치를 따져들지 않았기에 그들을 찾으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었다.

"언제까지 거실에 놔둘 수는 없잖아? 처분해야지, 뭐."

아내는 안전띠를 매며 뾰로통하게 대답했다.

마침 집 근처 농협 우측 모서리에 작은 표구점이 있었다. 먼지 낀 유리문을 밀고 들어서자 주인여자가 쪽방 문턱을 내려서다 말고 고개를 치켜들었다. 실내는 각종 액자와 화구들로 어수선해서, 병풍을 조금씩 펼쳐보는 수밖에 없었다.

"어머, 신선도네. 비단에다 그렸군요. 그림 상태가 좋은 걸요. 하나도 훼손되지 않았어요. 미봉이라, 잘 모르겠지만 차암 좋다. 이런 인물화는 아무나 잘 그리지 못하는 것인데, 좋군요. 이거 박물관으로 가야 할 물건 같아요."

무표정하던 주인여자가 갑자기 반색을 했다.

"이거 설주 선생 글씨 아냐? 틀림없어요. 이거 보세요."

병풍 뒤로 돌아선 주인여자는 네모난 붉은 낙관에다 돋보기를 들이댔다.

"글씨가 이렇게 힘찬 걸 보면 젊은 시절에 쓰신 걸까? 설주 송운회 선생은 아주 오래 살다 가셨어요. 이제는 돌아가신지 꽤 됐지만요."

귀밑머리가 하얀, 오십 줄 중턱의 주인여자 얼굴이 환해지는 것을 남자는 경이롭게 바라봤다.

"이런 건 가보로 물리세요. 얼마나 보기 좋아요? 표구나 다시 해서 잘 보관하세요. 키를 더 키워야겠군요. 옛날 병풍은 다 이렇게 낮고 얇지요."

주인여자는 아쉬운 듯 글씨와 그림을 번갈아가며 들여다봤다.

"미봉 송수근? 처음 들어보는 이름인데."

그녀는 인명사전을 들춰보며 호기심을 감추지 못했다. 순수한 궁금증이었다. 허투루 보이는 외모와 달리 제법 깐깐한 풍취를 지니고 있었다.

"이럴 땐 바깥양반이 있었으면 좋을 텐데……. 난 잘 몰라요, 어깨너머로 배운 것뿐. 그런데 이렇게 좋은 그림을 보면 저는 소름이 쫙 끼쳐요. 얼마나 떨리는지 몰라요. 이런 그림을 만나면 하루 종일 마음이 둥둥 뜨고 행복해져요."

주인여자의 표정이 한층 순하게 변해갔다.

"이리 와 볼래요?"

낡은 철제 탁자 바로 옆에 흰 회벽의 아치형 입구가 있었다. 두 평쯤 되는 그곳은 그림과 글씨로 가득했다. 판매목적인 모사품도 반절쯤 되어 보였다.

"저 자수품 좀 보세요. 사람 손으로 해놓았다고는 믿기지 않아요. 저렇게 작은 얼굴 속에 표정들이 각기 다 달라요."

북한의 옛 풍속도 같은 대형액자 속에는 사계절을 모두 연출하느라 무수한 사람들이 동원되어 있었다. 얼굴은 좁쌀만 한 크기여서 그 속에 무슨 표정들이 각기 다르게 새겨져 있다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너무 예뻐서 저번 날 무리해서 사들였어요. 전 가슴이 답답하면 이곳에 들어와요. 얼마나 마음이 편안해지는지 몰라요. 바깥양반은 자꾸 눈을 딴 데로 돌리는데, 난 가슴이 아파요. 허지만 어떡할 거예요? 애들 밑으로는 아직 한없이 돈이 들어가고……. 시내 화랑도 지금 몇이나 문을 닫았는지 몰라요. 요즘은 그림을 찾는 사람도, 표구나 액자를 맡기려 드는 사람도 없어요."

주인여자는 올이 술술 풀리듯 마음이 풀리는 모양이었다. 다시 올게요. 갑자기 아내가 남자의 손목을 끌어냈다.

그때, 넘겨줘버려야 했는데. 남자는 입맛이 쓰다. 공복감이 담배를 밀어낸다.



등산로의 비탈을 그대로 살려 지은 까닭에 미술관 관람은 굽이굽이 산길을 에돌아 걷는 것 같다. 지하와 1층의 유리벽들은 병풍처럼 세로로 길게 나뉘어 마치 무등산 자락을 따라 걷는 기분이 든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게 지어졌다는 이 미술관은 의재 선생의 마음에도 쏙 들 것 같다. 하고보면 그는 대단히 복 받은 분이다. 그것이 여자에게 묘한 질투심을 불러일으킨다. 누구는 죽어서도 이렇게 아름다운 집을 짓고 세세손손 기품을 품어내는가.

여자는 집에 있는 초라한 병풍의 노인을 생각한다. 미봉이라는 작가의 흔적을 찾을 길 없는 여자의 마음은 허전했다. 진도 운림산방을 다녀와서도 그랬다. 예술의 품새가 크고 깊을수록 그 울림과 반향이 더 클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일 텐데도, 집에 돌아오면 그녀의 가슴은 참혹해졌다. 묘한 일이었다. 의재 선생의 행적을 하나하나 알아갈수록, 문인으로서의 선생의 기풍과 정신을 이해할수록, 그녀 가슴의 한쪽 모퉁이는 더욱 허허로워졌다.  

그날, 표구점에서 여자는 돌연 마음이 바뀌었다. 십 년은 연상으로 보이는 표구점 여자의 표정 변화가 묘하게도 여자의 마음을 돌려세웠다. 병풍을 헌 옷가지 버리듯 쉽게 처리해선 안 될 것 같았다.

그날 밤, 인터넷에서 설주 선생에 대한 정보 한 토막을 발견한 여자의 가슴은 설레기 시작했다. 고종 11년에 태어나 거의 1세기 가까운 삶을 살다간 탈속웅필(脫俗雄筆)의 대가, 송설주 선생은 서력이나 나이에서 후진들에게 평가받을 수 없다는 자존심과 강직한 성품 탓에 평생 야인으로 남았다 했다. 92세로 임종하기 하루 전까지 88년간 오로지 글씨에만 정진했다는 그 삶의 세계가 그녀의 관심을 끌었다. 소치, 의재, 남농 등과 달리 설주 송운회 선생에 대해 금시초문이라는 사실이 더욱 그녀를 자극했다. 여자는 이 지방 토박이였다. 인근의 보성출신 서예대가를 전혀 몰랐다는 것은 자신의 무지함보다 설주 선생의 익명성 탓이 크다고 스스로 변명했다. 야인으로 자처하여 평생 동안 붓을 들었다는 짤막한 생평에 갑자기 그녀는 알 수 없는 갈증을 느꼈다.

수시로 병풍을 펼쳐놓고 그림처럼 글씨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러면 그 삐침과 내려침의 기상이 생생히 전해져 오곤 했고 알 수 없는 감동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잘 쓴 글씨의 힘이 어떤 것인지는 알지 못했다. 다만 자석에 끌리듯 그녀는 그런 이상한 체험으로 하루하루를 소일했다.

하다 보니 신선도와 글씨의 주인이 같은 “송(宋)"씨임에 신경이 미쳤다. 그리고는 신선도가 두 사람으로 이뤄진 것에 다시 생각이 미치자 여자의 상상은 점점 불붙기 시작했다. 열 폭 화폭을 번갈아가며 차지하고 있는 두 사람. 어쩌면 두 야인은 서로 교분을 나눈 사이가 아니었을까, 한 사람은 그림을 그리고 다른 한 사람은 글씨를 쓴? 추사 김정희와 초의 선사, 정약용 등과 같은 선인들의 교류가 머리에 떠올랐다. 그녀의 궁금증은 미봉 송수근으로 옮아갔다. 

여자는 다시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책자를 찾았다. 남종화, 수묵화, 몰골법, 구륵법……. 낯선 용어를 접하면서 그녀는 차츰 아이의 배내옷 손질을 잊어갔다. 어디에도 미봉 송수근은 그림자도 드리우지 않았지만, 날이 갈수록 병풍에 대한 여자의 집착은 커져갔다.

거실에다 하루 종일 병풍을 펼쳐 놓은 날이 많아졌다. 열 폭 그림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은 갈묵으로 그렸을 성싶은 초가을 정경이었다. 도롱이를 쓴 노인이 배꼽을 드러낸 채 맨발로 미소 짓고 있었다. 그리고는 몇 줄기의 갈대뿐이었다. 그 여백이 편안했다. 가만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 여백 속에 여자 또한 가뭇없이 사라져 들어갈 것 같았다. 

여자는 미술관 3층 모퉁이에 붙박인 듯 섰다.

空山無人 水流花開. (산은 비었고 사람은 없는데 물 흐르고 꽃핀다.)

화려하고 기세 넘치는 모란이 여섯 폭 병풍 속에서 피어나고 있었다. 꽃들은 흐르는 물처럼 시간 위에서 끝없이 피어나고 있었다. 희디흰 천장과 사면의 여백 속에서, 작가도 관람객도 없는 적막 속에서, 꽃은 홀로 피어 흐르고 있었다. 한참을 모란이 만개해있는 그림 앞에 서 있던 여자는 문득 어떤 시선을 느낀다. 고개를 돌리니 왼쪽 벽에 커다란 독수리 한 마리가 형형한 눈빛을 하고 있다. 파도 넘실대는 바다 한가운데 솟아있는 바위 위에서 눈 부릅뜨고 있는 독수리. 전에 없던 그림이었다. 새의 자태는 굳건하고 눈빛은 천하를 호령할 듯 기세등등하다. 그것은 누구의 표상인가. 면면히 흐르는 의재 선생의 혼이 웅혼하고도 뜨겁게 흘러넘친다. 여자는 가슴이 뭉클해진다.



4

아릿해오는 빈속을 달래려고 돌아서던 남자는 빨랫줄에 내걸린 배내옷들을 본다. 언제부터 방치되었는지 만지면 바스러질 듯 바짝 말라있다. 땅거미가 내리는데도 아내는 아직 돌아올 기미가 없다. 주방으로 가려던 남자는 속쓰림도 잊고 잠시 병풍을 펼쳐든다.

  노인은 단정하면서도 어딘지 비루한 느낌이 든다. 민둥머리에 흰 수염을 가슴께로 늘어뜨린 채 바위에 다소곳이 걸터앉은 노인의 눈썹이 유난히 희다. 세 개의 골이 깊게 패인 이마와 부챗살처럼 커다란 두 귀, 웃는 듯 마는 듯한 눈매와 가는 입가, 남자의 시선은 이 모두를 천천히 스치고 지나 무릎 위에 모두어 있는 두 손에 머문다. 여인네의 그것처럼 부드럽고 고운 손. 탱화의 부처 손처럼 개안한 선. 두 손은 금방이라도 움직여 물 흐르듯 흘러 사라져버릴 듯하다. 그에 비해 노인의 후면에 자리한 폭포는 제자리를 완고히 고집하는 것 같다. 절벽을 타고 흘러내리는 물줄기 옆으로 비스듬히 상단만 보이는 노송 한 그루. 그 주변에 점점이 흩뿌려져 있는 분홍 꽃기운은 노인이 앉아 있는 바위 주변까지 내려와 있다.

폭포를 끼고 있는 암벽은 그다지 원근법에 충실하게 그려진 것 같지 않다. 화폭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배경의 산수는 남자의 눈에도 확실히 자연스럽지 않다. 암벽 위 여백의 화제시 여덟 자 중 남자가 알아볼 수 있는 글자라곤 ‘미봉(美峯)’이라는 낙관뿐이다. 아무래도 좋았다. 무엇이 아내를 홀리는 것일까. 백발노인은, 나 그렇게 살았소, 하는 듯 당당히 남자를 맞바라보더니 어느새 먼 산과 구름 쪽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다.

또 하나의 인물은 보다 더 젊은 문인풍의 모습이다. 검은 두건을 쓴 그의 얼굴은 까만 수염과 짙은 눈썹 탓인지 백발노인보다 훨씬 침중한 분위기를 풍긴다. 전반적으로 그는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인상이다. 잎사귀 넓은 나무에 기대어 하늘을 우러르는 그의 표정은 마치 옆의 화폭에 있는 노인이라도 기다리는 듯하다. 미가산수처럼 습윤하고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그것은 나머지 아홉 폭의 수묵담채들과 터치가 도드라져 있다.

처음으로 진지하게 병풍을 바라보며 남자는 아내를 떠올린다. 열 폭 병풍을 덮고 나서도 미적거리며 허전해하던 아내였다. 뭔가 분명한 일이 있어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가 정작 돌아오는 골목 어귀에서야 아침의 그 출발길이 떠오른 사람처럼, 혹은 뭔가 귀한 것을 돌아오는 길바닥에 빠트리고 온 사람처럼, 그렇게 허퉁한 기색이었다.

무엇이 그렇게 아내를 사로잡은 걸까. 정체를 알 수 없는 아내의 감정. 남자는 자꾸 아내에게서 멀어지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며칠 전, 회식 때문에 자정이 다 돼서 들어온 그에게 아내는 강 부장이라는 자가 다녀간 이야기를 했다. 보성군청 문화관광과에다 문의를 했더니 정통한 분을 소개시켜주더란다. 설주 선생에 관한 인터넷 자료의 유일한 제공처가 바로 그곳이었다. 남자는 그녀의 호기심이 그 정도였나 싶어 놀랐다. 그렇다고 모르는 사람을 집안까지 끌어들일 건 또 뭔가. 남자가 못마땅해 하는 것도 아랑곳 않고 아내는 물어왔다.

“그 청년들을 만나볼 수 없을까.”

“왜? 집값하고 안 맞아 떨어져서? 뭐 하러 그래. 다 지났는데. 오죽하면 그랬겠어?”

“참, 누가 그깟……. 그 병풍에 대해서만 묻고 싶어…….”

“어디로 사라졌는지 찾기도 어렵거니와 설령 만나서 뭐할 거야. 그렇게 궁금해 하면서 그림을 즐기면 더 좋은 거 아냐? 아니면 이제 처분해버리든지.”

담배 한 대를 다시 무는데, 명치끝이 사르르 아파온다. 아내는 아직 돌아올 기미가 없다. 남자는 병풍을 끌어내기 시작한다.



5

“선생은 평생 그림을 그리고서도, ‘나는 실패한 화가다’고 잘라 말하셨소……. 허, 우리 같은 사람은 그저 부끄럽지요. 선생은 마음에 꼭 드는 그림 한 점만 남기고 싶다고 몇 번이고 아쉬워하셨다지요.”

언제 왔는지 반백의 노인 하나가 여자 옆에 서 있다. 기울어가는 햇살이 노인의 얼굴을 반쪽만 비추고 있어, 단둘이 서 있는 넓은 미술관은 다소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언뜻 독백인가 싶게 낮고 작은 목소리가 이어진다.

“말년에 선생은 누워서도 허공에 그림을 그렸지요. 우린 그저 부끄러울 따름이야. 추사는 벼루 열 개를 갈아 뚫었고 천 개의 붓을 망가뜨렸다는데, 하, 나는 평생 벼루 한 개도 뚫지 못했다오.”

세상을 뜨기 하루 전에 큰 붓으로 ‘일필(一必)’이라는 두 글자를 쓰고 미처 낙관을 새기지 못한 채 자리에 누웠다던 설주 선생이 생각났다. “글을 쓸 수 없는 날이 내 생명이 다하는 날”이라 했다는 그의 모습이 오버랩 되었다. 어쩌면 이름 없는 작가들도 그렇게 살다 가지 않았을까. 평생 가난하게 살면서 이름 한 자 얻지 못하고 사라질지라도, 모두들 그렇게 애틋하고 절박하게 살다가지 않았을까. 여자의 가슴이 뜨거워졌다.

“혹시 미봉 송수근이라는 이름을 들어보신 적이 있는지요?”

저도 모르는 새 여자의 가슴 깊숙한 곳에서 저절로 새어나온 질문이었다.

“미봉 송수근이라 하였소? 글쎄올시다. 재야에 묻힌 훌륭한 화가들과 문인들이 참으로 많지요.”

무심결에 속내를 비친 여자는 새삼스럽게 실망한다. 며칠 전에 체념한 일이었다.  그동안, 화랑가를 돌며 미봉에 대해 알아보았지만 허사였다. 한결같이 설주 선생의 글씨에만 관심을 보였다. 이름을 얻지 못한 화가는 그렇게 세인들의 호기심 한 자락도 얻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송설주 선생에 대해 정통하다는 강 부장을 만난 다음 여자는 그만 신선도의 작가를 놓아주기로 마음먹었던 것이다.

“설주 송운회 선생의 글씨란 말이죠. 제가 한번 봤으면 싶은데요.”

굵은 바리톤 음색에 조급증이 실려 있었다.

“직접 와주신다면 저로선 더욱 고맙지요.”

여자는 그의 방문이 그렇게 일사천리로 이뤄질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긴장되었다. 최후통첩을 대하는 심정이었다.

“죄송합니다. 별것도 아닌 걸 가지고 이렇게 수선스럽게 해 드려서…….”

“아니, 별것이 아니라니요. 설주 선생 글씨를 가지고 별거 아니라면 안 되지요.”

여자의 송구스러움을 단칼로 베면서 그는 선걸음에 병풍으로 달려들었다.

“아, 맞습니다. 설주 선생 글씨가 틀림없군요.”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보는 그의 입에서, 참 좋다! 신음에 가까운 감탄이 새어났다.

“설주 선생이 60대에 쓰신 것 같습니다. 의재 선생은 잘 아시지오? 의재 허백련 선생도 설주 선생을 존경했지요. 선생 회갑 때 의재 선생도 오셨는데, 그때만 해도 ‘허군’하고 선생이 부르셨다지요. 낙화무언(洛花無言)이라, 지는 꽃은 말이 없고, 담인여국(淡人如菊), 담담하기는 국화와 같이 하여라…….”

여자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  

“이 그림은 어떤가요?”

마침내 그가 미봉의 그림 앞에 섰다.

“신선도군요. 미봉이라, 잘 모르겠는걸요.”

미간을 찌푸리더니 간단히 고개를 내저었다.

“제가 글씨는 조금 배웠습니다만, 그림은 모르겠군요.” 

신선도에는 간단한 일별 뿐, 그의 시선은 다시 글씨로 되돌아가버렸다. 여자의 궁금증은 풀리지 않았다.

“혹시 설주 선생과 이 그림을 그린 미봉과는 무슨 연관이 없을까요? 두 분이 같은 성씨를 갖고 있어서 혹시나 하구요.”

“아니, 아무 관계가 없을 듯싶군요. ‘근’자라면 송운회 선생과 항렬이 전혀 안 맞아요. 내가 그 집안 내력을 꿰고 있는데 전혀 무관합니다. 그냥 우연일 뿐이어요. 한마디 더 해 드릴까요? 이 낙관을 보세요. 마구잡이로 찍혀 있어요. 아마 설주 선생 몰래 마음대로 찍어버린 것 같아요. 전혀 낙관 찍는 법도 모르는 자의 솜씨지요.”

그는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그로서는 볼 것을 다 보았다는, 한달음에 달려온 자신의 열기를 이제 다 식혔다는 표정이었다. 비로소 여자는 매실차 한잔을 내밀 생각이 났다. 그는 사양했다. 거실에 펼쳐놓은 병풍 앞에 선 채로 그는 말을 이었다.

“여기 자료를 뽑아왔으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군요. 그럼 저는 이만.”

인터넷에서 찾아본 자료 그대로였다. 그녀는 조급하게 다시 말문을 열었다.

“혹시 그분 일화에 관한 또 다른 자료는 없을까요?”

“문집이 있긴 하지만 다 한문으로 되어 있어서…….”

한문이라. 여자는 이쯤에서 흥을 잃었다. 더 매달려 캐고 캐어도 미봉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왠지 구차하게 느껴졌다.

땅거미 진 창밖 어스름이 실내로 스멀스멀 잠입해 들어왔다. 검은 병풍을 거실 가득 펼쳐놓은 채 여자는 잠시 허탈하게 서 있었다. 미봉의 정체를 왜 그토록 궁금해 했던 것일까. 병풍의 값어치를 알고 싶었던 것은 이미 지나간 일이었다. 야인으로서의 설주 선생의 삶이 그녀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면, 미봉은 더했다. 설주 선생이 야인으로 살기를 자처하여 구십 평생을 글씨에 몰두했다면, 신선도의 작가도 의당 그랬을 것 같았다. 헌대 누구도 일별하지 않는다는 것이 속상했다. 소수의 입에서 이름 한 자라도 회자되기를 그녀는 바랐다. 그것이 공평하다고 생각했다.

어느 머슴 하나가 돌연 뇌리에 떠올랐다. 설주 선생 몰래 낙관을 찍어 글씨를 간직했을 머슴의 심정이 떠올랐다. 그는 하마 전면에는 신선도를, 후면에는 글씨를 펼쳐놓고 즐겼을까. 어쩌면 자식 혼수품으로 향유하게 하고 싶었을까? 혹은 단지 탁주 한 사발이 아쉬워서 그리했을까……. 

망연히 제 생각에 빠져든 여자를 지그시 지켜보던 노인이 품에서 책을 하나 꺼내 든다.

“이 책 한 번 보시려우? 돌려줄 필요 없어요, 난 다 읽었으니. 보아하니 이런 쪽에 관심이 있는 모양이니, 고마운 일이지요. 요즘 같은 세상에.”

관람객이 없는 텅 빈 미술관이 못내 섭섭한 듯 노인은 시선을 창밖으로 돌린다.

“하, 참 좋다. 저 초록을 보시오. 초록이라고 다 같은 초록이 아니라오. 이맘때 초록은 꽃보다 더 이쁠 때죠. 금방 있으면 초록이 다 한가지로 변할 테니 지금 많이 봐두시구랴.”

그러고 보니 창밖의 초록은 저마다 농담이 달라 가지각각의 온갖 초록이 모여든 것 같다. 4월의 연초록을 조금이라도 더디 보내고 싶어하는 노인의 아쉬움이 손에 잡힐 것만 같다.

여자는 책의 표지를 점자를 읽듯 어루만져본다. <삶은 예술과 경쟁하지 않는다.> 마치 잠언 같은 제목이다.

“삶이 예술과 경쟁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난 이제야 깨달았소. 초록 하나도 서로 같지 않으면서 어느새 한 초록으로 숲을 이루는 저 무리들의 나무들을 보오. 삶과 예술이 경쟁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이 황혼에 이르러서야 알 것 같으니, 이 늙은이의 아둔함이란 어쩔 수가 없단 말이오.”

노인은 끊임없이 회한과 화해를 되풀이하는 모양이었다. 울고 웃는 노인의 내면이 보이는 것 같아 여자는 민망하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경이감으로 변한다. 저 노년에 맑은 물처럼 속을 내비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허위와 가식을 모르는 담박한 노인 같다.

삶은 예술과 경쟁하지 않는다고? 여자는 새삼 노인을 바라본다. 황토색 벙거지 등산모만 빼면 어딘가 낯익었다. 미소 짓는 듯 마는 듯한 행인형(杏仁形)의 둥근 눈매와 가는 입술, 얼굴 곳곳에 피어난 엄지만한 저승꽃들마저 자연스러운. 아아, 그는 다름 아닌 신선도의 노인이었다. 구름 위의 신선이 아니라 맨발에 배꼽 드러내놓고 있는 미봉 얼굴. 문득 그녀는 아래층에서 방금 보았던 의재 선생의 사진이 떠올랐다. 얼굴 여기저기 저승꽃이 피었지만, 눈빛만은 형형히 살아 흰 수염을 날리며 대숲 길을 훠이훠이 걷고 있는 고인의 생전 모습이었다. 소치와 남농과 설주의 얼굴이 떠올랐다. 설주를 흠모하는 한 머슴이 떠올랐고 연이어 미봉의 모습도 떠올랐다. 미봉은, 그 모든 사람들의 조합으로 태어나고 있었다. 눈앞의 노인, 그가 또 하나의 미봉이었다.


기우는 햇살 자락에 간지럼 타듯 아기가 발가락을 꼼지락거린다. 연두부처럼 희고 부드러워 보이는 얼굴, 입에 넣고 살살 핥아보고 싶게 유혹적인 두 주먹과 앙증스런 발가락. 여자는 무심한 듯 슬쩍 훔쳐보고는 얼른 눈길을 거둔다.

산벚나무 너머로 노을이 흩어지고 있었다. 물오른 리기다소나무림과 편백림, 삼나무림과 사시나무림, 그 밖에 각종 수종들이 어우러진 무등산을 뒤돌아본 여자의 눈길은 다시 유모차로 내려온다. 빨강, 노랑, 파랑. 삼원색이 도드라진 유모차 손잡이에 검정 비닐봉지 하나가 대롱거린다. 여자를 향해 새댁이 고개를 까닥한다. 콩나물 꼭대기가 두엇 비치던 검정 봉지가 푸른 철재 대문 속으로 쏘옥 사라진다. ‘동동주’와 ‘도토리묵’이 커다랗게 써진 낡은 가게 유리문 옆에 숨듯 들어가 있는 푸른 대문. 여자는 잠시 걸음을 멈춘다. 사라진 아기의 젖내가 맴돌고 있다.

이제, 괜찮아.

의재로(毅齎路)를 따라 걸어 나오는 여자의 가슴에 찰랑찰랑 잔물결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녹차 밭과 대숲이 노을 속에서 푸르게 돋을새김했다. <끝>


[당선소감] 이연초

 

 

미명(未名), 이 작품은 내게 ‘미명(未明)’이기도 했다. 채 날지 못한 어린 새, 아니 아직 부화하지 못한 그것을 나는 무작정 등 떠민 비정한 에미였다. 투고했을 때의 심정이 그랬다. 더 보듬고 만져줘야 했는데 내 인내와 역량이 모자랐다. 그래서, 막상 당선소식을 받았을 때 내 심정은 꽤 어정쩡했다. 기뻐해도 되는가…….

작품 속 화자는 화해를 하지만 현실의 나는 아직 화해할 수 없다. 어쩌면 화해하지 못하는, 그리고 하고 싶지 않는 또 하나의 내가 있어서 이렇게 미욱한 소설을 붙들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나의 이 졸고는 세상의 모든 무명, 익명의 작가들, 그리고 세상과 불화하는 착한 사람들에게 바치는 헌사이다.

잘 날지 못한 미숙한 어린 새에게 둥지를 내어준 《계간웹북》에 감사드린다. 웹(Web)…, 그러고 보니 둥근 둥지 같은 어감이다. 따뜻하다. 용기를 내어 세상의 복잡한 그물망(web) 속에 한 발 더 내딛어보려 한다.

마지막으로, 내게 당선 소식을 전해주신 분께 고마움을 밝힌다.

“아, 여자 분이신가요?”

“왜요? 여자면 안 되나요?”

“그게 아니라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이 다 남자인 줄로 알았습니다.”

내 이름이 그렇게 남자이름 같지도 않거니와 소설 또한 여성화자 중심이건만, 어떤 연유로…?

그런데 그 통화는 나를 무척 기운 나게 했다. 혹 내 안의 다중인물이 내 소설의 경계를 넓혀주지는 않을까, 잔뜩 소설쓰기에 위축된 나는 그렇게 사소한 것에서도 위안을 받는다. 그리고 꿈꾸기를, 부디 내 소설이 나같이 소심한 이들에게 (위의 통화처럼) 예기치 않은 위안거리가 되었으면!

  

이연초 : 2011년 제3회 목포문학상 소설 신인상

 

성실성과 진정성의 감동

 

 

                                                                                          종합심사평  조향순



이번에 선정된 작품들은 글을 쓴 사람들의 성실함과 진정성이 돋보였다.

모든 일에 다 그러하겠지만, 글을 씀에도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문제다. 성실함과 진정성은 감동과 무관하지 않다.


물론 글을 쓰는 끼나 재주가 중요하지만, 진정성과 성실함의 인성이 갖춰지지 않으면 독자들을 그리 유쾌하게 만들지 못할 뿐만 아니라 어쩌면 공해가 될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글을 쓰는 다른 이들에게 누가 될 수도 있다. 게다가 글은 굉장한 전염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진정성과 성실함을 바탕으로 한 건강한 글을 생산한다는 것은 바람직한 사회에 이바지하는 길도 되겠다.


 

소설에서는 '미스 갈라의 겨울비'와 '미명(未名)'이 끝까지 남았다. '미스 갈라의 겨울비'는 문장 자체가 잘 읽혀지고, 재미있고, 우리의 법이 여러 가지 제약을 들어 그녀를 지켜주지 못함이 찡한 울림까지 주었다. 그러나 너무 긴장해서 잘 쓰려고 하다보면 작위적인 흠이 거슬리기도 한다. 가끔씩 정확하지 않는 낱말 사용이 눈에 띄기도 했다. 그리고 상식은 글쓰기의 적이기도 하지만 바탕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참고로 삼았으면 한다. 다른 작품까지 아울러 읽어보면서 이 분은 끝까지 글을 쓸 사람이라는 확신을 했다.

 

'미명(未名)'은 오랜 습작의 경험을 짐작할 수 있는 문장으로 하여 참 편안하게 읽었다. 묵직하고 조용한 내용이라 지루하거나 부담을 줄 수도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단숨에 읽었다. 이 흡인력이 바로 작가적 역량이다. 기초가 충분히 다져져 있으니 이젠 근사한 집만 척척 지으면 되겠다. 조금 욕심을 부리자면 '조용함' 가운데서도 가끔씩 움직이는 소리, 깨우는 소리가 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조금 다른 분위기의 글로 영역을 넓혀봄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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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 12.02.16. 11:53
연초샘 감사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어요.
 
 
이수 12.02.19. 15:28
잘 읽었습니다...연초샘의 조간조간하고 섬세하고 착한 음성이 들리는 것 같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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