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순태(文淳太 1939- ) 소설가. 전남 담양 출생. 전남대 철학과 입학. 숭실대 편입 후 조선대 국문과 졸업. 1973년 <한국문학> 신인상에 “백제의 미소”가 당선되어 등단. 영산강 유역의 방울재와 그 윗마을 노루목을 보편적인 중심 배경으로 하여 사회 변동기에 처한 가난한 서민의 삶과 한을 짙은 아픔으로 표현한다. 대표작으로 “상여 울음”(1975), “무너지는 소리”(1976), “흑산도 갈매기”(1978), “징 소리”(1978-1980 연작소설), “타오르는 강”(1981) 등
*줄거리
'나'는 6 25 때 아버지를 학살한 원수를 갚기 위해 굶주림 속에서 신문팔이를 하는 등 모진 고생과 싸워 끝내 검사가 된다. 그리고 고향으로 내려가게 된다. 아버지를 죽인 '박판돌'은 사장이 되어 있었다. '나'는 그를 앞세우고 지리산 철쭉제가 열리는 세석평전으로 간다. 아버지의 유골을 찾아내자 박판돌은 사라진다.
나중에서야 '나'(박 검사) 앞에 나타난 박판돌에게서 모든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의 어머니 넙순이가 노비로 있을 때, '나'의 조부 박 참봉에게 몸을 빼앗겼다. 박판돌의 부친 박쇠의 아내가 된 후에도 박 참종은 수시로 몸을 빼앗았다. 그러다가 사실이 탄로나자 박쇠를 무마하여 대신 자기네 족보에 올려 준다고 약속하고서 박 참봉의 아들인 '나'의 아버지가 박쇠를 지리산 속으로 끌고가 엽총으로 살해해 버렸다는 것이다.
박판돌로부터 모든 사실을 알게 된 '나'(박 검사)는 내년 철쭉제에서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악수를 청한다.
◈줄거리2◈
주인공은 6. 25때 아버지를 학살한 원수를 갚기 위해, 신문팔이를 하는 등 고학을 하여 끝내 검사가 되어 고향으로 내려온다. 30년전, 어릴 때 아버지가 동네 인민재판에 붙여 죽게 되자 자기 집 머슴이었던 박판돌이 "내 손으로 이놈을 죽이겠다"며 인민군들이 보는 앞에서 지리산 속으로 끌고 가는 것을 본 기억이 생생했다. 박검사가 고향에 내려와 보니 '박판돌'은 박검사의 아버지가 운영하던 사료공장을 차지하고 사장이 되어 있었다. 결국 박검사는 먼저 아버지의 유골부터 찾기 위해 그를 앞장 세워 지리산 철쭉제가 열리는 세석평전으로 간다.
드디어 아버지의 유골을 찾은 자리에서 박판돌은 박검사에게 모든 이야기를 털어 놓는다. 그의 어머니 넙순이가 노비로 있을 때 박검사의 조부 박 참봉에게 몸을 빼았겼고, 그 뒤 박판돌의 부친 박 쇠의 아내가 된 후에도 수시로 몸을 빼았었다는 것이다. 그 당시 이 사실이 탄로나자 박검사의 할아버지 박참봉은 박 쇠를 무마하여 자기네 족보에 올려 준다고 약속하는데, 이때 박검사의 아버지가 박 쇠를 지리산 속으로 끌고가 엽총으로 살해해 버린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로 인하여 판돌이 박검사의 아버지를 살해한 것은 아니었다. 뒤에 안 사실이지만, 판돌이 6.25때 인민재판에 회부되어 죽게된 박검사의 아버지를 일부러 내가 이놈을 죽이곘다며 지리산으로 끌고 갔고 , 빨치산이 된 판돌의 내심은 자기 어머니의 유언대로 자기 아버지를 어디서 죽였는지 그 유골을 찾아 안장시킬 속셈이였다 (사실은 죽일 마음은 없었다-의리) 그런데 세석평전 가까이에서 박검사의 아버지는 높은 바위를 오르다가 그만 미끄러 떨어져 죽었는데, 판돌은 "주인님 미안해요. 잘 주무세요"하며 그 부근에다가 묻어 주었다.
박검사는 ?당신 아버지를 죽인 우리 아버지를 왜 아죽였소?" 바윗덩어리처럼 무겁게 나를 짜누르고 있는 판돌에게 물었다. ?어디 기회가 있어야죠. 또, 같이 살다 보니께 마음이 약해집디다. 사실 지는 도련님 댁 머슴이었제만, 두 어른들 도움도 많이 받고 자랐거든요. 그라고 도련님 식구들과 오래 한솥밥 묵고 살다 보니께 정도 붙고 해서…. 지난 일들을 잊어 버릴까 허는 생각도 납디다. 또 어르신께서 우리 아버지를 쥑이지 않었을지도 모를 일이고….? 판돌이는 잠시 말을 멎고 머리를 무겁게 떨구었다가 천천히 들어올렸다.
?6․25가 터지고 세상이 뒤집히니께 지 마음도 세상과 함께 뒤집힙디다요. 좌우당간에 어르신한테 한번 따져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드만요. 그래서 그 어른을 데리고 지리산으로 들어갔지요. 그러고 우리 아버지를 어디서 죽였느냐고 성질을 냈어요. 사실 그때 지는 어르신네께서 거짓말로라도 지 아버지를 절대 쥑이지 않았다고 말하기를 맘 속으로 얼마나 바랬는지 몰라요. 그란디…그란디 말입니다.(의리)
어르신께서는 지가 그렇게 바랬던 것과는 달리 우리 아버지를 세석평전에서 엽총으로 쏴 쥑였다고 쉽게 고백을 허시고 말았어요. 아버지가 언젠가는 낫으로 어르신의 아버지를 찍어 쥑일 것만 같았고, 또 지 부자가 도련님댁 족보에 오르는 것이 싫어서 쏴 쥑였다고 허드만요. 어르신은 그러면서 보잘것없는 지한테 용서를 빌었어요. 저는 그런 어르신이 싫었던 거지요. 차라리 그때 나헌티 불호령을 치셨더라면 지 마음이 약해져서….? ?그래서 판돌씨도 우리 아버지를 세석평전까지 끌고 와서….? ?어르신께서 지 아버지를 쥑인 곳을 알고 있다고 해서…. 지도 어머니 유언대로 울 아버지 뼈라도 찾을까 허고….?
?그래, 찾았나요?? 나는 판돌이가 그의 아버지 유골을 찾았기를 바라면서 물었다. ?워디가요. 세석평전을 다 뒤져 봤제만 철 늦은 철쭉꽃만 휘너후러져서…. 허갸, 족보에도 못 오른 아버진데 무덤은 남겨서 뭘 하겠어요? 차라리 잘됐지요 머.그까짓 족보 대신에 아직도 우리 조부님 종문서허고 도련님 조부님이 박판돌이라고 지어 주신 지 부자 이름이 적힌 종이 쪽지를 소중히 간직허고 있구만요. 으쩌면 족보보다는 그것이 더 귀한 것일지도 모르제요.?
박판돌로부터 모든 사실을 알게 된 ?나?(박검사)는 내년 철쭉제에서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화해의 악수를 청한다.
*작품 개관
◈ 갈래 : 중편소설, 전후소설
◈ 성격 : 향토적, 기행 문학적 성격, 사실적, 묘사적
◈ 시점 : 1인칭 주인공 시점. (부분적으로는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
◈ 배경 : 한국 전쟁 및 현재(1980년대)까지, 철쭉이 만발한 지리산.
◈ 구성 : 액자식 구성
◈ 표현 및 특징
① 봉건적 신분제도와 6․25전쟁이라는 한국 현대사의 비극으로 인해 빚어진 갈등을 ‘지리산’이라는 공간에서 화해로 이끌고 있으며 민족적 비극을 극복하려는 작가의 의식이 잘 드러나 있다.
② 액자식 구성을 통해 ‘나’와 ‘박판돌’ 사이의 원한 관계를 보여주고 있으며, 그들은 한국사의 비극적 면모를 현재 진행형으로 보여주는 인물들이다.
③ ‘철쭉제’는 ‘철쭉’의 붉은색을 통해 피를 상기시키면서 대를 이어 쌓여 온 한의 정서를 상징하는 한편 ‘제(제사, 축제)는 한과 원한을 푸는 민족적 화해와 용서의 장을 의미하기도 한다.
◈ 제재 : 박판돌의 비극적인 과거
◈ 주제 : 역사의 삶이 몰고 온 비극적인 삶과 그 극복. / 비극적인 역사의 극복과 화해의 모색/ 역사의 질곡(桎梏)이 몰고 온 비극적 삶과 그 극복
*작품 구성
◈ 구성 : 여로형 구성
-발단 : 나의 어린 시절과 고향을 찾은 나
-전개 : 박판돌, 지관, 인부 등과 함께 지리산을 오름
-위기 : 아버지의 유골을 찾은 나
-절정 : 박판돌이 들려 준 나와 그의 가족사
-결말 : 화해를 하는 두 사람
*등장 인물
◈ 나 - 검사. 학살된 아버지로 인해 복수심에 불탐.
◈ 박판돌 - '나'의 집의 머슴. 6.25 때 득세하여 사료 공장 사장이 됨. '나'의 아버지를 죽임.
◈ 남순이 - 박판돌의 어머니. 박쇠와 혼인하기전부터 박참봉의 성적인 노리개였음.
◈ 박쇠 - 박판돌의 아버지. 족보에 이름을 올릴 요랑으로 박 참봉 댁에서 종살이를 함.
◈ 박참봉 - '나'의 할아버지
◈ 박참봉의 아들 - '나'의 아버지. 박쇠를 죽인 사람
<작품의 이해와 감상>
<철쭉제>는 1982년 <물레방아 소리>와 함께 발표된, 그의 대표적 중편 소설이다.
문순태가 문단의 주목을 받는 까닭은 작품의 주제가 우리 민족이 갖는 비극적인 역사의 상황을 깊이 있게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그같은 상황을 삶의 근원으로부터 찾고 있다. 즉, 호남 지방의 특수 지역을 배경으로 향토 문학을 정립해 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 <철쭉제>도 철쭉이 만발한 지리산을 배경으로 산의 온통 붉은 경관과 지역적인 특수성을 고려하여 기행 문학적인 면으로 서술함으로써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그의 작품들은 실향 의식으로 가득 차 있으며, 고향에서의 삶에 깃들인 근원적인 한의 역사를 지극히 비극적으로 묘사하여 작품의 토대를 구축하고 있다.
이러한 비극성이란, 6 25가 갖는 시대적인 상황을 현재까지 연결함으로써 비롯된다. 그래서 그는 비극적인 역사에 대한 문학적 해결 방안으로 사상성에 얽매이지 않고 한국인의 한에서 그 실마리를 찾고 있는 것이다.
<철쭉제>에서 그가 찾은 것은 한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인 비극의 극복이다. 이것은 이질적인 것에서부터 동질성을 회복하려는 전후 문학의 새로운 자각으로 해석되어진다.
◈감상2◈
'철쭉제'는 1982년 '물레방아 소리'와 함께 발표된 문순태의 대표적 중편 소설이다. 그가 문단의 주목을 받는 까닭은 작품의 주제가 우리 민족이 갖는 비극적인 역사의 상황을 깊이 있게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철쭉제'도 산을 온통 붉게 물들인 철쭉을 배경으로 빨치산이 된 머슴과 한 일가의 원한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작품이다.
‘철쭉제’는 6.25전쟁 때 아버지를 죽인 박판돌에게 복수하겠다는 일념으로 검사가 된 ?나?가 박판돌과 함께 지리산 세석평전을 찾아 가는 4박5일간의 여정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서술한 전후 소설이다.
철쭉이 만발한 지리산에서 펼쳐지는 비극적인 가족사는 ?나?와 ?박판돌?사이의 원한 관계를 보여줌과 동시에 봉건적 신분 제도와 6.25 전쟁 등에 얽힌 우리 역사의 비극적 면모를 담아내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철쭉제?의 상징적 의미다. 철쭉의 그 붉은 시각적 이미지는 한(恨)을 상징한다. 그리고 ?제(:제사, 축제)?는 화해와 용서의 의미를 가진다. 즉, ?철쭉제?라는 제목은 불행한 과거로 인한 한을 풀어내는 화해와 용서의 장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러한 비극성이란, 6.25가 갖는 시대적인 상황을 현재까지 연결시켜 비극적인 역사에 대한 문학적 해결방안으로 한국인의 한에서 그 실마리를 찾고 있는 것이다. 그의 작품은 우리 민족이 갖는 비극적인 역사의 상황을 깊이 있게 다루고 있으며 토속적인 향수와 한을 주정조(主情調)로 표현하고 있다.
또 고향을 떠난 지 30년 만에 검사가 되어 돌아온 ?나?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박판돌을 앞세워 아버지의 유골을 찾기 위해 지리산을 오르는 것이었다. 이는 오래 전 박판돌이 자신의 부친 유해를 찾기 위해 ?나?의 아버지를 앞세우고 지리산을 올랐던 것과 흡사하며 이러한 두 인물의 행위는 ?아비 찾기?의 여정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관련작품
◈ 역사적인 질곡(전쟁)이 남긴 상처와 그 극복의 모습
황석영, ‘한씨연대기’ / 문순태 ‘철쭉제’ / 하근찬 ‘수난이대’ / 황순원 ‘목넘이 마을의 개’, ‘너와 나만의 시간’ / 이청준 ‘병신과 머저리’
알아 두기
◈‘철쭉제’의 의미
?철쭉제?는 철쭉의 붉은색을 통해 피의 이미지를 상기시키면서 대를 이어 쌓여 온 한의 정서를 상징하는 한편, 그 한과 원한을 푸는 민족적 화해의 이미지와 용서의 장을 의미하기도 한다
<생각해 볼 문제>
1. 이 작품을 효과적으로 감상하는 태도와 거리가 먼 것은?
① 작가의 생애와 작품의 내용을 견주어 본다.
② 이야기를 하고 있는 박판돌의 심리를 이해한다.
③ 박쇠가 왜 스스로 머슴이 되었는지를 알아본다.
④ 참봉 댁과 머슴이라는 신분제를 자세히 알아본다.
⑤ 박참봉의 아들이 왜 박쇠를 죽였는지를 추리해본다.
⇒ 이 작품은 박판돌과 나의 얽히고 설킨 가족사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작가의 생애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
2. 이 작품의 중심 갈등은 무엇이며, 그 원인과 전개 양상을 말해 보자.
⇒ 이 작품이 전체를 통해 볼 때, 나와 박판돌 사이의 갈등이 중심이 된다. 그리고 나와 박판돌의 가족 사이에 얽힌 애증의 관계가 그러한 갈등의 원인이 된다. 나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박참봉과 그의 아들)가 박판돌의 부모(박쇠와 넙순이)에게 저지른 죄악과 그것에 대한 복수로 6.25전쟁 때 박판돌이 나의 아버지를 처형한 일, 그리고 지금 검사가 된 나가 박판돌에게 갖는 적개심 등이 갈등의 주요 양상이라 할 수 있다.
3. 이 작품에 대한 설명으로 거리가 먼 것은?
① 신분제로 인한 착취와 대립의 구조로 되어 있다.
② 일제 시대부터 현재에 이르는 사건을 조명하고 있다.
③ 방언을 사용하여 작품에 사실성과 향토성을 더해 주고 있다.
④ 역사적 비극을 극복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식이 잘 드러나 있다.
⑤ 하나의 이야기 안에 여러 개의 이야기가 들어 있는 옴니버스식 구성을 하고 있다.
⇒ 옴니버스식 구성은 서로 다른 독립된 이야기 여러 편이 하나의 이야기 속에 묶여 있는 경우를 말한다. 이 작품은 여로형 구조 안에 과거 회상 장면이 있을 뿐이다.
※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앞 부분의 줄거리> 박판돌은 과거에 있었던 ‘나’의 조부와 자신의 부모 사이에 있었던 비극적인 이야기를 들려 준다. 박판돌의 어머니 넙순이가 노비로 있을 때, ‘나’의 조부 박참봉에게 몸을 빼앗겼다. 넙순이가 박판돌의 부친 박쇠와 결혼한 후에도 수시로 넙순이의 몸을 유린한다. 그러한 사실이 탄로나자 박 참봉은 박쇠네 부자를 자기네 족보에 올려 준다고 약속한다. 그러나 박 참봉의 아들(‘나’의 아버지)은 박쇠를 지리산으로 유인해 엽총으로 살해한다. 어머니마저 죽자 박판돌은 신분을 숨긴 채 박 참봉의 집에서 머슴으로 일한다.
긴 이야기를 끝낸 판돌이는 무겁게 머리를 들어올려 동굴의 천장처럼 칙칙하게 내려앉아 있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별 하나 돋아나지 않은 어둡고 답답한 하늘이었다.
긴 이야기를 토해낸 판돌이도,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둠에 묻힌 먼 하늘을 바라보기조차 부끄러워 자꾸만 고개가 무겁게 내려앉은 나도 마음이 별 없는 하늘처럼 숨가쁘게 답답하였다.
두 사람 사이에 산상(山上)의 밤보다 더 무겁고 답답한 침묵이 늪처럼 찐득하게 괴었다.
“우리 아버지한테 당신이 박쇠 아들이라는 건 언제 밝혔소?”
나는 바윗덩어리처럼 무겁게 나를 찌누르고 있는 판돌이를 마치 박쇠처럼 생각하면서 우울하게 물었다.
“어디 기회가 있어야죠. 또, 같이 살다보니께 마음이 약해집디다. 사실 지는 도련님 댁 머슴이었재만, 두 어른들 도움도 많이 받고 자랐거든요. 그라고 도련님 식구들과 오래 한솥 받 묵고 살다보니께 정도 붙고 해서……지난 일들을 잊어버릴까 허는 생각도 납디다. 또 어르신께서 우리 아버지를 쥑이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고……”
판돌이는 잠시 말을 멎고 머리를 무겁게 떨구었다가 천천히 들어올렸다.
“육이오가 터지고 세상이 뒤집히니께, 지 마음도 세상과 함께 뒤집힙디다요. 좌우당간에 어른신헌테 한번 따져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드만요. 그래서 그 어른을 데리고 지리산으로 들어갔지요. 어리신한테 지가 오래오래 품속에 간직해왔던, 지 조부님 종문서허고, 지 신분을 밝혔지요. 그러고 우리 아버지를 어디서 쥑였느냐고 성질을 냈어요. 사실 그때 저는 어르신네께서 거짓말로라도 지 아버지를 절대 쥑이지 않았다고 말하기를 맘속으로 얼마나 바랬는지 몰라요. 그란디……그란디 말입니다. 어르신께서는 지가 그렇게 바랬던 것과는 달리 우리 아버지를 세석평전에서 엽총으로 쏴 쥑였다고 쉽게 고백을 허시고 말았어요. 아버지가 언젠가는 낫으로 어르신의 아버지를 찍어 쥑일 것만 같았고…… 또 지 부자가 도련님댁 족보에 오르는 것이 싫어서 멧돼지 사냥을 나와 세석평전까지 끌고 가서 쏴 쥑였다고 허드만요. 어르신은 그러면서 보잘것없는 지한테 용서를 빌었어요. 지는 그런 어르신이 싫었든 거지요. 차라리 그때 나헌티 불호령을 치셨더라면 지 마음이 약해져서……”
“그래서 판돌씨도 우리 아버지를 세석평전까지 끌고와서……”
“어르신께서 지 아버지를 쥑인 곳을 알고 있다고 해서……지도 어머니 유언대로 울 아버지 뼈라도 찾을까 허고……”
“그래, 찾았나요?”
나는 판돌이가 그의 아버지 유굘을 찾았기를 바라면서 물었다.
“워디가요, 세석평전을 다 뒤져봤재만 철늦은 철쭉꽃만 휘너후러져서……허갸, 족보에도 못 오른 아버진데 무덤은 남겨서 뭘 허겠어요? 차라리 잘됐지요머. 물론 저도 아직 족보가 없습니다만. 그까짓 족보 있으면 어쩌고 없으면 어쩝니까. 지 아버지는 족보에 이름 석 자 올릴 욕심으로 죽을 때꺼정 껑껑땠지만, 지는 족보 대신 돈을 갖기루 작정했지요. 족보가 없는 대신 돈이라도 몽땅 벌자 허는 생각으로 살았어요. 그래서 돈을 좀 모았지요. 이제는 백만 원만 주고도 지가 박씨 문중에서 문벌 좋은 집안을 탈탈 골라 족보 이름을 올릴 수 있것습니다만……. 그까짓 족보 있으면 뭘해요? 주빈등록증 하나면 얼마든지 출세를 허는 세상인듸. 지는 족보 대신에 아직도 우리 조부님 종문서허고 도련님 조부님이 박판돌이라고 지어 주신 지 부자 이름이 적힌 종이쪽지를 소중히 간직허고 있구만요. 으쩌면 족보보다는 그거이 더 귀한 것일지도 모르재요.”
판돌이의 이야기를 듣고 난 나는 마지막으로 그에게 아버지를 죽인 사람은 바로 판돌이 당신이었구만요 하고 물으려다가 끝내 입을 열지 못했다.
두 사람은 꽤 오랜 시간을 어둡고 답답한 침묵의 깊은 늪 속에 빠진 채 그대로 앉아 있었다.
갑자기 큰바람이 산정을 휩쓸면서 빗방울이 떨어졌다. 비바람이 휘몰아치자 판돌이는 으스스 몸을 떨며 텐트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가 버렸다. 나는 그와 좀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비바람 때문에 그를 붙잡지 못했다.
바람이 드세어지고 빗방울도 굵어졌다. 하늘과 맞닿은 산정에서, 어둠에 묻힌 채 비바람을 맞고 있다니, 자신이 한갓 엽록소가 빠져 삐들삐들 말라 비틀어진 떡갈나무 잎이거나 높은 산의 나무에 붙어서 진을 빨아먹고 사는, 다리가 빨간 비단사슴벌레와도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거센 비바람이 휘몰아치면 낯선 어느 골짜기엔가로 가볍게 날려가 버리게 될지도 모른다는 약해진 마음에 견딜 수 없는 외로움을 느꼈다. 칼날 같은 번갯불이 어둠을 갈기갈기 찢으면서 지리산을 허물어 버리기라도 할 듯 우르르 꽝 뇌성이 울렸다. 훠익- 비바람이 몰아치자 몸뚱이가 낙엽처럼 가볍게 어둠이 꽉 찬 허공으로 날려 버릴 것만 같았다. 휘몰아친 비바람이 마치 아버지의 엽총에 맞아 죽어 지리산에서 떠돌음하고 있는 박쇠의 혼처럼 무섭게 느껴졌다. 원한에 찬 박쇠의 혼이 우드득 내 머리칼을 쥐어 뜯으며 나를 골짜기 후미진 곳에 뙈기 치듯 메어칠 것만 같았다. <중략>
박판돌의 말마따나 판돌이의 부자가 당한 내력을 미리 알았더라면 나는 아버지의 유골을 찾으러 고향에 오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나는 결코 아버지의 유골을 조금도 주체스럽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죽은 사람들의 역사는 죽은 사람과 함께 무덤 속에 묻어 두는 것이 좋을 듯싶었다.
나는 지리산 골짜기에 떠돌음하는 박쇠의 원혼과, 그런 아버지의 원혼을 달랠 길 없어 괴로워하는 박판돌이한테 죽은 아버지 대신 용서를 빌고 싶었다.
1. 윗글을 통해 알 수 있는 사실로 볼 수 없는 것은?
① 판돌이의 이야기를 들은 ‘나’는 마음이 착잡하기 이를 데 없다.
② 6 · 25 전쟁은 잔잔했던 판돌이의 마음에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③ 판돌이는 세석평전에서 자기 아버지의 유해라도 찾아보려 하였다.
④ 판돌이는 돈을 벌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해서 돈을 많이 모았다.
⑤ ‘나’는 판돌이의 말을 통해서 아버지 죽음의 진상을자세히 알게 되었다.
⑤1) 개괄적 정보의 확인
[해설] 나'는 판돌'에게 아버지를 죽였는지 줄기차게 묻고자 하지만, 판돌이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는 그렇게 하기를 주저하고 말을 하지 않는다. 판돌이의 ‘판돌이의 이야기를 듣고 난 나는 마지막으로 그에게 아버지를 죽인 사람은 바로 판돌이 당신이었구만요하고 물으려다가 끝내 입을 열지 못했다.'라는 구절을 통해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결국 ‘나’는 애초의 목적(아버지 죽음의 진상을 알아보고자 함)을 이루지 못한 채 판돌이와 헤어진다.
2. 인물들 간의 갈등 잉상을 다음 <보기>와 같이 정리하고자 할 때, 빈 칸에 들어갈 말로 가장 적절한 것은?
<보기>

|
아내를 유린한 잘못에 대한 대가로 박쇠 부자를 족보에 올려 준다고 약속한다. |

|
박판돌은 자신의 아버지의 죽음의 비밀을 캐내려고 한다. |

|
( ) |
① ‘나’는 자신의 가족과 얽혀 있는 박판돌과의 악연을끊고 싶어한다.
② ‘나’는 박판돌이 자신의 아버지를 죽였는지 여부를 밝히고 싶어한다.
③ ‘나’는 박판돌이 왜 자기 집의 머슴으로 숨어 들어왔는지 알고 싶어한다.
④ ‘나’는 6· 25 전쟁 당시의 비극적인 참상들에 대해 자세히 듣고 싶어한다.
⑤ ‘나’는 집안의 족보에 박판돌의 이름을 올릴 수 없다고 잘라 말하고 싶어한다.
②2) 갈등 앙상 파악하기
[해설] ‘나’가 지리산에 온 목적은 아버지의 유해를 찾는다는 것 이외에도 아버지 죽음의 진상을 알아 내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그 비밀을 알고 있는 유일한 인물은 과거 아버지의 머슴이었던 박판돌밖에 없다. 따라서, 둘 사이의 가장 큰 갈등 요인은 박판돌이 아버지를 죽였는지 여부라고 할 수 있다
3. 다음 중, 윗글에 드러나 있는 주제 의식을 가장 효과적으로 표현한 것은?
① 비극적인 역사의 순환은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
② 삶은 희망을 품고 사는 사람들에게만 웃음을 지어 보인다.
④ 과거의 아픔을 함께 나눔으로써 공존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④ 팔은 안으로 굽듯이 우리네 인생은자기 만족에 지나지 않는다.
⑤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부르는 법, 단호히 그 고리를 끊어야 한다.
③3) 작품의 주제 파악
[해설] ‘나’와 ‘판돌’의 원한 관계는 둘 사이의 원한이 아니라 이전 세대의 원한이다. ‘나’는 자신의 원한(아버지의 죽음)을 풀고자 지리산에 오지만, ‘판돌’은 지리산에 와도 자신의 원한(아버지의 죽음)을 풀 길이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죽은 사람들의 역사는 죽은 사람과 함께 무덤 속에 묻어 두는 것이 좋을 듯싶었다 나는 지리산 골짜기에 떠돌음하는 박쇠의 원혼과, 그런 아버지의 원혼을 달랠 길 없어 괴로워하는 박판돌이한테 죽은 아버지 대신 용서를 빌고 싶었다.’라며 먼저 화해의 손길을 내민다.
4. [A]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판돌의 아버지인 박쇠가 죽어 가면서 품었을 원한을 떠올리며 느끼는 ‘나’의 죄책감과 불안한 심정을 제시하고 있다.
② 자신의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일방적인 원한이 얼마나 자기 중심적이었던가를 깨닫는 ‘나’의 심리 상태를 보여 주고 있다.
③ '나'가, 오랜 시간동안 쌓아왔던 자신의 분노가 판돌의 아버지 박쇠와 판돌의 원한에 비해 얼마나 초라한 것인가를 인식하고 있다.
④ 판돌의 기막힌 과거사를 듣고 난 후 ‘나’가 겪고 있는 심리적 변화를 지리산의 거칠어지는 날씨를 통해 효 과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⑤ 서로의 원한이 공존하고 있는 지리산의 급격한 날씨 변화를 통해서 판돌과 ‘나’사이의 모든 갈등이 해소되고 있음을 잘 드러내고 있다.
⑤4)배경의 역할 이해
[해설] 지리산은 ‘나’와 ‘판돌’의 원한이 함께 공존하고 있는 장소이다. 두 사람의 아버지가 죽어 간 곳이면서 둘 사이의 갈등이 출발하는 장소이다. 그러나 전혀 예상치 못했던 ‘판돌’의 이야기를 듣고 난 후 ‘나’ 는 심리적으로 급격한 동요를 보이며 괴로움과 죄책감, 나아가 두려움마저 느끼게 된다. 그렇지만 [A]에서 모든 갈등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A]는 갈등 해소를 위한 마지막 진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