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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의 평화 / 문순태

법정 2011. 10. 12. 06:52

어둠속의 평화 ~ 월간 마음수련|문순태 소설세계
블루칩 | 조회 187 |추천 0 |2010.03.10. 19:47 http://cafe.daum.net/sangoji2/YCJ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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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출처 : 월간 마음수련

 


 

 

어둠 속의 평화

글  문순태 소설가

 

 

 

친구가 시골에 살면서 가장 불편한 게 무엇이냐고 물었다.

나는 밤이 되면 너무 깜깜해서 ‘어둠의 감옥’에 갇힌 기분이라고 말했다.

시골에는 가로등이 별로 없어, 해가 지면 금방 칠흑 같은 어둠의 세상이 된다.

너무 어두워서 이웃집에 마실 가기조차 쉽지가 않다. 밖에 나가려면 반드시 손전등을 챙겨야만 하는 불편함이 따르게 된다.

도시는 아무리 변두리라고 해도 가로등과 상점의 불빛으로 대낮처럼 밝아, 밤이 되어도 활동하는 데 불편함이 없지만,

시골은 밤새 내 집 안에 틀어박혀 지내야만 한다. 그 때문에 시골 사람들은 일찍 잠자리에 들게 마련이다.

고된 농사일 때문에 일찍 자는 것이 몸에 좋기는 하겠지만 공동체 밤의 문화가 없어 안타깝다.

나는 시골로 이사 오자마자 마을 초입에 자리 잡은 우리 집 앞 삼거리에 가로등부터 설치했다.

면에서 원래 이곳에 가로등을 설치하려고 했으나 논 주인이 불빛 때문에 곡식이 잘 자라지 않는다면서,

전주 세우는 것을 반대했었다고 한다. 결국 나는 그 논을 사서 매실나무를 심고 가로등부터 설치했다.

나들이 나갔다가 밤늦게 돌아오면 집 앞이 훤해서 마음이 한결 놓인다.

여름이 되면서 시골의 밤은 더욱 깜깜하다. 곡식 생육이 잘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가로등을 많이 꺼 놓았기 때문이다.

처음에 나는 어둠의 불편함보다 곡식의 생육을 더 걱정하는 농민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차츰 생각이 바꿔지기 시작했다.

농민들에게 어둠의 불편쯤이야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농사에는 광합성 작용을 위해 햇빛도 중요하지만 어둠 또한 필요하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이 엄숙한 자연의 섭리를, 한갓 불편함 때문에 부정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나는 땅에 대한 농민들의 강한 애착을 알게 되면서, 논을 없애고 잔디와 매실을 심은 것을 부끄러워하게 되었다.

농민들이 진정으로 생각하는 땅은, 사람들 보기 좋게 치장하듯 다듬고 가꾸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원천인 밥을 만들어내는 것이 우선이어야 한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된 것이다.

 

“아이고 저, 아까운 땅에 씨잘데기 없는 잔디를 심고 나무를 심다니….”
평생 농사만 짓고 살아온 우리 마을 청국장 할머니는 우리 집 앞을 지나면서 혀끝을 차고, 나는 그때마다 얼굴이 화끈거린다.

나는 진정 땅을 사랑하는 농사꾼들한테 용서를 빌고 싶다.

 

“소나무를 심으면 일년에 만 원어치씩 큰답니다. 나무 심는 것이 농사짓는 것보다 수익이 낫다니까요.”
옆에서 누군가 그렇게 말할라치면

“그래도 논밭에는 곡식을 심고 나무는 산에 심어야 혀. 그것이 농사짓는 사람이여.”
청국장 할머니의 말에, 나는 문득 우리 어머니를 생각했다.

도시에 사는 구십오 세 우리 어머니는 지금도 비가 많이 오거나 적게 오거나, 바람만 불어도 농사 걱정을 하신다.

젊어서 농사꾼으로 살아오신 어머니는 몇 년 전 우리가 도시에 살 때, 화분의 꽃을 모두 뽑아 버리고 가지 모종을 하신 분이다.

“꽃은 들에 가면 얼매든지 많은께, 여그다가 가지를 심어서 따 묵으면 얼매나 맛나겄냐.”
그때 어머니의 말씀이 내 머릿속에 맴돌고 있다.
나는 이제 시골의 어둠쯤 얼마든지 참을 수 있다. 충전용 손전등이 있으니 그렇게 불편한 것 같지도 않다.

지금 누구인가 내게 시골살이하면서 가장 불편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도시 사람들이 들락거리면서

쓰레기를 버리고 가는 것을 치우는 일이라고 말하고 싶다. 시골 사람들에게 어둠은 휴식이고 평화인지도 모르겠다.

 우리 마을의 밤이 도시처럼 불빛으로 휘황찬란해진다면 나는 더 이상 이곳에서 살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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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문 순 태 님은 1941년 전남 담양에서 태어나, 조선대와 숭실대 대학원을 졸업했습니다. 1974년 ‘한국문학’으로 등단하였고, 그동안 <시간의 샘물>
<고향으로 가는 바람> <철쭉제> 등의 소설과 장편소설 <타오르는 강> <그들의 새벽> 등을 발표했습니다. 1996년부터 2006년까지 광주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제28회 이상문학상 특별상 등을 수상했습니다. 이 글은 <생오지 가는 길>(눈빛)에 수록된 글로 저자의 허락을 받아 월간 마음수련에 게재합니다.

 

 자료출처 : 월간 마음수련

사진출처 : 월간 마음수련 운영하는 마음수련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