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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 수 왈
법정
2010. 5. 14. 07:39
마음을 비우면
인생이 아름다워진다는 말을 누가 믿으랴
젊은놈들은 모두 구정물처럼 혼탁해진 도시로 떠나 버리고
마을 전체가 절간처럼 적요하다
기울어지는 여름풍경 속에서
하루종일 허기진 그리움으로 매미들이 울고 있다
평상에 홀로 앉아 낮술을 마시는 노인의 모습
이따금 놀빛 얼굴로 바라보는 먼 하늘이 청명하다
인생이 깊어지면 절로 구름의 거처를 묻지 않나니
누가 화답할 수 있으랴 부처가 연꽃을 들어 보이지 않아도
노인이 먼저 입 가에 떠올리는 저 미소
가을밤 산사 대웅전 위에 보름달 떠오른다
소슬한 바람 한 자락에도 풍경소리 맑아라
때로는 달빛 속에서 속절없이 낙엽도 흩날리고
때로는 달빛 속에서 속절없이 부처도 흩날린다
삼라만상이 절로 아름답거늘
다시 무슨 깨우침에 고개를 돌리랴
밤이면 처마 밑에 숨어서
큰스님 법문을 도둑질하던 저 물고기
지금은 보름달 속에 들어앉아 적멸을 보고 있다
이제는 마른 잎 한 장조차 보여 드리지 못합니다
버릴수록 아름다운 이치나 가르쳐 드릴까요
기러기떼 울음 지우고 떠나간 초겨울 서쪽 하늘
날마다 시린 뼈를 엮어서 그물이나 던집니다
보이시나요 얼음칼로 베어낸 부처님 눈썹 하나
한 해가 저물고 있다
지나간 날들은 망실되고 사랑한 증거도 남지 않았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
자폐증에 빠져 있는 겨울풍경 속으로 눈이 내린다
눈이 내리면 시간이 깊어진다
인생은 겨울밤 얼음 밑으로 소리죽여
흐르는 강물이다